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쏟아부은 월드 투어가 끝났다면 대부분의 그룹은 당연히 휴식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K팝 그룹 ‘스트레이 키즈'(멤버: 방찬, 창빈, 필릭스, 한, 현진, 아이엔, 리노, 승민)는 달랐다.
올여름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공연을 이틀 연속 매진시키는 등 기록적인 ‘DominATE’ 월드 투어 대장정을 마친 지 불과 몇 주 만에 정규 앨범 ‘Karma’를 발표한 것이다.
이는 스트레이 키즈가 1년이 채 되지 않아 발표한 2번째 앨범이다. 그 사이 새 EP와 멤버 8명의 솔로곡을 담은 12곡짜리 믹스테이프 ‘Hop’도 발매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도 발을 디뎠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한편, OST인 ‘Slash’도 부른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스트레이 키즈는 테일러 스위프트, 드레이크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로 선정되었다.
여러 K팝 그룹과 달리 스트레이 키즈는 직접 작사, 작곡을 한다.
그렇다면 전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장에서 매일 3시간씩 공연을 펼치고, 틈틈이 미술관(현진)과 구운감자 가게(필릭스)까지 방문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 어떻게 이러한 창작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
래퍼이자 보컬인 한(25)은 “최대한 작업을 분담하고, 멤버들끼리 각자 역할을 맡아 해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170개가 넘는 곡에 작사, 작곡 등으로 이름을 올렸다.
“데모 트랙을 녹음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우리는 함께 모여 한 팀으로서 곡을 마무리해 나갔습니다.”
혹시 이것이 영혼을 파괴하는 고통스러운 방식처럼 들린다면 스트레이 키즈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2017년 데뷔 이후 이들은 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으로 무장하여 끊임없이 자신들의 음악을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해 나갔다.
이번 앨범 ‘Karma’에서도 브라질 펑크 리듬이 돋보이는 ‘Ceremony’부터 미국 팝밴드 굿 샬럿과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에이브릴 라빈의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팝 펑크 풍의 ‘In My Head’까지 다양한 장르를 다루었다.
막내 아이엔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든 시기에 듣기 좋은 곡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중 특히 눈에 띄는 곡은 ‘삐처리 BLEEP’이다. 비난과 방해를 무시하고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곡으로, 검열을 위해 ‘삐~’소리로 대체하는 것을 뜻하는 ‘삐처리’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Fail(실패한) 삐처리 frail(약한) 삐처리 Lazy(게으른) 삐처리 hazy(모호한) 삐처리 (중략) Yada, yada, noise cancellation(허튼소리 소거)”
멤버 현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했다.
“대담하고 신선한 가사죠. 담고 있는 메시지가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묵직한 바리톤 같은 보컬을 맡고 있는 멤버 필릭스의 사정을 알게 되면 이 곡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국계 호주인인 그는 익명으로 명예훼손성 글을 올리던 SNS 사용자의 신원을 밝혀낼 수 있도록 미국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캘리포니아 법원에 제출된 법적 서류에 따르면, 이 익명의 SNS 사용자는 필릭스가 스태프를 “하인처럼” 대하며, “자신이 왕자인 듯 군다”고 비난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필릭스는 이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 및 모욕감”을 겪었다며 한국에서 민사상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였다.
경쟁 그룹을 헐뜯으려는 지나치게 열성적인 팬들로 인해 K팝 스타들에게는 이러한 일이 놀라울 정도로 흔하다.
하지만 대체로 스트레이 키즈 멤버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부분에 집중하지 않고자 노력한다.
유튜브에 올라온 이들의 영상을 보았다면 멤버들이 진짜로 추구하는 것은 즐거움과 재미임을 알 수 있다. 아이엔은 할머니 분장을 하거나, 창빈은 수영장으로 승민을 던지고, 소속사가 매번 내놓는 먹을 수 없는 생일 케이크에 관해 끝없이 농담을 던진다.
멤버들은 SNS를 통해 팬덤명 ‘STAY’인 팬들과 끈끈하게 유대감을 다진다. 늦은 밤 라이브 방송을 하거나, 호텔방에서 질문을 받고 답해주기도 한다.
그 덕에 이들의 스타성에는 특별한 친밀함이 깃들고, 이는 라이브 공연으로도 이어진다.
올여름 런던에서 나는 스트레이 키즈가 무대와 관객 사이 거리를 허물어내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화려한 조명 속 펼치는 정교한 공연 사이사이 이들은 댄스 챌린지와 노래방 세션을 선보였으며, 콜드 플레이를 연상시키는 발라드 곡인 ‘시네마’를 부를 때는 팬들의 이름을 스크린에 띄우기도 했다.
또한 콘서트 중간 창빈은 영국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에 토트넘 스타디움을 선택했다고 밝혔고, 멤버들은 마치 ‘해리포터 리부트’ 오디션장에 온 듯 영국식 억양으로 마법 주문을 외치기도 했다.
앙코르 무대가 찾아오자 멤버들은 경기장 바닥 주변을 비우고 거대한 리프트를 타고 돌아다녔다. 풍선 캐릭터들이 뒤를 따르며 경기장 곳곳을 누비는 이들은 마치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연상시켰다. 이 덕에 저렴한 좌석에 앉은 팬들도 멤버들과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
아이엔은 이번 월드 투어를 회상하며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매일 이러한 날들을 꿈꾸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이번 투어는 STAY가 우리에게 얼마나 귀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멤버 한은 “이번 투어 기간, 우리가 가는 곳마다 얼마나 많은 STAY가 우리를 응원해주고 있는지 깨달았다”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스트레이 키즈는 이번 ‘DominATE’ 월드 투어를 통해 유럽과 미국에서만 티켓 판매량 총 120만 장, 매출 1억8200만달러(약 2567억원)를 기록하며 K팝 역사상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승리의 퍼레이드를 이어가듯 ‘Karma’는 미국 차트 정상에 직행했고, 스트레이 키즈는 7개 앨범을 연속해서 1위에 올리는 기록을 썼다.
하지만 이 성공에 대해 묻자 멤버 8인은 갑자기 수줍어했다.
리더인 방찬은 “‘성공했다’는 말은 정말 강한 표현인데, 솔직히 우리가 정말 성공했는지 아닌지 판단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다만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우리는 아주 먼 길을 걸어왔으나, 여전히 더 많은 이정표를 세우고자 하는 갈망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 정복은 분명 이들의 목표 중 하나다. 이미 스트레이 키즈 내 프로듀싱 팀인 ‘3Racha’는 2022년 믹스테입을 통해 영국에서 유행하는 그라임 비트를 접목했으며, 영국 출신 록밴드 ‘The 1965’와 ‘콜드플레이’와 협업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승민은 “그들의 음악성과, 그들이 공연에 모든 걸 쏟아붓는 방식이 정말 좋다”면서 “이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감정이 북받치고, 영감도 많이 얻는다”고 했다.
한편 멤버들은 더 큰 커리어 목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세계적인 음악 축제인 ‘글래스톤베리’나 ‘슈퍼볼'(스트레이 키즈는 ‘슈퍼볼’이라는 제목의 노래도 있다) 무대에 서고 싶지는 않은지 묻자 승민은 질문을 재구성했다.
“물론 단기적인 목표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시대를 넘어 역사 속에 오래오래 남는 그룹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포부는 지난해 ‘소속사 JYP 엔터테인먼트’와 7년 재계약을 맺은 이야기를 담은 붐뱁 랩 곡인 ‘반전 (Half Time)’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필릭스는 “We’re not done yet(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밤새 달려도 당최 끝나지 않은 경기, 훨씬 방대하게 커져가 (중략) They don’t know what’s coming(그들은 무엇이 다가올지 알지 못한다)”고 노래한다.
즉, 스트레이 키즈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