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누구나 예기치 못한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2023년 한 해에만 성폭력 4만 4238건, 아동학대 4만 8522건, 가정폭력 4만 4524건이 접수됐다. 이는 어디까지나 ‘신고된’ 수치일 뿐이다. 목소리를 내지 못한 피해자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더 크고 복잡하다.
책은 법정 안에서는 피해자를 위해 싸웠던 변호사의 기록이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에서 피해자의 변호를 맡았던 서혜진 변호사의 첫 책이다. 법의 언어로는 닿지 않았던 감정과 기록되지 않은 이름의 흔적을 따라가며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정의는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가해자 중심의 서사가 피해자 중심으로 많이 옮겨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는 울고 도망쳐야만 ‘진짜’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교제폭력,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직장 내 괴롭힘 등 법률이 관심을 두지 않는 폭력은 여전히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고 있다.
침묵을 깬 피해자들은 범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폭력을 마주하게 된다. 최말자 사건으로 불리는 ‘혀 절단 사건’을 비롯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겼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연극 연출가 이윤택에 대한 미투 등에서 피해자들은 증언을 하며 다시금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야 했다. 법과 제도가 피해자의 곁에 머물지 않을 때도 있다. 가해자 고발 후 도리어 고소당해 피해자가 피의자가 되는 경우, 피해자가 아닌 판사를 향한 형식적인 사과 등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사람이 바뀌면 법률도 바뀐다고 강조한다. 그 시작은 “피해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일”이라 “법만을 탓하기보다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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