[직썰 / 안중열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3박 5일간의 미국 뉴욕 순방을 마치고 26일 밤 귀국했다. 취임 후 첫 유엔총회 연단에서 그는 “민주 대한민국 복귀”를 천명하며 한반도 평화 구상과 인공지능(AI) 국제 규범을 제안했다. 블랙록과의 업무협약(MOU), 투자 서밋, 관세 협상 등 실리를 겨냥한 경제외교도 병행했다. 그러나 북핵 해법, 투자 실행, 대중국 관계 관리, 정책 제도화 등 굵직한 과제가 남았다. 선언을 실행으로 옮길 역량이 한국 외교의 지속력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유엔서 드러난 ‘민주 대한민국 복귀’와 평화 구상
순방의 정점은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이었다. 이 대통령은 “민주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회복한다”며 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를 축으로 한 END(Engagement·Normalization·Denuclearization)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한반도 평화 구상의 새로운 청사진으로, 다수 외신은 한국이 분열과 갈등을 넘어 ‘민주 복귀’ 선언이었다.
그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토의를 주재했다. ‘AI와 국제 평화·안보’를 주제로 “모두를 위한 AI”를 강조하며 기술혁신이 분쟁과 불안을 증폭시키지 않도록 국제 규범을 강화하자고 촉구했다. 단순 상징을 넘어 대한민국 외교 복귀와 국제 위상 재정립을 세계에 알린 계기로 평가된다.
다만 선언을 실질적 영향력으로 전환하려면 미국·중국·러시아 등 강대국과의 조율과 대북 채널 복원이 필수다. 한미일 협력이 중국 견제 전략으로 비치면 불필요한 역내 긴장감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외교 확장과 관세 협상, 실천력 시험대
이 대통령은 경제외교에서도 광폭 행보를 보였다. 첫 일정으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와 만나 AI·재생에너지 인프라 협력 MOU를 체결하며 글로벌 금융·산업과의 협력 문을 열었다. 이어 우즈베키스탄·체코·이탈리아·폴란드 정상들과 연쇄 회담해 원전·방위산업·핵심광물·인프라 등 전략산업 협력을 확대했다.
마지막 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대한민국 투자 서밋’을 주재하며 한국의 주식시장 체질 개선 정책을 설명하고 월가 금융인들에게 투자를 요청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의 회담에서는 “상업적 합리성에 기초한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관세 협상 진전”을 촉구하며 대미 통상 현안에 대응했다.
그러나 3500억달러 규모로 거론되는 투자 패키지와 관세 협상의 세부 조건은 불투명하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 합의문이나 구체적 실행 문서를 남기지 못한 점은 정책 지속성의 잠재적 약점으로 꼽힌다. 미국 대선 국면과 보호무역 기조가 변수로 작용하면 합의가 지연되거나 조건이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 투자 성과가 국내 고용과 수출로 이어지려면 추가 제도화와 국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다자외교 지평 확대와 균형 전략의 과제
이번 순방은 지난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이어 두 번째 다자외교 무대였다. 유엔을 중심으로 AI·에너지·공급망 협력의 새 틀을 제안하고 각국 정상과 릴레이 회담을 통해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넓히는 등 확실한 성과를 남겼다. ‘민주주의 가치와 경제협력을 동시에 내세워 한국의 중견국 외교가 한 단계 성장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확장된 다자외교는 중국·북한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복합 과제를 안고 있다. 한미일 협력이 중국 견제로만 비칠 경우, 역내 긴장이 높아져 대북 협상과 경제협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층적 대화 채널과 한중 정상 간 후속 협력 복원이 절실하다.
◇국내 정치·경제 파급과 지속 가능한 성과
순방 직후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제사회 복귀 선언과 경제 성과가 국내에 긍정적 신호를 보낸 셈이다. 증시와 외환시장의 단기 안정세도 시장이 순방 결과를 호의적으로 반영한 흐름으로 읽힌다.
그러나 외교 이벤트가 단기 여론 상승에 그치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투자 유치와 관세 협상 결과가 기업 투자·고용·수출 증가로 이어져야 국민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국회와 야당이 협조해 예산·법제화를 통해 정책을 제도화해야 지속 가능한 성과가 가능하다. 국내 정치적 분열 극복과 국민적 합의 도출도 남은 과제다.
이 대통령의 이번 유엔총회 순방은 성과와 과제가 교차한 복합 외교였다. 국제사회에서 ‘민주 대한민국 복귀’를 선언하고 AI·에너지·공급망 협력 등 미래 산업 어젠다를 선점했으며, 블랙록 MOU와 투자 서밋, 다자 정상회담을 통한 경제외교 확장은 의미 있는 성취로 꼽힌다. 동시에 북핵 문제, 관세·투자 패키지의 실현, 문서화된 합의 부재, 중국과의 정교한 관계 조율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았다.
다음 달 국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후속 협상이 이번 순방의 성과를 제도와 경제적 실익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선언을 실행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대한민국 외교의 지속 가능한 동력을 결정짓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