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대상 제외되고 훼손되는 사구들, 유형별 생태적 복원 추진해야
[※ 편집자주 = 해안사구는 바닷가와 그 주변 육상에 있는 모래 언덕 등 모래땅입니다. 해안사구는 해수욕장 백사장에 모래를 공급하는 모래 저장고이며, 거센 파도의 충격을 흡수하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합니다. 나아가 기후 위기를 막아 줄 ‘블루카본’의 저장고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 열풍 속에 제주를 비롯한 국내 많은 사구가 옛 모습과 기능을 잃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제주의 해안사구를 중심으로 그간 크게 쓰임이 없는 모래땅으로만 여겨진 해안사구의 가치를 소개하고, 보전 방안을 찾아보는 기사를 10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제주 해안사구 중에는 환경·문화적으로 가치가 있지만, 관리 대상에서 제외돼 훼손 위기에 놓인 사구가 여럿 있다.
제주 서귀포시 알뜨르비행장 인근 해안에는 지질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하모리층’ 위에 형성된 사구가 있다. 하모리층은 송악산 화산 분화로 이뤄진 화산쇄설물이다.
사구 층의 높이는 10m가량으로 높고 사구 모래 속에는 선사시대 때 쓰던 토기와 전복·소라 등의 화석이 발견됐다.
2004년 ‘제주도 해안을 가다’에서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이곳을 ‘모슬포 사구’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이 해안사구는 환경부의 ‘제주도 해안사구 관리 목록’에서 제외돼 공식적으로 이름이 없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해병대 사격 훈련장으로 쓰이며 사구 진입도 통제됐다.
안덕면 용머리해안 서쪽 ‘설쿰바당’에도 해안사구가 있다. 이 지역 사계리 ‘설쿰동네’라는 지명에서 이름을 따왔다.
설쿰바당의 해안사구도 하모리층 위에 쌓여 형성됐다. 사구 절벽에는 여러 지층이 지표에 드러나 수천 년의 지질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설쿰바당의 해안사구도 환경부 관리 목록에서 제외돼 있다.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해안인 ‘뒷난여’의 기원 해안사구는 세계유산의 하나인 당처물동굴 내부에 석회 생성물을 만들어 낸 것으로 확인됐지만 역시 환경부의 해안사구 목록에서 빠져 있다.
앞서 2016년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사구를 보호·관리하기 위해 사구의 역동성 및 규모 등의 기준에 따라 사구 목록을 지정했다.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사구 관리 목록 외에도 지역별로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곳이 더 있을 것”이라면서도 “현재 국립생태원은 추가 사구 조사 계획이 없다. 국가 단위의 조사가 아니더라도 각 지자체가 나서 사구 지정 및 관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좌읍 세화리와 바로 동쪽 하도리 자연마을 면수동에도 모래 언덕이 있지만 이름이 없다.
과거 비교적 넓었던 면수동 해안 백사장은 현재 대부분 모래가 유실돼 갯바위가 듬성듬성 드러나 있다.
사구는 해안에 모래를 자연적으로 채워주는 ‘모래 저장고’ 기능을 하지만, 사구 훼손으로 이 같은 기능이 퇴색되면서 면수동 해안 백사장 모래 침식이 가속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 출신 김모(61)씨는 “어렸을 때는 면수동 해안은 현재 세화 해변 못지않게 백사장이 넓었지만, 현재는 많은 갯바위가 드러나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로 모습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해안사구는 모래 저장과 기능과 함께 마을과 농경지를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지켜주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한다.
이호해안과 설쿰바당, 사계리 등에서는 사구가 해풍을 막고 곰솔림이 농경지를 보호하는 등 생활 공간과 밀접한 생태 구조물의 역할을 한다. 구좌읍 평대리는 바닷바람을 피하기 위해 사구 안에 마을이 자리 잡았다.
또 해안사구는 탄소 흡수원인 ‘블루카본’ 지대이자 멸종위기종의 서식처다.
관속식물 11∼15종, 바다거북, 흰물떼새, 달랑게, 노랑부리백로, 대흥란 등 다양한 생물이 이곳에서 살아간다.
제주 해안사구는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면적이 13.55㎢에 달했으나 2016년 국립생태원 조사에서는 2.38㎢로 82.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안도로 건설, 관광지 개발, 토지이용 변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다행히 현재 남아 있는 해안사구의 약 78.4%(1.87㎢)는 국공유지로, 행정적 의지만 있다면 복원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사구 보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행정당국이 정책적 의지로 복원에 나선다면 훼손된 사구도 제 기능을 되찾을 수 있다며 지금이 제주 해안사구 복원의 마지막 기회라고 입을 모은다.
제주도는 2018년 협재 해안사구에 1.2㎞ 구간에 목재 울타리를 설치해 모래언덕 출입을 막았다. 또 사계 해안사구에서는 462m의 모래 포집기를 설치했고, 신양 해안사구에는 최근 블루카본으로 주목받는 염생식물을 심고 있다.
아직 미약한 수준이지만 제주에서 사구를 생태적으로 복원하고자 한 첫 시도다.
또 제주 해안사구를 보전하기 위한 ‘제주도 해안사구 보전 및 관리에 관한 조례’가 제주도의회에서 지난달 가결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조례는 해안사구 중 도유지의 경우 대부·매각·교환·양여 등을 할 수 없는 행정재산으로 관리해 해안사구 소멸을 방지하도록 했다. 또 도지사는 5년마다 정기적으로 기본계획을 수립해 해안사구 보전에 나서야 하며 해안사구 보전 관리를 위한 ‘해안사구보전위원회’ 설치 방안이 제시됐다.
전문가들은 점차 사라져가는 제주 사구를 복원하기 위해 단계별 복원 전략을 수립하고 유형을 분류해 복원해야한다고 진단한다.
단순히 모래를 다시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생물과 모래, 바람, 바다의 균형을 고려한 생태적 복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또 주기적으로 사구에 대한 조사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립생태원은 2017년 ‘국내 해안사구 관리현황 및 개선 방안’ 연구에서 이 같은 전략을 제시하고 지속적인 홍보와 교육, 생태관광 프로그램 연계, 지역주민과 행정의 협의체 구성 등을 제안했다.
서종철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유형별 분류 관련, 구체적으로 사계와 신양 사구 등 훼손이 덜 된 곳을 A 유형으로 분류해 생태경관보호지역으로 지정할 것을 제시했다.
이어 복원 필요성 수준에 따라 B 유형은 김녕·월정·협재·평대·하도 사구, C 유형은 중문 사구, D 유형으로 섭지코지·이호·표선·곽지·함덕·하모 사구 등을 제시하며 각각에 맞는 복원 사업 진행을 주문했다.
예를 들어 B 유형인 평대 사구의 경우 단기적으로 해빈 상부에 모래 포집기 설치해 모래가 충분히 쌓일 수 있도록 조성하고 모래지치, 순비기나무 등 사구 식물을 심어 모래가 날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적극적인 방안으로는 평대 사구를 지나는 해안도로 이전이나 친자연적인 복원 사업, 건축 및 토목 공사 시 마을회 검토 등을 제시했다.
사실 그간 이뤄진 제주 사구 보호 사업은 생태적 접근이 아닌 건축·토목 방식이 주를 이뤘다.
서귀포시 황우치 해안사구에는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해 약 33만t의 모래와 암반을 투입했지만, 수개월 만에 다시 유실돼 급경사지로 변모했다.
성산읍 수마포 해안도 사구를 바위로 덮는 공사 이후 사구의 원형을 잃었다.
전문가들과 환경단체에서는 이 같은 방식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양수남 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은 “석축과 바위가 아니라, 모래를 붙잡아 줄 수 있는 염생식물 식재와 생태복원 방식이 필요하다”며 “생태적 가치에 기반한 장기 복원 전략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태적 복원을 위해 기존 시설을 철거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양 사무처장은 “곽지 해안사구는 현재 석축 호안을 철거해 모래가 자연스럽게 순환될 수 있도록 하고 화순 해안사구는 염생식물을 심어 사구의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계 해안사구는 지질학적 가치가 높지만 1차 사구와 2차 사구가 해안도로로 단절돼 있어 아쉽다”며 “신양 사구의 경우 현재 탐방로가 사구를 가로질러 있어 도로 쪽으로 옮기고 나무 울타리와 안내판을 설치해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주대 산학협력단은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인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김녕동굴 위 지표면의 사구지대 농경지에 질산 등 다량의 비료가 살포돼 동굴 내 석회질 생성물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며 대책이 시급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기사는 제주환경공익기금위원회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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