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헌 회장의 비밀 행보
이즈음 정주영 명예회장과 몽헌 회장, 이익치 회장, 김재수 본부장, 김윤규 사장 등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 했다. 이들은 이해 못 할 해외출장이 잦았다.
몽헌 회장은 경영권 분쟁 직전(3월 5~17일) 총 13일 간 중국(베이징 • 상하이)과 일본(도쿄)을 비밀리에 왕복했다. 명예회장도 거동이 불편한 가운데 일본까지 함께 다녀왔다. 이 때도 몽헌회장이 동행했다. 그는 일본에 유난히 자주 나갔다.
기자는 아침 일찍 몽헌 회장의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를 만났다. 경비원들이 이를 막고 기자는 완강히 버텼다. 몽헌 회장은 “그냥 둬요. 내가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으면 되니까”라고 말했다.
경비원을 따돌리고 정몽헌 회장과 단둘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한마디도 않겠다던 그는 기자의 질문에 몇마디 이야기를 해줬다.
-어제도 해외출장을 잠깐 갔다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디를 다녀왔나.
“그룹 총수의 출장 행보가 드러나면 기업의 경영정보가 유출된다.”
-중국 등을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나는 현대전자의 대표이사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슨 얘기를 하면 반도체 등 현대그룹의 투자전략이 새나갈 수 있다. 어디를 갔다고만 해도 삼성전자 등 경쟁 기업들은 우리 회사의 전략을 알아 낼 수 있을 정도다.”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소문도 있던데.
“어느 기업이나 회장의 일정은 공개하지 않는다. 기업의 경영진이 누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한 경영정보다. 미안하다.”
당시 이익치 회장, 김재수 본부장, 김윤규 사장도 전과 달리 공식석상보다는 비밀리에 다니는 곳이 부쩍 많아졌다.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에 깊숙이 관여한 이익치 회장과 김윤규 사장은 명예회장과 몽헌 회장의 행보에 발맞춰 하루 혹은 이틀 짜리 번개출장도 자주 다녔다.
김재수 본부장도 중국 상하이에 하루짜리 출장을 갔다 오기도 했다. 그는 미국 곡물 메이저 카길사의 자회사인 ‘카길 파이낸 셜 서비스 아시아’ 로부터 1억 달러 외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하기 도 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당시 몽헌 회장과 핵심 경영진들은 이 때 남북정상회담 추진, 대북 비밀 송금,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비자금 제공 등을 하느라 동분서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현대 사태’ 의 근원이었다. 현대그룹은 이후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하나씩 진실이 모두 드러났다. 몽헌 회장의 투신자살은 바로 그 끝이었다.
[나는박수받을줄알았다107]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