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변호사를 사칭한 폭파·테러 협박이 3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범인은 여전히 특정되지 않고 있다. 2023년 8월 이후 접수된 사건이 40건을 넘지만, 상당수가 해외에서 발신된 팩스 형태여서 추적에 한계가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인터폴에 세 차례 공조 수사를 요청하는 등 일본 측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팩스 추적에 어려움을 겪으며 추적이 지연되고 있다. 해외 발신은 해당국 통신사와의 공조가 필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발신 번호 외에는 남는 정보가 거의 없어 추적이 쉽지 않다.
◆디지털 흔적 안 남는 팩스…해외 발신 추적은 ‘국제공조’ 관건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일본발 변호사 사칭 협박’은 2023년 8월부터 현재까지 44건이 접수됐다. 44건 중 팩스가 26건, 이메일이 18건이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 가운데 상당수 팩스에는 발신인으로 ‘가라사와 다카히로’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일본의 실존 변호사로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팩스가 허위 협박 범죄 수단으로 활용되는 이유로 이메일이나 메신저와 달리 추적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을 꼽는다. 정태진 평택대 국가안보대학원 교수는 “아날로그 팩스는 통신 로그 외엔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다”며 “디지털팩스도 개인정보 보호와 타국 규정 때문에 접근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해외 발신 팩스의 경우 절차적 제약이 특히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이메일은 영장만으로 서버 기록을 확보할 수 있지만, 해외 팩스는 발신국 통신사의 로그 협조 없이는 추적이 불가능하다”며 “사법 공조 절차를 거쳐야 해 시일이 오래 걸리고, 발신 번호를 위장하면 공조 요청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빗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실장도 “상대국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한 데다 현지 경찰이 자국민 보호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어, 국제공조가 원활히 이뤄지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팩스 발신 번호는 스푸핑(번호 위장)이 가능해 일본 등 신뢰도가 높은 국가 번호를 임의로 표시해 발신지를 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통신사나 서비스 사업자가 발신번호 인증 기술을 도입하고 있으나 아날로그 시스템과 국제망에서는 적용이 제한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사회적 비용 초래한 중대 범죄…전문가 “국제공조·기술 인증 강화해야”
실존하는 일본 변호사 이름을 사칭하는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범죄 심리학 전문가들은 이를 ‘신뢰성 확보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실존 인물을 사칭하는 것은 받는 사람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은 “정치적 의도 없이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한 과시욕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허위 협박으로 사건마다 특공대가 출동하고 수천 명이 대피하는 등 사회적 비용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발신번호 인증 강제 적용, 서버 로그 의무 저장, 인공지능(AI) 기반 스푸핑 탐지 확대, 통신사업자 간 실시간 정보 공유, 국제공조 강화 등을 대응책으로 제시했다.
정태진 교수는 “기술적 인증 도입, 클라우드·디지털 로그 확보, 국제공조 강화 등이 시급하다”면서도 “완전한 차단·추적은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까우며, 제도와 기술 동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상균 교수는 “테러 관점에서 사이버수사대·국정원 등 전문 부서가 전담해야 한다”고 했고, 김대근 실장은 “해외 발신 협박도 국내 피해가 발생했다면 국내법 적용이 가능하다. 법 취지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