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디어뉴스] 김상진 기자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눈물과 한, 그리고 희망을 실어 부르던 노래였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은 바로 이 민요처럼, 일제강점기 36년 동안의 민중의 고난과 저항을 장대한 서사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기록을 넘어, 억눌린 사람들의 숨결과 목소리를 문학적으로 복원한 ‘민족 서사시’에 가깝다.
민중의 삶과 저항을 꿰뚫는 서사
작품의 무대는 함경도, 평안도, 만주로 이어지는 북부 지역이다. 작가는 조선의 지식인이나 독립운동 지도자가 아닌, 땅을 빼앗기고 강제 징용과 군수 물자 수탈에 시달리는 농민과 노동자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역사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의 목소리가 작품 전반에 울려 퍼진다. ‘아리랑’이라는 민요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인물들의 삶과 죽음을 꿰뚫는 주제의식으로 기능한다. 민중의 울분과 슬픔,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가 이 노래를 통해 반복적으로 소환되며, 독자는 마치 그들과 함께 고개를 넘는 듯한 몰입을 경험한다.
복합적인 인물군상과 인간사의 깊이
『아리랑』 속 인물들은 선과 악으로 단순 구분되지 않는다. 변절자는 단순한 배신자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한 인간이며, 끝까지 신념을 지킨 인물은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는다. 조정래는 이들의 선택을 냉정하게 묘사하면서도, 그 속에 깃든 두려움과 용기, 사랑과 배신의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등장인물들은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지만, 그 서사가 모여 거대한 민족사의 파노라마를 완성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역사는 몇몇 영웅이 아니라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선택이 만들어낸다”는 진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역사와 문학의 경계에서
조정래는 방대한 자료 조사와 생존자 증언을 바탕으로 실제 사건과 허구를 치밀하게 결합했다. 강제 징용 현장, 만주 독립군 기지, 일제의 잔혹한 탄압 장면 등은 역사적 사실에 뿌리를 두되, 문학적 상상력으로 인물들의 내면과 일상을 복원해낸다. 독자는 그 시대의 공기와 냄새, 소리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현장감을 맛본다. 이처럼 『아리랑』은 역사서를 읽는 듯한 사실성과, 문학 작품만이 줄 수 있는 감정의 울림을 동시에 전달한다.
오늘 우리가 『아리랑』을 읽는 이유
광복 80주년을 앞둔 지금, 『아리랑』은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다. 작품 속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들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식민과 억압에 맞선 민중의 저항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직결된다. 민족의 한과 희망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새긴 이 대하소설은, 독자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아리랑’의 멜로디를 남긴다. 광복절에 이 책을 펼치는 것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기억하고 다짐하는 행위이며, 미래 세대에게 전해야 할 역사적 의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