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지영의 기자] 국내 벤처캐피탈(VC) 시장이 기관투자가(LP)들의 잇따른 출자 확대에 모처럼 활기를 되찾고 있다. 정부의 벤처투자 확대 기조에 발맞춰 모험자본에 자금을 푸는 LP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인공제회는 다음주 중 사모펀드(PE)·VC 출자 공고를 낼 예정이다. 올해 출자 예상 규모는 약 31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사모펀드(PE) 1600억원, VC 1050억원 대비 배정액이 크게 늘었다. 특히 이번 정기 출자 사업에서는 VC 투자액을 대폭 늘릴 것으로 파악됐다.
중소기업중앙회 노란우산공제도 올해 VC 부문에 1800억원의 출자금을 배정했다. 지난해(1100억원)보다 700억원 늘어난 규모다. 특히 이번 출자는 일반 부문 1200억원(5개사 내외)과 소형 부문 600억원(6개사 내외)으로 나눠 진행된다. 소형 부문은 한국벤처투자의 ‘2025년 스타트업코리아펀드’ 최종 선정 운용사를 대상으로 한정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소형 운용사들의 펀드 결성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정책 지원 펀드와 적극 연계하는 장치를 둔 셈이다.
군인공제회도 지난달 초 VC 출자액을 전년보다 200억원 증액한 1400억원으로 확대한 바 있다. 이번 정기 출자에서는 총 10개사를 선정해 자금을 집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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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들이 줄줄이 VC 출자금을 늘리는 배경에는 정부의 강한 벤처투자 육성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창업·벤처 4대 강국 도약’을 국정 목표로 내세우며 모태펀드 예산을 대폭 늘렸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오는 2026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모태펀드 출자 규모는 올해 9896억원의 두 배 이상인 1조9997억원으로 결정됐다. 지난 2009년 모태펀드 설립 이후 최대 규모다.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연간 40조원 규모의 벤처투자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목표치를 맞추려면 현재 12조원대인 연간 투자액을 5년간 매년 27% 가량 늘려야 하는데, 이는 2000년대 초 벤처 붐 시기와 맞먹는 고성장률이다.
벤처펀드 조성 자금난을 완화하는 데 이번 LP들의 증액 출자가 활력을 더할 분위기다. 국내 VC 업계는 최근 2~3년간 자금 경색으로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글로벌 금리 급등과 경기 둔화 여파로 특히 VC에 대한 기관 출자가 위축되면서 벤처펀드 결성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실정이었다. 여기에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이 겹치면서 신규 투자는 줄고,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에 대한 후속 투자가 경색된 분위기였다.
VC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주요 LP들이 동시에 돈 풀기에 나서면서 벤처펀드 결성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며 “그간 기관 자금 유입이 더뎌 조합 결성이 지연됐던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VC 투자 선순환 분위기를 이어가려면 VC가 투자한 기업을 원활히 회수할 수 있어야 하는데, IPO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아 정부에서 적극 분위기를 끌어주고 지원해줘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