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이란 단어에 익숙하신 분도. 생소하신 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개발 도상국을 대상으로 인프라와 유지보수가 필요한 최신 기술 대신 친환경적이고 안정된 기술을 제공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개념이다. 처음에는 중간기술이란 단어로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저전력 기술이나 커뮤니티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저자본으로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 등 다양한 개념들이 섞여서 쓰이고 있다.
한편 비디오 게임 문화는 그 시작도 선진국이었으며 그 문화의 형성 또한 중산층이 충분한 자원을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진행되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컴퓨터 게임을 즐기려면 집에 컴퓨터가 있어야 했고, 가정용 게임이라면 거실과 텔레비전이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어느 쪽이든 안정된 전기가 집에 공급될 필요가 있다. 또한 각 가정에서 게임기를 구매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필요하다.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던 아타리2600의 발매는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인 1977년이다. 한국에서 컬러 텔레비전 판매가 시작된 때가 1980년인 것을 고려하면 가정용 게임기의 보급이 이러한 기술의 보급이나 환경의 영향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음이 실감난다.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랄프베어가 1972년에 만든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인 마그나복스 오딧세이의 개발 이유가 사람들이 남아도는 텔레비전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던 것을 생각하면 텔레비전을 한 마을이 공유하던 시절에는 비디오 게임은 꿈도 못 꾸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이렇듯 대중에게 비디오게임은 첨단기술의 첨병으로 인지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디어나 언론 등에서 게임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다룰 때가 아니라면 최신 기술이 집약된 문화산업의 수출역군 이미지일 때가 많다. 다른 미디어들 역시 신기술의 활용이 이슈가 되기는 하지만 게임은 특히 그런 부분이 크다. 최신 게임은 현대 인공지능 개발에 필수적인 그래픽카드를 두고 그 점유율을 다투고 있고, 컴퓨터 그래픽스 분야의 신기술은 영화에서 활용되며 그 존재를 대중에게 알리기도 한다. 재미난 부분은 이러한 신기술의 활용이 작품의 재미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계를 되돌려서 닌텐도의 게임보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닌텐도의 역사에서 핵심 인물로 꼽아볼 수 있는 이들은 여럿이 있다. 대표적으로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야모토 시게루나 지금은 고인이 된 이와타 사토루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 회장 등이 있을 것이다. 그들보다 인지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있다. 수많은 히트 게임기를 만들어 낸 요코이 군페이다. 1941년생인 요코이 군페이는 1996년 닌텐도를 그만두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1997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해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 그가 만든 게임보이는 닌텐도가 지금까지도 휴대용 게임기 시장의 왕좌를 한 번도 놓치지 않게 만든 중요 공신이다. 그의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枯れた技術の水平思考”으로 직역하자면 ‘말라버린 기술의 수평적 사고’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지만 국내엔 딱 맞는 번역을 아직 찾아내지 못한 탓인지 ‘오래된 기술’이나 ‘성숙한 기술’ 등으로 번역된다. 좀 더 풀어보자면 유행이 지나서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기술들을 잘 연결한다는 관점이다. 특히 닌텐도는 Wii 이후의 하드웨어에서 이렇게 익숙하거나 이미 충분히 검증된 기술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활용하여 재미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임보이가 처음 나왔을 때는 상당히 크고, 화면은 흑백이었다. 심지어 백라이트조차 없어 밤에는 조명 없이 게임을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기기에서 여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보이는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휴대용 게임기 시장의 성공을 보고 닌텐도에 뒤이어 세가나 아타리 등 다른 게임 전문 회사들도 휴대용 게임기를 발매했다. 특히 세가의 게임기어는 출시 시기상 게임보이와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풀컬러에 기기의 성능도 게임보이보다 좋았다. 시장에 뛰어든 아타리 링크스나 NEC의 PC엔진 GT역시 게임보이보다 좋은 하드웨어와 컬러 디스플레이로 그 차이점을 어필했다. 문제는 당시는 배터리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해서 모두 건전지를 통해 구동해야 했다는 데 있다. 컬러 게임기를 건전지를 이용해 구동했을 경우 구동 시간은 수 시간에 불과했다. 휴대용 게임기로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짧았다. 하지만 닌텐도의 게임보이는 30시간까지 플레이가 가능했다. 가격도 다른 게임기에 비해 저렴했다. 게임기의 성공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따라오겠지만 성능만이 그 잣대는 아니라는 것을 게임보이가 증명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코이 군페이는 게임보이와는 반대로 버추얼보이에서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술로 3D 가상현실을 구현하려다가 상업적으로 실패한 후 닌텐도에서 퇴사하게 되었다.
차세대 게임기 시장 경쟁이 심화하자 AAA 게임(트리플A라고 주로 발음하며 영화에 비유하면 블록버스터 게임이다. 대자본이 들어간 높은 품질의 게임을 지칭함) 개발에서도 기술력과 그래픽 품질을 둘러싼 싸움이 격화했다. PC의 그래픽카드 성능이 좋아지면서 어느 순간 게임에서 1080p 해상도를 넘어 4k 해상도의 화면(세로 픽셀이 1080줄인 해상도를 1080p으로 부름. 일반적으로 풀HD라고 부르는 해상도. 4K는 3840×2160으로 1080p해상도에 비해 픽셀 수가 4배로 선명하고 디테일한 화질을 제공하며 일반적으로 UHD로 불리움)으로 60프레임(게임에서 1초에 화면이 갱신되는 숫자로 정식으로 표기하자면 프레임 퍼 세컨드 (FPS) 이지만 프레임으로 줄여 쓰는 경우가 많음.)이 넘으면서도 끊기지 않는 그래픽을 가지는 것이 게임의 상업적인 홍보 수단이 되기도 했다. 화려한 그래픽의 게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출력이 높은 그래픽카드가 필수적으로 따라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진영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은 하드웨어의 성능을 경쟁했으며 이는 곧 비디오 게임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능의 향상이 공짜로 이루어질 리는 없다. 최신 그래픽카드인 엔비디아의 RTX5090의 경우 소비전력이 500W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발열 또한 일반 그래픽카드보다 심해 열기를 식히기 위해 물을 이용한 쿨러가 필요하다. 소비전력 500W면 보통 전기 히터나 인덕션, 토스터가 사용하는 전력이다. 차이점이라면 컴퓨터는 켜져 있는 동안 계속 전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며 컴퓨터의 사용전력은 그래픽카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마어마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셈이다.
게임기는 컴퓨터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아무래도 대량 생산이 필요하고 무작정 성능을 높이면 가격과 직결되기 때문에 게임기에 사용되는 부품의 스펙은 단순히 성능보다는 생산단가에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게임기의 소비 전력량은 구동하는 게임의 영향도 있기 때문에 소비전력에 대해서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200W는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닌텐도 스위치2의 경우 예외적으로 소비전력을 공개하고 있는데 TV모드로 게임을 플레이할 경우 19W로 공개하고 있다. 이는 다른 차세대 게임 플랫폼 소비전력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생각해 보면 같은 시간 게임을 한다고 가정하면 닌텐도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친환경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AAA게임 경쟁은 단순히 사용하는 자원의 양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추세여서 게임 산업이 더는 AAA게임의 개발에 들어가는 리소스를 감당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런 개발비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뾰족하게 다듬어 게임 시장에 도전해서 성과를 얻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좀 더 과거로 가면 <마인크래프트> 같은 경우가 있다면 최근의 사례로는 며칠 전에 나온 <실크송>이 있다. 분명히 강력한 하드웨어가 필요한 게임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연산량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는 하드웨어 자원부터 개발 자원까지 현명하게 분배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