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1.4억 전문직 비자 수수료 충격…인도보다 미국의 손해가 더 크다?

트럼프의 1.4억 전문직 비자 수수료 충격…인도보다 미국의 손해가 더 크다?

공포와 혼란, 그리고 백악관의 갑작스러운 사태 수습까지. H-1B 비자로 미국에서 일하는 수십만 인도인들은 롤러코스터 같은 주말을 보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숙련 노동자 비자(H-1B) 수수료를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로 기존 대비 최대 50배 이상 대폭 증액한다고 발표하며 기술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혼란이 이어졌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해외 출장을 자제하라고 권고했고, 해외에 나가 있던 근로자들은 앞다투어 비행기표를 구했으며,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이 행정명령의 내용을 해석하고자 밤샘 업무에 돌입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20일, 백악관은 증액된 비용은 신규 비자 발급 신청 시에만 적용되는 일회성 수수료라고 밝히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H-1B 프로그램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평가다.

오랜 기간 운영되어 온 H-1B 비자에 대해서는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비판과 동시에 글로벌 인재 유입에 이바지한다는 찬사가 공존한다.

백악관이 수습에 나서긴 했으나, 이번 수수료 인상 조치는 사실상 H-1B 비자 제도를 봉쇄하는 셈이다. 해당 비자는 지난 30년간 수백만 인도인의 미국 진출의 꿈 및 미국 산업계를 떠받치는 인재 공급의 통로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이 통로는 인도와 미국 양국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먼저 인도의 경우, H-1B 비자는 그야말로 희망의 수단이었다. 지방 도시의 코딩 전문가들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인재로 변신했으며, 이들의 가정은 중산층으로 도약했다. 항공사부터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 전체가 전 세계를 누비며 새롭게 등장한 인도인 계층을 고객으로 삼아 움직였다.

미국의 경우, 해당 비자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의 연구실, 교실, 병원, 스타트업 등에 인재가 공급되었다. 오늘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의 기업은 인도계 경영진이 이끌고 있으며, 미국 내과의사의 거의 6%가 인도 출신이다.

이에 따라 최근 수년간 H-1B 발급받은 외국인 중 인도 출신이 70% 이상일 정도로 인도는 해당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국이다(2위는 약 12%를 차지한 중국이다).

기술 분야에서는 그들의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진다. ‘정보공개법(FOIA)’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소위 ‘컴퓨터 관련’ 일자리의 80% 이상을 인도계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도 이 비율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의료 분야에서는 더욱 압도적이다. 2023년 기준 일반 내과 및 외과 병원 근무자를 위해 승인된 H-1B 비자는 8200건 이상이었다.

미국 내 해외 의대 졸업생(H-1B 비자를 발급받아 미국에 체류하는 이들이 많다)의 최대 공급국이 인도로, 전체 국제 의사의 약 22%를 차지한다. 국제 의사가 미국 내 전체 의사의 최대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도 출신 H-1B 보유자는 미국 내 전체 의사의 약 5~6%를 차지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급여 데이터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말하는 10만달러 수수료 정책이 현실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2023년 기준 신규 H-1B 발급 근로자들의 급여 중간값은 9만4000달러였으며, 기존 H-1B 보유 근로자들의 급여 중간값은 12만9000달러였다.

이번 수수료가 신규 발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황에서 이를 충당할 만큼 벌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BBC
2022년 10월 1일~2023년 9월 30일 기준 H-1B 비자 발급자 출신국 상위 5개국은 인도, 중국, 필리핀, 캐나다, 한국 순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니산켄 센터’의 이민정책 분석가인 길 구에라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백악관의 최신 지침에 따르면 (인상된) 수수료는 신규 H-1B 비자 취득자에게만 적용될 예정이므로, 즉각적인 혼란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노동력 부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우선은 인도가 받을 충격이 클 수 있으나, 이번 정책의 파급 효과는 미국 내에서 더 클 수 있다. TCS와 인포시스 같은 인도의 아웃소싱 대기업들은 이미 현지 인력을 늘리고, 일부 업무를 해외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이에 대비해왔다.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여전히 H-1B 비자 발급자의 70% 이상이 인도 국적자이긴 하나, 2023년 H-1B 비자 발급자를 고용하는 기업 상위 10곳 중 인도계 기업은 3곳에 불과했다. ‘퓨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6곳이었던 2016년 대비 절반으로 줄어든 수치다.

물론 2830억 달러 규모의 인도 IT 산업은 미국으로의 숙련 인력 파견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수수료 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도의 기술산업 협회인 ‘나스콤’은 이번 비자 수수료 인상이 “일부 인도 내 프로젝트의 사업 연속성을 방해할 수 있다”고 본다.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 고객사들이 가격 조정을 요구하거나, 프로젝트를 연기하려 들 수도 있다. 또 미국 기업들은 업무를 해외로 이전하거나, 미국 내 업무 비중을 축소하거나, 비자 스폰서십 결정에 있어 훨씬 더 신중해지는 등 사내 인재 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될 수도 있다.

인도의 주요 인력 공급업체인 ‘시엘 HR’의 아디티야 나라얀 미슈라에 따르면 인도 기업들은 증가한 비자 비용을 미국 고객사에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고용주들은 막대한 스폰서십 비용을 부담하기 꺼릴 것이기에 원격 근로 계약이나 해외 아웃소싱, 긱 노동자(플랫폼 노동자 등) 사용 비율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미국 사회에 미칠 영향은 매우 심각할 수 있다. 병원들은 의사를 구하기 힘들어질 것이고, 대학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파워를 갖추지 못한 스타트업들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케이토 연구소’의 이민학 전문가인 데이비드 비어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비자 수수료가 인상되면서) 미국 기업들은 채용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상당량의 업무를 해외로 이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아울러 창업자들과 CEO들이 미국 내 사업을 관리하러 오기도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는 미국의 혁신과 경쟁력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Getty Images
트럼프 대통령이 숙련된 노동자에게 발급되는 H-1B 비자 발급 수수료를 50배 이상 대폭 증액한다고 발표하면서 기술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다른 전문가들도 이러한 우려에 동의했다.

구에라는 “앞으로 (미국 내) 기술 및 의료 분야의 신규 노동자 수요가 (분야별로 다르겠으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러한 분야가 얼마나 전문화되고 중요한지 고려하면 단 몇 년간의 인력 부족도 미국의 전반적인 경제와 복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도의 숙련 노동자들은 이제 해외 유학 등을 계획 시 미국 외 국가를 더욱 고려하게 될 것이며, 이는 미국 대학 시스템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한편 미국 내 외국인 유학생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인도 학생들이야말로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느낄 것이다.

120개 대학의 회원 2만5000명을 대표하는 ‘북미 인도 학생 협회’의 설립자인 수단슈 카우식은 9월 학기 등록 직후 이 같은 발표가 나며 많은 신입생들이 당황한 상태라고 전했다.

카우식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은 직접 공격당한 기분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미 등록금은 납부한 상태라 학생당 5만~10만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매몰 비용이 발생했다. (그런데) 미국 노동시장 진입의 가장 좋은 경로가 없어진 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도 학생 대부분이 “영구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국가를 선택하기에 이번 수수료 인상 결정은 내년 미국 대학 신입생 모집에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로서 수수료 인상의 전체적인 영향력은 불투명하다.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가 곧 법적 도전에 직면하리라 예상한다.

구에라는 “새로운 H-1B 정책이 미국에 여러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긴 하나,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드러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이번 정책 변화의 영향이 고르게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례로 이번 행정명령이 특정 기업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존, 애플, 구글, 메타 같은 주요 기업들은 면제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면제를 받는다면 정책의 취지는 크게 훼손되겠죠.”

소란이 잦아들면서 이번 H-1B 정책 변화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과세라기보다 미국 기업과 경제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알아보는 테스트에 가까워 보인다. H-1B 비자 소지자와 그 가족들은 240억달러의 연방 급여세, 110억달러의 주·지방세를 포함해 연간 약 860억달러를 미국 경제에 기여한다.

이번 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 방식에 따라 미국이 혁신과 인재 유치에서 계속 선두를 지킬지, 아니면 해외 노동자들을 더 환영하는 경제권에 자리를 내줄지 결정될 것이다.

San Francisco Chronicle via Getty Images
H-1B 발급자 중 70% 이상이 인도 출신이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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