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인도의 아누파르나 로이 감독이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데뷔작 ‘잊힌 나무들의 노래(Songs of Forgotten Trees)’로 오리존티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로이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대부분의 여성들이 얻기 힘든 승리를 거뒀다.
로이 감독은 기쁨에 떨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는 독립영화 분야의 새로운 목소리를 위한 특별 부문에서 수상한 최초의 인도 감독으로 역사를 썼다.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였지만, 로이 감독이 화려한 베네치아의 궁전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웨스트벵골주의 평범한 마을 부족 출신이라는 점은 이번 수상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었다.
인도 영화계는 리트윅 가탁부터 사티아지트 레이, 므리날 센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31세의 로이 감독은 콜카타의 엘리트 문화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자랐다. 그는 대부분의 소도시 인도인들이 그렇듯 대학 졸업 후 콜센터 취업을 택했다.
로이 감독은 화상 인터뷰에서 “결혼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고 경제적 안정을 얻기 위한 탈출구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업 후 더 큰 의미가 생겼다.
델리에서 IT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던 중, 로이 감독은 우연히 영화과 학생들을 만나 영화와 사랑에 빠졌고, 그 후 6년간 번 돈을 모두 모아 첫 단편 ‘강으로 달려가다(Run to the River)’를 자비로 제작했다.
몇 년 후 뭄바이로 이주한 그는 한 파티에서 ‘잊힌 나무들의 노래’의 수석 프로듀서인 란잔 싱을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선생님, 제3세계 영화 제작에 관심 있으신가요?”
그의 대담함에 놀란 싱은 로이에게 다음날 만나 10분 안에 아이디어를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만남은 몇 시간을 훌쩍 넘겼고, 며칠 만에 그는 프로젝트 투자를 결정했다.
아누락 카시압 감독의 범죄 드라마 ‘갱스 오브 와세이푸르(Gangs of Wasseypur)’의 열렬한 팬이었던 로이 감독은 싱에게 이 영화를 카시압 감독에게 보여달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결국 카시압 감독도 이 영화를 후원했다.
뭄바이의 심장부에서 펼쳐지는 ‘잊힌 나무들의 노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온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 명은 배우를 꿈꾸며 성노동을 부업으로 하는 투야이고, 다른 한 명은 콜센터에서 일하는 이주민 스웨타이다. 이들은 투야의 ‘슈가 대디’가 소유한 고급 아파트에서 함께 살게 된다.
단순한 동거로 시작된 이 관계는, 두 여성이 도시의 복잡함 속에서 소외와 생존이라는 공통된 경험을 나누고 동성애적 욕망을 느끼면서 빠르게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더 할리우드 리포터는 이 영화를 “여성들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고뇌에 찬 초상화”이자 “서로에게서 위안을 찾는 두 젊은 여성의 명료하고 절제된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평했다.
또 다른 비평은 로이 감독이 “놀라운 섬세함”으로 도시의 소외를 탐구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인물의 “감정적 영역”이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의도적으로 느리고 관찰적인 촬영 방식을 사용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공식적인 영화 교육을 받지 않은 로이 감독은 “롱 숏, 미드 숏, 클로즈 숏” 같은 전통적인 영화 촬영 규칙을 따르지 않기로 의식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끊김 없는 연속 촬영으로 인물들의 일상을 더욱 진솔하게 포착하려 했다.
그는 영화 전체를 자신의 아파트에서 촬영했으며, 심지어 두 주연 배우를 촬영 기간 동안 아파트에 머물게 했다.
로이 감독에게 ‘잊힌 나무들의 노래’는 감독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원래 다큐멘터리로 기획됐다. 두 주인공은 로이 감독의 할머니와 의붓딸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실제 두 사람은 육체적 관계가 아닌 정신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공유했다.
투야의 친구인 ‘줌파’라는 또 다른 캐릭터는 불가촉 천민 공동체 출신인 로이의 어린 시절 실제 친구 주마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주마는 12살에 결혼했다.
로이 감독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주마의 결혼은 개인적 결정이 아니었어요. 정부는 불가촉 천민 계층이 교육받는 대신 결혼하도록 장려했죠. 그건 정치적인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 저는 체중에 따라 쌀을 받았고 남자아이들은 책을 받았어요. 그것도 정치적인 거예요.”
로이 감독은 인도 경제 성장의 그림자 속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계속해서 영화에 영감을 준다고 말한다. 룽기(허리에 두르는 통 모양의 천)를 입은 야윈 남자들이 논에서 힘들게 일하고, 여자들은 연못에서 목욕하며, 가족들이 새벽같이 건설 현장으로 일하러 가던 모습들이 그것이다.
“제 주변은 온통 가난과 경제적 불안정으로 가득했어요. 그리고 저는 이런 사람들의 삶에 공감합니다.”
이런 배경을 지닌 로이 감독이 수상 당시 자신의 뿌리와 정치적 신념을 굳건히 드러낸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는 이 무대를 이용해 가자 지구의 아이들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디자이너에게 팔레스타인과 푸룰리아라는 두 세계를 하나로 담아낸 직조 사리(인도 전통의상)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벵갈 전통 문양이 손으로 그려진 그 사리는 가장자리에 팔레스타인 국기 색깔을 넣었다.
이 사리는 소셜 미디어에서 비판을 받았지만, 로이 감독은 자신의 발언을 굳게 지지한다고 말했다.
로이 감독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제 목소리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잊힌 나무들의 노래’의 속편과 프리퀄이 다음 작품으로 계획되어 있으며, 현재 대본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과연 그가 상업적인 영화를 만들까?
감독의 대답은 단호한 “아니요”였다.
“저는 달콤하게 포장된 영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