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정년연장…산업재해 시한폭탄 되나

65세 정년연장…산업재해 시한폭탄 되나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양대노총 위원장과의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정민 경제전문기자]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정년연장 논의를 본격화할 것을 요구하면서 ‘65세 정년연장’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앞서 대선 후보 당시 이 대통령은 한국노총과 ‘65세 정년 연장’, ‘주 4.5일제 도입’ 등이 포함된 정책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현재 국내 60세 이상 취업자가 사상 처음으로 700만명을 넘어서면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4%를 차지했다. 근로자 4명 중 1명은 60세 이상이라는 얘기다.

경제 중추 역할을 해온 40대(630만명), 50대(683만명)를 뛰어넘은 것은 물론, 노동시장에 갓 진입한 청년층(15~29세, 394만명)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이미 노동시장에선 60세 정년이 무의미해진 셈이다. 그러나 ‘65세 정년연장’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청년층과의 일자리 경쟁 △인건비 증가 및 생산성 하락에 따른 기업 경쟁력 약화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정년연장은 산업재해 문제와도 직결된다. 고령 근로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안전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65세 정년연장을 두고 산업안전에 대한 논의를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고령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산업안전 패러다임 전환 없이 정년만 연장된다면 65세 정년은 노동의 기회가 아니라 ‘산업재해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 60세 이상이 산재 사망자 증가 견인…60% 달해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2025년 2분기 산업재해 현황’(누적기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산업재해(사고+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근로자는 총 1120명, 지난해 같은기간 1033명보다 87명(8.4%) 늘었다. 이를 연령대로 구분해 보면 60세 이상 근로자중 산재 사망자수는 지난해 상반기 540명에서 올해 상반기 632명으로 92명(17%) 증가했다.

60세 미만 연령대에서는 사망자수가 5명 줄었지만 60세 이상에서 사망자가 크게 늘면서 전체 사망자수를 끌어올린 것이다.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를 제외한 산업재해 사고로 인한 사망자만 따로 추려도 추세는 비슷하다.

올해 상반기 산재 사고 사망자는 총 44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99명보다 50명(12.5%) 늘었다. 60대이상 산재 사망자는 224명으로 전체의 절반이나 됐다. 증가분도 60세 이상에서 30명이 사망해 60%를 차지했다. 60세이상 근로자가 전체 취업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4%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고령 근로자에게 산업재해가 집중되는 현상은 이들이 주로 유입되는 산업 특성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상반기 산재 사고 사망자는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42.1%(189명), 사업장 규모별로는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42.1%(189명)가 발생했다. 건설업종은 전년 동기 대비 11.2%(19명) 늘었고 5인 미만 사업장 사고 사망자는 증가율이 37%(51명)에 달했다.

건설업과 5인 미만 사업장은 대표적인 청년층 기피 산업으로 꼽힌다. 진입 장벽은 낮지만 임금 수준이 낮고, 고강도·고위험 작업이 많아 청년층 기피 현상이 심화하면서 고령 근로자 비중이 높아지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산재 사망사고를 유형별로 살펴봐도 이러한 고령화 현상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고 유형별로는 ‘떨어짐’으로 인한 사망자가 153명(34.1%)으로 가장 많았다. ‘떨어짐’으로 인한 사고 사망자는 지난해 144명에서 올해 153명으로 6.3%(9명)늘었다. 이는 고령 근로자가 균형을 잃기 쉽고,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해 안전 장비 착용 및 고소 작업 수행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때문으로 풀이된다.

교통사고가 59명(13.1%)으로 뒤를 이었다, 교통사고는 42명에서 59명으로 40.5%(17명)나 증가했다. 택배·운수업 종사자가 급격히 늘어난 데다, 고령 운전자의 순발력 저하·피로 누적이 결합돼 사고 발생 확률을 높인 결과라는 분석이다.

또한 시력과 청력 약화로 인해 경고음이나 시각적 위험신호를 제때 인지하지 못해 동일한 작업 환경에서도 젊은 근로자보다 사고 가눙성이 높아진다. 고령 근로자 집중도가 높은 업종일수록 ‘작은 실수 → 중대재해’로 이어지는 치명률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다

◇정년연장 안전정책 병행해야…산재 시한폭탄 우려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에, 고령 근로자의 안전을 담보할 법적·제도적 장치를 선제적으로 마련하지 않으면, 정년 연장은 오히려 산재의 급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전문가들은 노화로 인해 저하되는 신체·인지 기능을 고려한 맞춤형 안전 프로그램을 개발해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반적인 기본대책을 넘어 VR 기술을 활용한 가상 체험 훈련이나 현장의 위험을 재현한 체감 훈련 등을 통해 위험 상황을 미리 체험하고 대처 능력을 높이는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고령 근로자에게 빈번히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중심으로 그 신체적·정신적 특성을 고려한 대책을 사업장에 도입하고, 작업 배치 전에 시력, 청력, 평형기능, 근력, 인지기능 등 신체·정신 기능 저하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작업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추락으로 인한 사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계단 기울기 조절, 승강 설비 개선, 미끄럼 방지 바닥재 사용, 난간 보강 등 고령 근로자에 친화적인 작업환경 조성 또한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고령 근로자의 신체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중량물 운반 보조 장치, 작업 높이 조절 설비 등 인체공학적 설비 도입을 위해 정부가 보조금과 재정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해 기업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는 고령 근로자가 갑작스럽게 퇴직하지 않고, 신체 부담이 적은 직무로 점진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고령자 친화 직무 발굴·전환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도입해 고령 근로자의 재취업을 돕는 동시에 안전한 노동 환경 제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고령 근로자 안전을 위해서도 제재 강화보다 예방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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