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의 의미는 무엇이며, 영국이 현시점에 인정한 이유는?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의 의미는 무엇이며, 영국이 현시점에 인정한 이유는?

Guy Smallman/Getty Images
2024년 12월 14일, 팔레스타인 국가 행동의 날을 맞아 활동가들이 영국 런던 팔리아멘트 광장에 모인 모습

팔레스타인은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국가다.

국제적으로 꽤 널리 국가임을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 외교 공관을 두고, 올림픽을 포함한 스포츠 대회에 경쟁할 대표팀도 내보낸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 간 오랜 분쟁 탓에 팔레스타인에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국경도, 수도도, 군대도 없다. 이스라엘군이 서안지구를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1990년대 평화 협정 이후 설립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자국 영토와 주민조차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있는 가자지구의 경우 현재 파괴적인 전쟁이 한창이다.

이러한 일종의 준국가적 지위를 고려하면 국가로서의 인정은 불가피하게 다소 상징적인 의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도덕적으로도 정치적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겠지만, 현실 상황은 크게 바꾸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상징성은 강력하다.

데이비드 래미 전 영국 외무장관은 올해 8월 UN 연설에서 “영국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해야 할 특별한 책임의 부담을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배 외무장관인 아서 밸푸어가 1917년 서명한 ‘밸푸어 선언’을 언급했다.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방 내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지한다는 뜻을 처음으로 천명한 외교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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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팔레스타인 내 영국 통치를 공식적으로 끝내며 영국군은 국기를 내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깊숙이 개입했다. 1922~1948년에는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 하에 영국이 할당을 받아 팔레스타인 영토를 통제하였다.

독일과 오스만 제국처럼 세계 대전에서 패한 국가들의 영토를 다른 나라가 합법적으로 통치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영국은 일각에서는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매우 섬세한 균형 잡기를 시도하고자 했다. 밸푸어 선언에 명시된 대로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곳에 거주하는 다수의 아랍인 권리도 보장하겠다고도 약속한 것이다.

이렇듯 상충하는 약속에 더해 유대인과 아랍인 공동체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며 수십 년간 해당 지역은 안정되지 못했다.

1948년 영국은 이 지역에서 철수했고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하면서 여러 차례 중동 전쟁이 발발했다. 이에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은 삶의 터전을 잃고 떠나야만 했다.

다수의 역사가들은 이 시기 영국의 행보가 오늘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형성했으며, 과거 ‘팔레스타인’으로 불린 이 지역의 문제를 해결되지 못한 국제적 과제로 남겨두었다고 말한다.

반면 이스라엘 지지자들은 밸푸어 당시 장관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적도, 그들의 민족적 권리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 없음을 지적한다.

래미 전 장관이 말했듯, 정치인들은 “‘두 국가 해법’이라는 표현을 내뱉는데 익숙해진” 모습이다.

이 표현은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전의 경계선을 따라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를 수립하고, 동예루살렘(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을 수도로 삼는다는 구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두 국가 해법을 실현하려는 국제적 노력은 결실로 이어지지 못하였으며, 국제법상 불법임에도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 광범위한 규모로 정착지를 건설해나가면서 이 구상은 사실상 공허한 수사로 전락한 상태다.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국가는?

현재 UN 193개 회원국 중 약 75%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다.

현재 팔레스타인은 UN ‘영구 옵서버(참관) 국가’ 지위를 갖고 있어 총회에 참여할 수 있으나, 투표권은 없다.

이번 UN 총회 기간 영국과 프랑스 등의 국가(캐나다, 호주, 벨기에, 몰타 등)가 팔레스타인을 승인하겠다고 밝히면서 팔레스타인은 곧 UN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중 4개국의 지지를 얻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1988년에 이미 팔레스타인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만이 남게 된다.

미국은 1990년대 중반 출범하여 현재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이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인정하고 있다.

이후 여러 미국의 대통령이 궁극적인 팔레스타인 건국을 지지해왔으나,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1, 2기 행정부의 대외 정책은 이스라엘에 유리한 방향으로 크게 기울었다.

영국 등이 지금 인정하고 나선 이유는?

역대 영국 내각은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문제를 지속적으로 논의해왔으나, 이를 평화 프로세스의 일환으로, 이상적으로 가능하다면 다른 서방 동맹국들과 함께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시점”에 해야 한다고 보았다.

단순히 상징적인 제스처로서 국가로 인정하는 건 실수라는 판단이었다. 사람들에게 도덕적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현실의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으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로 영국 정부는 더 빨리 행동에 나서게 된 듯하다.

가자지구에서 서서히 번지고 있는 기아 사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에 대해 쌓여가는 분노, 여론의 변화 등으로 오늘날 이 지점까지 이르렀다.

Reuters
UN이 지원하는 글로벌 식량 안보 전문가들은 가자지구에서 “최악의 기근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일부 국가는 국가 인정을 두고 조건을 제시하였다.

캐나다의 경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자체적인 개혁을 약속하고, 2026년 총선을 치르며, 팔레스타인 국가의 비무장화를 약속하면 국가로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의 경우 이스라엘 측 책임을 강조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의 고통을 끝내고, 휴전에 합의하며, 서안지구 영토 병합을 자제하고, 두 국가 해법으로 이어질 평화 프로세스에 전념하는 등의 단호한 조치에 나서지 않는다면 이번 UN 총회 기간 중 팔레스타인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일부 혼란을 불러왔다. 일각에서는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 조건, 특히 이스라엘 측의 조치 등의 조건이 붙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영국이 제시한 4가지 조치 모두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기에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은 사실상 불가피해보인다.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려는 국가들은 공동으로 행동을 조율함으로써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편, 가자지구 전쟁을 어떻게 끝내고 어떤 정치적 프로세스가 뒤따라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촉진되길 희망한다.

여전히 일부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일부 국가들이 승인하지 않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협상한 합의안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의 국제관계 및 중동 정치 전문가인 파와즈 게르게스 교수는 “미국은 팔레스타인 건국의 필요성에 대해 겉으로는 동의하는 척 말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직접 협상을 고집한다. 이는 사실상 자결권을 지니려는 팔레스타인의 열망에 대해 이스라엘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평화 회담은 1990년대 시작되었으며,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가 나란히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평화 프로세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2014년 워싱턴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협상이 결렬되기 전부터 이미 삐걱대던 상태였다.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경계와 성격, 예루살렘의 지위, 이스라엘 건국 선언 이후 1948~49년 벌어진 전쟁으로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운명 등 가장 까다로운 사안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한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UN 가입에 강하게 반발한다.

지난해 4월 AFP 통신 보도에 따르면 길라드 에르단 주UN 이스라엘 대사는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대량 학살 테러에 승리를 안겨주는 꼴”이라면서 10월 7일 하마스 공격 이후 가입이 승인된다면 이는 테러에 대해 보상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승인이 이스라엘의 분노를 살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지지자들을 포함해 일각에서는 팔레스타인이 영구 주민, 명확한 영토, 제 기능을 하는 정부, 대외 관계 능력 등 1933년 몬테비데오 협약에서 정의한 국제법상 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4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은 보다 유연한 정의를 적용해야 한다며, 국제 사회에서의 인정에 더 중점을 둔다.

미국의 입장은?

트럼프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에 반대하는 입장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 또한 지난 18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영국) 총리와 의견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사실상 미국의 입장은 팔레스타인 독립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하기로 굳어진 모양새다.

마르코 루비오 현 미국 국무장관은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위한 국제 사회의 압박이 하마스를 “더욱 대담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지지하는 측에 이러한 움직임이 오히려 서안지구를 합병하도록 이스라엘을 자극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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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다

이는 UN 내 팔레스타인 지위에 어떤 의미일까?

현재 팔레스타인은 교황청과 마찬가지로 UN에서 ‘비회원 영구 옵서버 국가’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1년 팔레스타인 측은 UN 정회원국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안보리의 지지 부재로 인해 표결에 부쳐지지도 못한 채 실패했다.

그러나 2012년 UN 총회는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비회원 옵서버 국가’로 격상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팔레스타인은 “결의안에 투표할 수는 없지만, 총회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서안지구 및 가자지구에서는 환영하였으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비난이 이어진 이러한 결정 덕에 팔레스타인은 2015년 UN 최고 법원인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가입하는 등 여러 국제 기구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던 지난해 5월, UN 총회는 격렬한 논쟁 끝에 UN 내 팔레스타인의 권한을 강화하는데 동의하는 한편, 회원국으로도 받아들이자고 촉구했다. 해당 결의안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토론에 완전히 참여하고, 의제 안건을 제출하며, 위원회에 대표를 선출할 수 있으나, 투표권은 여전히 갖지 못한 상태다.

회원국 지위 승인은 UN 안보리만이 결정할 수 있다.

그해 4월,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미국은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거부하며, 이를 “시기상조”라고 평가한 바 있다.

안보리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을 지니나, 총회 결의안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싱크탱크 ‘중동 연구소’에서 팔레스타인 문제 프로그램을 이끄는 칼레드 엘긴디는 “UN 정회원국이 되면 팔레스타인은 결의안을 직접 발의하고, 총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고, 언젠가 안보리 의석을 갖거나 투표권을 지니게 되는 등 외교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두 국가 해법을 실현할 수 없다. 이는 이스라엘의 점령이 끝나야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SOAS 런던 대학의 길버트 아크카르 개발학 및 국제관계학 교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UN 정회원국이 된다고 해서 그다지 큰 성과를 보진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은 상징적인 승리에 불과할 것”이라는 아크카르 교수는 가상의 ‘팔레스타인 국가’의 승인과 1967년 점령지 일부에 제한적으로 존재하며 이스라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무력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라는 현실 사이 간극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실은 ‘주권을 지닌 독립적인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고 강조했다.

보도: BBC News, BBC 글로벌 저널리즘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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