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땀구생활②] 미소 뒤 숨은 고통… 두 다리로 지키는 하늘의 안전선

[여성땀구생활②] 미소 뒤 숨은 고통… 두 다리로 지키는 하늘의 안전선

여성 노동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허리를 숙여 청소하고 퉁퉁 부은 다리를 몰래 주무르며 목소리로 감정을 조절해 현장을 지탱하는 여성 노동자들. 그러나 이들의 몸은 그만큼 상하고 여전히 소외돼 있다.

여성 노동은 단지 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반복적이고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몸에 맞지 않는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하고 감정노동과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쉬운 일’로 치부되는 왜곡된 인식이 여전히 잔존한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여성땀구생활] 기획을 통해 ‘일하는 몸’을 거울 삼아 여성 노동의 특수성과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내고자 한다. 밝은 미소 속에 감춰진 거칠고 버거운 노동의 시간을 따라가며 여성들의 하루하루가 어떻게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지를 기록하려 한다.

20년 차 승무원 노안이(가명·44)씨의 모습. ⓒ투데이신문

본 기사는 항공 승무원의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취재원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설레는 여행길의 시작, 하늘 위를 나는 비행기는 최첨단 시설과 세심한 서비스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철저한 안전 대비가 자리하고 있다. 비행기가 이륙해 고도를 높이는 순간 승객들은 나, 노안이(가명·44)를 비롯한 객실승무원들에게 기대게 된다. 나는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를 넘어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책임자다.

땀의 기록 1. 하늘의 꽃은 시들고 있다 

누군가의 안전을 책임지고 품격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이지만 정작 나의 하루는 고통과 인내로 가득하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따뜻한 미소를 머금지만 그 이면에는 고강도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노동자’로서의 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주로 국제선 장거리 노선에 탑승한다. 비행 당일에는 비행 2시간 전 공항에 도착해 동료들과 브리핑을 진행한다. 기내 안전 사항과 특이사항을 공유하고 각자의 역할을 확인한다. 이후 기내에 먼저 탑승해 내부 시설, 비상장비 등을 점검하고 기내식, 객실 청소 등 서비스 준비도 마친다.

승객 탑승이 시작되면 손님을 맞이하고 좌석 안내, 짐 수납, 기내방송 등을 수행한다. 이륙 후에는 곧바로 기내식 준비와 제공, 승객 요청 응대, 판매 업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진행한다. 특히 야간 비행의 경우 승객이 자는 동안에도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보안 점검을 수행해야 한다.

빽빽한 업무 일정으로 인해 휴식 시간은 너무나도 짧다. 그마저도 용모를 정돈하고 다음 업무를 준비하다 보면 편한 자세로 충분히 쉬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승무원의 근무는 단순한 고객 응대를 넘어 기내 보안, 응급 상황 대응, 팀 내 협업까지 포함하는 고강도 다중 업무이다. 착륙 후에는 손님의 하차를 돕고 기내 정리와 비행 보고서를 작성한 뒤에야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다.

하루 종일 흔들리는 기내 속에서 구두를 신은 두 다리로 버티고 불편한 유니폼을 입은 채 객실을 종횡무진 움직인다. 시차와 불규칙한 수면으로 인해 생체리듬도 크게 흔들린다. 비행이 끝난 뒤에도 온전한 휴식은 어렵다. 퇴근을 하더라도 체력 회복과 이동으로 모든 시간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김포국제공항 전경. ⓒ투데이신문

땀의 기록 2. 미소 속 감춰진 신체 부담 

나는 단순히 기내에서 음료를 건네고 미소만 짓는 서비스 제공자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진다.

하늘 위 좁고 흔들리는 공간 안에서 우리는 비행 내내 서서 일한다. 예를 들어 비행 시간이 5시간이면 그 5시간 내내 제대로 앉지도 못한 채 승객을 응대하는 데 이어 기내식을 나르고 상품을 판매한다. 마음 편히 앉아 숨 고를 틈조차 없다.

장거리 국제선에선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한국에서 미국 뉴욕까지 약 14시간이 걸리는 비행의 경우, 내가 온전히 앉아서 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시간 남짓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인수인계, 용모 단정, 정리 업무 등을 하다 보면 실질적인 휴식 시간은 훨씬 더 줄어든다.

이처럼 반복되는 과로 속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다리다. 발가락 끝부터 허벅지까지 다리 전체가 쿡쿡 쑤시며 나중에는 걷는 것마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아파온다. 이런 탓인지 하지정맥류, 족저근막염, 무지외반증, 관절염은 이제 예외적인 질환이 아니다. 입사 초기엔 멀쩡했던 다리가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급격히 망가지는 일이 허다하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기내 환경은 일반적인 작업 공간과는 전혀 다르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기내에서 서서 버티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다리 근육이 비틀어지고 대부분의 동료들이 ‘8자 다리’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건강 문제에 대해 항공사나 정부 차원의 제도적 대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스스로 압박스타킹을 착용하거나 개인 비용으로 마사지 기계나 파스에 의존해가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나도 한 번은 기내식 서비스를 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기체 흔들림에 휘청였는데, 버티려고 애쓰다가 결국 인대가 파열된 적이 있다. 그 순간은 짧았지만 이후의 시간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결국 3개월 가까이 휴직해야 했고 그중 2주는 깁스를 한 채로 일상조차 제대로 꾸려가기 어려웠다. 아직도 그때의 통증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회복 후에도 발목은 완전히 낫지 않아 고질병처럼 통증이 남았고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다. 

게다가 우리는 승객의 기내 수하물을 정리해주고 수십 개의 식음료 카트를 밀며 좁은 통로를 오간다. 그 과정에서 손목과 팔에는 지속적인 무리가 가고 반복적으로 카트를 밀고 당기다 보면 어깨 관절이 뻐근하게 굳어버린다. 이후 무거운 식사를 건네는 반복된 동작 속에서 손목과 팔, 어깨에 무리가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뼈 마디가 저릿한 통증, 몸 안 속 작은 실이 툭 끊어지는 감각이 이어진다. 

가벼운 통증은 일상이 되고 그것을 참고 견디는 것 또한 업무의 일부가 된다. 무리한 근육 사용 끝에 손목에 염증이 생긴 동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아픈 줄도 모른 채 혹은 아픔을 감춘 채 미소를 지으며 일을 이어간다.

실제 기내에서 승무원들이 착용하는 신발. [사진제공=본인]

땀의 기록 3. 불편한 유니폼과 구두 

장시간 서서 근무하는 것도 힘들지만 구두 착용 역시 나와 동료들의 다리에 큰 부담을 준다.

우리는 기내와 공항 이동 시 각각 다른 구두를 착용한다. 기내용 구두는 겉보기에 단정하지만 실제로는 딱딱하고 불편하다. 굽은 3cm로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좁은 통로에서 장시간 서서 일하는 나에게는 그마저도 큰 무리가 된다. 통증은 발바닥에서 시작해 종아리, 허벅지로 번지고 이내 저림과 함께 다리 전반에 근육통이 퍼진다.

사람마다 발 모양이 다른데도 회사에서 제공하는 구두는 일률적인 디자인에 제한된 사이즈뿐이다. 그래서 많은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자비를 들여 수제화를 맞추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가죽 색상이 특이해 시중에서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수제화 특성상 가격도 상당히 비싸다.

유니폼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특히 여성 승무원인 나는 활동성이 떨어지는 타이트한 옷을 입고 일해야 한다. 치마를 입고 좁은 공간에서 기내식이나 물품을 정리하려면 무릎을 꿇거나 쪼그려 앉아야 하는데, 이조차 쉽지 않다. 움직일 때마다 무릎이 바닥에 닿아 실밥이 터지고 고된 서비스를 이어가는 내 몸이 유니폼 안에 점점 조여 오는 것 같다. 밧줄로 꽁꽁 묶인 느낌이 이런걸까.

최근 항공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우리에게는 더 높은 전문성과 빠른 대응력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유니폼과 구두는 오히려 나의 기동성을 방해하고 있다. 나는 “우리 승무원은 안전 업무가 최우선이 그다음이 서비스”라며 “그 안전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엔 현재 유니폼과 구두는 적합하지 않다”고 외치고 싶다.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본질적인 안전을 위한 절박한 외침이다.

땀의 기록 4. 우리에게 휴식은 사치다  

밝은 미소 뒤에는 극심한 피로가 가려져 있다. 나에게 ‘휴식’은 말 그대로 사치에 가깝다. 비행 중에도 틈틈이 짧게 숨을 돌릴 수 있을 뿐이다.

장거리 노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피로는 풀릴 새가 없다. 뉴욕처럼 14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친 후에는 적어도 이틀 이상은 쉬어야 몸이 회복되는데, 현실은 하루조차 쉬지 못하고 다시 스케줄이 잡히기 일쑤다.

이 때문에 면역력은 떨어지고 잔병치레는 잦아진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불면과 소화불량도 이제는 익숙해진 증상이다. 특히 야간 비행이 이어지면 생체리듬은 완전히 무너진다. 생리불순, 만성피로, 위장 장애, 집중력 저하까지 겹쳐 삶이 온통 피로로 채워진다. 마치 온몸의 어둠이 계속 머무는 느낌이다.

승무원은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항공안전법 적용을 받고 있는데, 이 법은 비행 시간, 횟수, 시차, 야간 여부에 따라 근무 기준이 달라진다. 그래서 터키 이스탄불처럼 먼 거리도 2박 3일 일정으로 비행을 다녀오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얼마 전 2박 3일 일정으로 세부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귀국한 날 오전 7시 40분쯤 도착했는데, 하루 종일 잠만 자다가 다음 날까지도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거의 ‘죽어 있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도 귀국한 지 이틀도 안 된 새벽 4시 30분에 다시 출근해야 했다. 이렇게 숨 돌릴 틈 없는 일정이 반복된다.

육아와의 병행은 또 다른 고통이다. 비행 스케줄은 예측이 어렵고 하늘 위에 있는 동안에는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복직 후에는 자녀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현실적인 부담이 함께 찾아온다. 이 때문에 많은 여성 승무원들이 결국 육아를 위해 퇴사를 고민한다.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나는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건데, 오히려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죄책감이 든다. 가끔 오전 출근 시간이 아이 등원 시간과 겹치면 내가 데려다주게 되는데, 아이가 “엄마랑 같이 있어서 너무 좋아”라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미안함이 온 몸을 짓누르는 기분이다.

노씨가 받은 산재가 관련 홈페이지에 기록된 모습. [사진제공=본인]

땀의 기록 5. 고객 응대 근로자의 아픔 

고객 응대 근로자에 대한 보호 체계가 과거보다 강화된 건 사실이다. 사회적 인식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승무원을 향한 부적절한 언행이나 행동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승객들은 우리에게 폭언을 하거나 무례하게 구는 경우가 있다.

물론 과거보다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진 승객들이 많아진 건 맞다. 그럼에도 장거리 비행 중 술을 마신 뒤에 무례하게 구는 등 우리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이들은 여전히 잔존한다. 실제로 그런 일로 인해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인 동료도 있다.

나도 예전에 단지 인사를 했을 뿐인데, 어떤 여성 승객이 ‘남편에게 웃으며 인사했다’며 컴플레인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당혹스럽고 억울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일’이었고 그 역시 내가 지켜야할 ‘승객’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항공 안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승객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안내를 해도 “왜 그러느냐”며 반발하는 승객들이 생기고 있다. 특히 올해 1월부터 항공보안법이 개정돼 승무원이 승객의 기내 수하물을 반드시 올려줄 의무가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불쾌감을 드러내거나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수록 회사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무리한 승객의 요구나 부당한 언행에 대해 단호히 제재하고 우리가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끝까지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안전과 서비스를 모두 지키는 역할을 흔들림 없이 수행할 수 있다.

땀의 기록 6. 더 이상 꽃이 아닌 노동자로 

흔히들 우리를 ‘하늘의 꽃’이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수식어에만 가려져야 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하늘 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승객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최전선의 안전요원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냉랭하다. 나는 20년 가까이 이 일을 해왔지만 입사 당시와 지금의 급여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근속연수는 쌓이고 업무는 점점 많아지는데, 급여는 사실상 10년 넘게 제자리다.

휴식조차 마음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연차를 신청해도 회사의 반려 한마디에 무산되는 일이 다반사다. 내가 원할 때 쉴 수 있는 날은 1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다. 가족들과의 약속도, 친구들과의 만남도 모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 매번 부딪힌다. 내가 나로서의 삶을 잃은 기분이다.

더 안타까운 건 여전히 많은 이들이 승무원을 단순한 서비스직으로 본다는 점이다. 안전 업무가 최우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서빙하는 사람’, 또는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 속에 갇혀 있다. 하지만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승객이 가장 먼저 의지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 승무원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고객 응대 근로자 보호 조치 강화, 항공 안전에 대한 국민 인식 제고, 그리고 기내 안전 업무의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그래야 우리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다.

건강 문제도 심각하다. 높은 강도의 노동, 반복적인 신체 사용은 근골격계 질환으로 이어진다. 몸이 아픈 건 이제 일상이 돼버렸다. 더욱이 우주방사선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긴 하지만 결과는 우리에게 공유되지 않고 있다. 

산업재해 처리는 더더욱 까다롭다. 다친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증명하고 호소해야 되는 과정은 노동자들에게 벅차다. 또 문제는 산재를 인정 받는 그 기간 동안 무급이라는 점이다.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게 아님에도 모든 책임은 우리 노동자들의 몫이 된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캐리어를 싸고 공항을 향한다. 그리고 비행기에 타 승객을 만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일이 좋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의 여행길에 함께하며 그들의 설렘 위에 좋은 기억을 더해주는 이 일이, 나에게는 자부심이었다. 그래서 견디고 또 견뎌왔다. 어느덧 20년… 나는 그렇게 하늘 위에서 안전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더 이상 화려한 칭송이 아니다. 제대로 쉴 수 있는 권리, 다치면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우리를 향한 존중이다.

‘하늘을 나는 직업’이라는 말 뒤에는 내 몸을 지탱해주는 두 다리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내 미소 뒤에 숨겨진 고통에 이제는 누군가가 응답해 주기를 바란다.

객실 승무원의 질환을 나타낸 표. [일러스트 제작=김민수]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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