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오랜 시간 ‘불법’으로 치부됐던 문신(타투) 시술이 30여 년 만에 합법화됐다.
25일 오후 문신사법안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의료인이 아닌 사람도 면허를 취득해 문신 시술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문신 제거는 의료인만 할 수 있다.
‘문신사법’ 제정안은 공포 후 2년 뒤에 시행되며, 시행 후 최대 2년간은 임시 등록 등의 특례를 두기로 했다.
한국에선 이미 문신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합법적으로 문신을 받기는 어려웠다.
1992년 대법원이 문신 시술을 ‘의료 행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 행위’는 ‘의료인’만이 할 수 있다. 의료인 면허 없이 문신 작업을 하다가 적발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 등의 처벌을 받는다.
지난 수년간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합법화 운동을 전개해 온 타투이스트 김도윤(활동명 ‘도이’) 씨는 BBC에 “꿈만 같다”라며 “(2년 후) 법이 시행되기 전에 저희가 할 일을 할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2020년 국내 최초 문신사 노동조합 ‘타투유니온’을 결성하고 합법화 운동을 전개해왔다.
이날 김 씨를 포함해 국회에 방문한 타투이스트 10여 명은 문신사법 가결 소식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임보란 대한문신사중앙회장은 눈물을 흘리며 “꿈꾸는 것 같아서 말을 못 하겠다. 정말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이날 표결에 앞서 “이미 문신은 일반화됐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알기로는 여기 계신 국회의원님 중에서도 눈썹 문신이나 입술 문신한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이 전부 다 불법이었고, 법의 사각지대 하에서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진행돼 왔다”라며 “문신사법 통과된다면 이런 부분이 해소되면서 국민분들은 안전하게 문신 받을 수 있고, 문신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합법적 존재로서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라고 법안 가결 필요성을 강조했다.
2021년 보건복지부가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타투 시술자는 약 35만 명으로, 대부분 눈썹·입술·헤어라인 등 반영구화장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문신 시술 이용자는 약 1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의료인이 문신 시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찾기 힘들다. 특히 피부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서화 문신의 경우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높은 예술성을 요하는 경우가 많아, 시술자 대부분이 미용이나 미술 등을 전공한 비의료인인 상황이다.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고 와야 한다는 데는 여야가 뜻을 같이했지만, 의사 단체의 반발과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이 겹치면서 법제화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타투이스트 유주(활동명)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문신사법이 국회에서) 반대 0표로 통과됐다”라며 “‘타투는 예술이다’라고 땅땅땅 확인받은 느낌”이라며 가슴 벅차했다.
이어 “당연한 것을 확인받아야 하는 불합리함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너무 시원하다”라며 “이번 법 통과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합법화를 위한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명”이라고 했다.
그동안 문신사들은 외국의 경우 문신사에게 의료 면허를 요구하는 나라가 없다며 반발해왔다. 문신이 오랜 시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동안 시술자와 피시술자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문신 시술자의 경우 사실상 ‘불법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빌미로 부당한 신고 또는 협박을 당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시술을 받는 사람도 무면허 시술이라는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
실제로 김 씨는 2019년 유명 연예인에게 문신 시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누군가에게 신고를 당했다. 그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고, 이달 항소심 재판이 재개된 상황이었다.
앞서 BBC ‘올해의 여성 100인’ 팀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비밀의 잉크(Secret Ink)’에서도 한국의 불법 문신 실태와 이로 인한 문제들을 들여다본 바 있다.
당시 타투이스트 나르(활동명)는 한 남성에게 시술하고 난 후 성추행을 당한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역으로 “신고를 당할까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나르는 문신사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후 BBC에 “너무 잘 된 일”이라고 기뻐하면서도 타투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크게 바뀌진 않을 것 같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하지만 문신사법이 시행되면 타투이스트들의 직업 안정성이 크게 나아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신고당할까봐 자신의 직업이나 가게 위치를 숨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제 (건물) 1층에 타투샵을 열고, 너무 달고 싶던 가게 간판도 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