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공개석상에 이례적으로 등장한 멜라니아 트럼프 미국 영부인은 백악관에서 “로봇이 이미 와 있다”며, AI가 주도할 앞으로 수십 년을 대비해 “미국의 아이들을 준비시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미래는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닙니다. 이 초기 단계에서 우리는 AI를 우리 아이들을 대하듯 대해야 합니다. 역량을 키워주되,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합니다.”
이번 행사는 올해 초 설립된 백악관 AI 교육 태스크포스 회의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 뒤 지금까지도 극히 적은 공개활동만 해온 영부인에게 있어 몇 안 되는 공식 일정 중 하나였다.
슬로베니아에서 멜라니야 크나브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55세의 전직 모델인 영부인은, 한때 “수수께끼”로 불렸다. 전임 영부인들보다 공개 석상이 적었고 연설이나 활동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편의 2024년 대선 캠페인 내내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자, “멜라니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백악관에서 멜라니아 여사를 목격하는 일은 드물 뿐만 아니라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뉴욕과 플로리다에서 보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올해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멜라니아 여사는 그동안 주로 모호하게 정의돼 왔던 영부인 역할을 더 적극적이고 집중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의 관심사는 주로 아동 문제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1기 때 시작된 ‘비 베스트(Be Best)’ 캠페인를 확장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아동 복지, 사이버 불링 대응, 오피오이드 남용 방지 등을 다룬다.
최근 AI 관련 활동 외에도, 그는 개인의 동의 없이 온라인에 실제 혹은 AI 합성의 ‘사적인 이미지’를 게시하는 행위를 범죄화한 ‘테이크 잇 다운 법’ 통과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법안은 극심한 분열 속에서도 드물게 초당적 지지를 얻었다.
역대 최초로, 멜라니아 여사는 남편과 함께 무대에 올라 법안 서명식에서 공동 서명자로 참여하며 법 제정에 직접 이름을 올렸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의 교수이자 영부인 연구 역사학자인 아이나브 라비노비치 폭스는 BBC에 “영부인들이 젊은 세대를 주제로 삼는 것은 흔한 일”이라면서도, 멜라니아의 접근법은 “다르다”고 말했다.
“영부인들은 전통적으로 아이들이나 교육처럼 더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영역에 집중하곤 합니다. 역사적으로 성별화된 주제들이죠. 멜라니아의 특이한 점은 그 접근 방식에 있습니다.”
라비노비치-폭스 교수는 “그의 접근은 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측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그는 테이크 잇 다운 법이 리벤지 포르노를 호스팅하는 플랫폼들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법은 불법 콘텐츠를 48시간 내에 삭제하도록 요구하며,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가한다.
또한 이번 백악관 행사 역시 아동 교육에 초점을 맞췄지만, 멜라니아 여사는 어린 아이들이 아닌 IBM, 구글 등 민간 대기업 대표들과 각료, 행정부 관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메리칸 대학교 ‘영부인 이니셔티브’ 책임자이자 로라 부시 전 영부인의 비서실장을 지낸 아니타 맥브라이드는, 이번 행사가 트럼프 1기와 달라진 멜라니아 여사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제는 외부 파트너들이 그와 협력하려 합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부 단체들은] 처음에는 멜라니아와 만나는 것을 주저했습니다. 원탁회의를 여는 것도 어려워했고, 그녀 곁에는 강력한 조직도 없었죠.”
맥브라이드는 멜라니아 여사가 교육, 기술, 비즈니스, 입법을 연결해 아동을 보호하는 데 주력하는 방식이 “급변하는 신흥 기술들에 긴박감을 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실질적 가치를 가지고 이 플랫폼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입법 통과를 실제로 돕는 역할도 할 수 있고요.”
트럼프 대통령은 또 멜라니아 여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과거 대화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밝혔다. 멜라니아는 지난 8월 푸틴에게 편지를 보내 “아이들과 전 세계 미래 세대를 보호할 때”라고 썼다.
이 편지와 그의 아동 문제 집중은 주목을 받았다. 몇 주 뒤, 그는 올레나 젤렌스카 우크라이나 영부인과 에미네 에르도안 터키 영부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멜라니아 여사의 편지는 전례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영부인들도 미국 외교정책에 일정한 역할을 해왔다.
예컨대 낸시 레이건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의 아내 라이사와 서신을 주고받았고, 팻 닉슨과 로절린 카터 같은 이전 영부인들 역시 세계 각지를 돌며 인도주의 활동과 중재 외교를 펼쳤다.
그러나 맥브라이드는 멜라니아 여사의 푸틴 서한은, 비록 전임자들만큼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멜라니아가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서는 기꺼이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소비에트 영향권 아래 있던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거죠. 모든 문제에 나설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관심 있고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안에는 나서려는 겁니다.”
앞으로 3년간 트럼프 행정부가 이어지는 동안, 맥브라이드는 멜라니아 여사가 영부인으로서 개입하게 될 사안의 기준이 매우 선별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자기 방식대로 할 겁니다. 멜라니아는 양보다 질을 중시해요. 과거의 영부인들이 해온 틀에 얽매이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