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의회가 또 한 명의 총리를 해임한 끝에, 2년 만에 세 번째 지도자로 기업인 아누틴 찬비라쿨을 새 총리로 선출했다.
태국의 가장 강력한 정치 명문가 출신인 페통탄 친나왓은 지난주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 처리 과정에서 윤리적 위반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임됐다.
아누틴의 부미자이타이당은 친나왓 가문이 주도하는 푸어타이당 연정에서 이탈해 의회의 지지를 확보하며 총리직을 따냈다.
그러나 최근 잇따른 헌법재판소 판결과 군사 쿠데타로 연달아 정권이 무너져 온 태국에 불확실성이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누틴의 선출은 2001년 페통탄의 아버지 탁신이 총리에 오른 이래 태국 정치를 지배해온 친나왓 가문에 큰 타격을 안겼다.
4일 밤, 탁신 전 총리가 전용기를 타고 태국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언론과 국민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5일 새벽, 탁신은 SNS에 글을 올려 자신은 치료를 위해 두바이로 향했으며, 자신의 재판이 예정된 9월 9일에는 귀국하겠다고 밝혔다. 이 재판을 통해 탁신의 재수감 여부가 결정된다.
2023년 총선에서 주요 세력으로 떠올랐던 푸어타이당은 이제 변두리로 밀려났다. 마지막까지 총리 후보로 남은 사람은 차이카셈 니티시리였지만, 그는 대중적 인지도가 낮고 건강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친나왓 가문의 포퓰리즘 정책은 저소득층 태국인들에게 큰 지지를 얻었지만, 방콕의 보수·왕당파 엘리트와는 충돌을 빚었다.
탁신과 그의 여동생 잉락은 각각 2006년과 2014년 군사 쿠데타로 축출됐다.
페통탄이 총리에 올랐을 때는 가문의 정치적 복귀로 여겨졌지만, 이번 해임은 그들이 다시금 보수·왕당파 엘리트의 신임을 잃었음을 보여준다.
페통탄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임된 다섯 번째 태국 총리로, 이 다섯 명 모두는 그의 아버지 탁신의 지지를 받았던 인물들이다.
페통탄 또한 전임자가 같은 재판소에서 윤리적 위반으로 해임된 후 총리에 취임했었다.
푸어타이가 주도하는 연정은 본래 선거에서 승리한 개혁정당이 정부를 구성하지 못한 뒤에야 탄생했는데, 그 개혁정당은 결국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고 지도부 일부는 10년간 정치 활동이 금지됐다.
그 후신인 인민당은 현재 아누틴을 지지하는 세력 가운데 하나다. 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보유했지만 여전히 정부를 구성할 권한은 없다.
아누틴 찬비라쿨은 누구이며,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
58세의 아누틴은 오랫동안 총리를 노려온 베테랑 정치인이자 협상가다. 그러나 그 역시 지금보단 더 나은 상황에서 총리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의 정당 부미자이타이는 의회 500석 중 69석만 보유하고 있어, 두 개의 거대 정당 중 한 곳의 지지를 받아야만 정국을 운영할 수 있다.
부미자이타이는 이념적 색채가 거의 없고 거래 중심적인 정당으로 알려져 있으며, 과거에는 보수·군부 세력과 손잡은 적도 있고 최근에는 푸어타이와도 연합한 바 있다.
그는 페통탄과 캄보디아의 강경 지도자 훈 센 사이의 민망한 통화 내용이 유출된 사건을 이유로 푸어타이 연정을 떠났지만, 그 외에도 이견이 있었다.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의회 최대 정당이자 젊고 진보적인 인민당이었다. 그러나 두 당은 잘 맞는 파트너라 보기 어려웠다.
아누틴은 강경한 왕당파다. 반면 인민당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인민당 지도부가 정치에서 배제된 이유 중 하나이며, 당내 일부 의원들은 불경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인민당 의원들 상당수는 부미자이타이와의 협력에도 반대했다.
그러나 페통탄의 해임으로 푸어타이가 혼란에 빠지면서, 전 총리이자 쿠데타 지도자였던 프라윳 찬오차가 다시 불려올 수 있다는 가능성도 거론됐다. 이는 아누틴과 손잡는 것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지였다.
결국 인민당은 아누틴 총리직 지지를 조건으로 강력한 요구를 내걸었다.
아누틴은 4개월 내 총선을 실시하고, 군부가 작성한 헌법 개정 절차를 시작하는 데 동의했다. 인민당은 새 정부의 생존만 지원할 뿐, 입법 활동은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아누틴은 제한된 권한 속에 단 4개월 동안만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총리직을 시작하게 됐다.
아누틴은 부유한 정치 가문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여러 장관직을 지냈고, 가족이 운영하는 건설사는 이번 총리 선거가 열린 새 의사당 단지를 건설했다.
아누틴이 가장 잘 알려진 업적은 2022년 보건부 장관 시절 태국의 대마초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그는 세 대의 개인 비행기를 소유한 열정적인 파일럿이기도 하다.
이제 그의 도전은 불과 몇 달 만에 또다시 정치적 위기를 맞은 태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어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