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0%대 저성장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1·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35조원 가량의 재정을 추가 투입하며 내수 부양에 나섰지만 건설업 부진이 경기를 짓누르고 있다. 또 최근 한미 관세협상 타결됐지만 미국의 상호관세는 하반기 이후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일 발표한 ‘경제전망 수정’에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지난 5월 보고서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0.8%로 낮춘 뒤 같은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당초 올해 상반기까지 경기 부진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던건 내수 부진과 정치적 불확실성, 미국의 관세 관련 불확실성이었다.
이에 새 정부는 출범과 함께 2차 추경을 편성하며 22조6000억원 규모의 지출 확대에 나섰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1차 추경(12조2000억원)을 합하면 올해에만 35조원에 달하는 추가 재정 투입이다.
또 지난달 31일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미국의 통상 정책 관련 불확실성도 덜어냈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합의하고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인 15%의 상호관세율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KDI의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5월과 같은 수준에 그쳤다. 추경 효과로 소비 여건이 개선되면서 올해 성장률이 0.1%포인트(p) 가량 높아지지만 건설 경기는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5월 전망에 비해 민간소비(1.1→1.3%)와 상품수출(-0.4→1.2%), 설비투자(1.7→1.8%) 증가율은 상향조정됐다. 하지만 건설투자(-4.2→-8.1%)는 전망치가 오히려 크게 떨어졌다.
KDI는 “상반기 건설투자가 기존 전망을 하회한 가운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정상화 지연, 대출 규제 강화 및 건설 현장의 안전사고 여파 등으로 건설투자 회복이 지체될 수 있어 금년 건설투자 증가율을 3.9%p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또 상반기까지 호조를 보였던 수출은 하반기부터 상호관세의 영향을 받아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상품수출 증가율이 상반기 1.6%에서 하반기 0.9%로 떨어지고 내년에는 0.2%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0%대 경제성장률은 과거 기준으로 보면 ‘경기 침체’에 가깝다. 1960년 이후 우리나라의 연간 성장률이 1.0%에 미치지 못한 것은 ▲1998년 IMF 외환위기(-4.9%) ▲1980년 오일쇼크(-1.5%)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0.7%)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0.8%) 등 4차례 밖에 없었다.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는 기관들마다 다소 엇갈린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소비 회복세와 한미 관세합의 등의 영향을 반영해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소폭 상향조정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IB 8곳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평균치는 7월 0.9%에서 8월 1.0%로 올랐다. JP모건(0.6→0.7%)와 씨티(0.6→0.9%)가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경기의 추세적 움직임과 상관 없이 한국의 성장 잠재력 자체가 크게 떨어져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로 꼽힌다. 국제통화기금은 지난달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이는 세계 평균(3.0%)은 물론 선진국 평균(1.5%)에도 크게 못미치는 수치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올해 2%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KDI는 재정·통화 부양책 만으로는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0%가 조금 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시대도 올 거라고 생각한다”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정부는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일 ‘성장전략 태스크포스(TF)’ 를 가동하고 인공지능(AI) 전환, 규제 완화, 경제 형벌 합리화 등 성장 전략 발굴에 나섰다.
정부는 8월 중 발표하는 ‘새 정부의 경제성장전략’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하고 경제 성장 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 과제들을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