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가 ‘독립운동 영웅’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계획을 3년 만에 철회한 데 대해 광주 고려인마을과 광복회가 웃음을 되찾았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육군사관학교는 최근 앞선 2023년 연말까지 교내 충무관 입구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이전한다고 발표한 계획을 철회키로 했다.
앞선 정부에서 육사가 이전을 공식 추진하자, 지역 시민사회는 ‘독립운동 역사 지우기’이라며 흉상 철거 계획 백지화 촉구 기자회견 등을 열며 거세게 반발했다.
3년여 간 이어져 온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은 지난달 22일 육사 관계자들이 광복회에 사과 방문하며 일단락됐다.
때 아닌 논란에 독립운동 선열로 홍범도 장군을 우러러보던 고려인들의 상실감과 분개는 더욱 컸다. 특히 고려인 7000여 명이 모여 사는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잡자”는 목소리가 더욱 높았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에 항거한 한국 독립운동가로, 소련 극동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쫓겨갔다. 이 시기에 고려인 동포 17만여 명도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홍범도 장군은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들과 함께하며 말년을 보냈고 이곳 고려인 이민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그의 독립운동 정신과 삶은 고려인 사회에 깊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고국의 품에 안긴 뒤 광주에 터를 잡은 고려인 후손들은 2022년 광복 77주년·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1주년을 맞아 광주 광산구 다모아어린이 공원에 홍범도 장군 흉상을 세우기도 했다.
더욱이 ‘좌익 홍범도 지우기’로도 풀이됐던 흉상 논란은 고려인들에게는 당면한 생애 터전에 대한 위협이기도 했다.
냉전 당시 소련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고초를 겪은 고려인이지만, 단순한 출생 국적을 문제 삼아 ‘색깔론’ ‘이념 갈라치기’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불안에 떨어야 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우리는 홍범도 장군을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홍범도 흉상 논란이 있으면서 우리의 미래도 함께 사라질 것 같았다. 비자 문제 등 거주 환경이 악화될까 항상 불안에 떨며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육사 관계자가 철거 계획을 철회하고 사죄했다는 소식은 마을에 큰 안도감을 안겼다. 철회 이후 고려인 동포들의 체류 자격 완화 조치가 추진돼 고려인들은 다행이라 여기며 반기고 있다. 더 큰 희망을 품으며 삶이 바뀌는 기분이다”고 이야기했다.
광복회 광주지부도 무장 독립투쟁을 이끈 홍범도 장군에 대한 왜곡 또는 편향된 역사관을 바로잡은 데 안도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독립유공자 처우 개선과 유적지 발굴 사업 등이 줄줄이 예산 문제로 제동이 걸렸다. 당시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내세우며 과거사 문제에 대한 거론 자체를 피했다.
나아가 편향적인 역사관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인물이 독립기념관장에 중용되면서 큰 반발이 일었다. 급기야 지난해 79주년 광복절 경축식은 정부와 광복회 주관으로 나눠져 ‘반쪽짜리’ 행사로 치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독립운동가 보훈 정책이 점차 제자리를 되찾으면서 그 후손들이 모인 광복회도 자긍심을 다시 찾았다.
황삼용 광복회 광주지부 사무국장은 16일 “홍범도 장군에 대한 역사 왜곡이 바로잡혀 다행이다. 정부가 이 나라 독립을 위해 희생한 유공자를 제대로 대우하고 있다고 느낀다. 흉상 철거 철회 이후 광복회 회원들도 광복절 등 국가 기념 행사에 더욱 적극 참여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