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산 교훈’ 해군 고속정 50년…간첩 사냥꾼에서 첨단 전투함으로[김관용의 軍界一學]

‘피로 산 교훈’ 해군 고속정 50년…간첩 사냥꾼에서 첨단 전투함으로[김관용의 軍界一學]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적과 가장 가까운 바다, 총성이 오가는 전선의 맨 앞에서 바다를 지켜온 전력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고속함(정)입니다. 1970년대 초 두 척의 소형 함정에서 출발한 고속정은 오늘날 첨단 유도탄과 정밀타격 능력을 갖춘 현대식 전투함으로 발전했습니다. 지난 50여 년의 궤적은 단순한 무기체계의 변천사가 아닙니다. 한국 해군의 생존 전략, 국가 안보환경의 변화, 자주국방의 집념이 응축된 여정이었습니다.

◇‘학생호’의 출현, 자주국방의 씨앗

해군 함정의 역사는 해방 직후 미국 잉여 군함 인수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적 조치였습니다. 한국 해군이 스스로의 힘으로 배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1972년이었습니다. 학생과 교직자들이 모은 애국방위성금 3억8000만원으로 건조된 ‘학생호’ 두 척은 한국 해군 최초의 국산 고속정이었습니다.

학생호, 전장/전폭/톤수: 23.6m/5.4m/75톤(만재), 무장: 20㎜ 함포, 5인치 로켓 등 (출처=방위사업청)

동시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계하고 해군 공창(현 해군정비창)이 건조한 ‘키스트 보트’(KIST Boat)도 탄생했습니다. 군과 과학기술계가 함께 도전한 국산 고속정 실험은 단순히 전력 확보 차원을 넘어, 국가적 기술 독립의 상징으로 기록됐습니다. 이후 해군은 알루미늄 선체를 적용한 소형 고속정(FB: Fast Boat)도 건조해 연안 감시용으로 운용하며 국산 고속정 개발의 기반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1970년대 북한은 잠수정과 고속정을 앞세워 해상 침투를 노골화했습니다. 해군은 이에 대응해 ‘제비급 고속정’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학생호의 선체 형상을 일부 변경하고, 추진기관과 무장 능력을 개선한 것으로, 해군 고속정 명명 원칙에 따라 조류 이름인 ‘제비’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25척이 건조된 이 전력은 1978년 제주 북방 해역 간첩선 격침, 1980년 10월 간첩선 추가 격침 등 실제 전과를 올렸습니다. 제비급은 단순한 실험작을 넘어 해군의 첫 본격 전력화 사례였습니다. 1990년대 초 퇴역한 이 고속정들은 연안 경계와 대간첩 작전에서 해군의 기동성을 보장했습니다. 당시 해군 장병들에게 고속정은 곧 ‘숨 쉴 틈 없는 전장’이었고, 그 경험은 오늘날 고속정 발전의 실전 교본이 됐습니다.

제비급 고속정(PK), 전장/전폭/톤수: 23.6m/5.4m/76톤(만재), 무장: 20㎜·40㎜ 함포/5인치 로켓/12.7㎜ 중기관총 등 (출처=방위사업청)

◇피와 땀으로 검증된 전투함 ‘참수리’

이후 우리 해군은 제한적인 기능의 고속정 건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고속정 플랫폼과 기술을 도입해 국내에서 현대식 고속정을 조립·생산하는 ‘기술협력생산’ 체제를 구축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최초의 현대식 유도탄 고속정인 PGM(Patrol Ship Guided Missile Medium)은 외국의 선진 기술을 국내 조선소와 공유하고 민·군 협력의 방위산업 기반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대한민국 해군 함정의 국산화를 향한 핵심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북한의 해상 도발이 거세지자 해군은 독자적 기술로 150톤급 참수리급(PKM)을 개발했습니다. 이후 ‘율곡사업’을 통해 1993년까지 총 13차에 걸쳐 약 100여척의 PKM이 건조됐습니다. PKM은 40㎜ 및 20㎜ 함포를 탑재하고 전방 해역에서는 최일선 경계 작전을, 후방 해역에서는 대간첩 작전을 주도하는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습니다.

참수리급 고속정(PKM), 전장/전폭/톤수: 37m/6.6m/160톤(만재), 무장: 20㎜·40㎜ 함포 등 (출처=방위사업청)

실제로 참수리급은 제1·2연평해전(1999·2002년)과 대청해전(2009년)에 참전해 적 함정을 격퇴했습니다. 크지 않은 선체에 단출한 무장이었지만, 장병들의 용기와 결합되며 ‘피와 땀으로 검증된 전력’이 됐습니다. 해군이 “피로 산 교훈을 함정 진화에 녹인다”는 말을 반복해 온 것도 참수리급의 경험 때문입니다.

특히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젊은 장병이 전사해, 해군은 참수리급의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그 교훈이 반영된 결과물이 윤영하급 유도탄고속함(PKG)입니다. 함정의 두뇌에 해당하는 전투체계부터 레이더, 유도탄에 이르기까지 탑재장비 전 분야에서 도전적인 국산화 연구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됐습니다.

윤영하급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은 상징성입니다. 전우의 희생을 기려 명명된 이 함정은 ‘희생 위의 전력’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습니다. 또 기술적 전환점이 된 함정입니다. 국산 전투체계와 레이더, 복합재 선체가 적용되며 한국이 ‘선진 해군 기술’을 확보했음을 입증했습니다.

윤영하급 유도탄고속함(PKG), 전장/전폭/톤수: 63m/9m/570톤(만재), 무장: 76㎜·40㎜ 함포/함대함유도탄 등 (출처=방위사업청)

◇고속정의 진화, 방위산업 성장의 축소판

2010년대 들어 해군은 참수리급의 뒤를 잇는 차세대 고속정 PKMR을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수리 고속정이라는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지만, 성능과 기술 수준이 완전히 다른 차세대 첨단 고속정입니다. 230톤급 소형 체급인데도 76㎜ 함포와 130㎜ 유도로켓, 원격사격통제체계까지 갖췄습니다. ‘작지만 강하다’는 개념이 구현된 것입니다. PKMR 사업은 2단계로 나눠 진행되고 있는데, 배치(Batch)-Ⅰ 사업을 통해 2017년부터 해군에 실전 배치돼 운용 중입니다.

현재는 배치-II 사업이 진행 중으로 올해 5월 첫 함정이 진수됐습니다. PKMR은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전력화될 예정입니다. 북한과 맞닿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최전선에서 PKMR은 새로운 참수리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신형 참수리급 고속정(PKMR), 전장/전폭/톤수: 44m/7m/250톤(만재), 무장: 76㎜ 함포/130㎜ 유도로켓/12.7㎜ 원격사격통제체계 등 (출처=방위사업청)

고속함(정)의 발전사는 단순한 해군 함정사의 일부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방위산업 성장사와 궤를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초창기에는 해군 주도로 시작됐던 고속정 건조가 1990년대 율곡사업을 통해 체계화됐습니다. 2006년 방위사업청 개청 이후에는 전문화된 국방 획득체계 아래에서 기획-개발-전력화에 이르는 절차를 통해 지속적으로 진화했습니다. 이같은 과정은 한국이 단순한 무기 수입국에서 첨단 무기 수출국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겹칩니다. 고속정은 방위산업의 ‘바로미터’이자 국방 획득 체계의 진화 과정 자체라고 평가할 만합니다.

고속함(정)의 50년은 분명한 성취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훈도 남겼습니다. 북한의 해상 도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값비싼 희생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제2연평해전 이후 윤영하급이 나왔듯, 전력 강화는 사건 뒤에 뒤따랐습니다. ‘피로 산 교훈’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미래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고속함(정)은 정밀타격 능력과 생존성을 갖춘 첨단 전력으로 도약했지만, 기술적 성취만으로 안보는 담보되지 않습니다. 실전 경험과 희생 위에 축적된 교훈을 조직적으로 체계화해야만 고속함(정)의 다음 50년이 더 강하고 더 현명해질 수 있습니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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