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내가 독보적인 커리어를 가진 성공한 사람이었으면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가 더 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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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레전드’ 박지성의 아내로 잘 알려진 김민지 전 아나운서가 첫 에세이 ‘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냅니다’ 서문에 쓴 문장이다. 흔한 유명인의 에세이일 것이라는 예상을 빗겨나간 내용이 눈길을 끈다. 그는 “역설적이게도, 이 책이 나오게 된 이유는 내가 그런 별것 아닌 사람이어서다”라고 고백한다.
김 전 아나운서가 이런 문장을 쓴 이유가 궁금했다. 최근 서면 인터뷰로 만난 김 전 아나운서는 “인생에서 확신할만한 성공이나 뚜렷한 커리어가 있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쉽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며 “나 자신이 충분치 않더라도 그런대로 의미 있고 괜찮다는 걸 이번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나운서 활동·런던 생활 담백하게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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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아나운서는 2010년 SBS 아나운서로 입사하면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2013년 박지성 선수와 열애 중인 사실이 공개돼 화제가 됐고, 이듬해 결혼과 함께 퇴사했다. 남편과 함께 영국 런던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 전 아나운서는 2019년 유튜브 채널 ‘만두랑’을 개설해 대중과도 적극적으로 소통 중이다.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는 ‘유명인 아내’, ‘전 아나운서’ 등의 수식어에서 잠시 벗어나 엄마이자 아내이며 딸로서 평범하게 사는 한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학창 시절부터 아나운서가 된 뒤 퇴사하기까지의 에피소드와 고민들, 가족과의 관계에서 주고받은 진심 어린 사랑의 마음, 사회를 바라보는 가치관과 삶의 태도, 런던이라는 낯선 곳에서 생활하며 마주한 일상 등을 담백한 문장으로 담았다.
어린 시절 “민지는 아나운서가 되면 좋겠다”는 외할아버지의 말에 아나운서가 뭔지도 모르면서 ‘아나옹사’를 꿈꿨던 아이는 남들처럼 부단한 노력 속에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토록 바랐던 아나운서 활동은 결혼과 함께 4년 만에 끝이 난다. 안타까운 ‘경력단절’ 이야기일 수 있지만, 김 전 아나운서는 책에서 특유의 유머와 낙관주의적인 태도로 아나운서 시절을 회고한다.
그는 “‘워킹맘’으로 평생을 살아온 엄마를 보며 나 역시 평생직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택청약도 연금도 열심히 붓고 있었다”며 “일을 그만두는 것은 간단한 결정이 아니었지만,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일을 그만둔 뒤에도 큰 후회는 없었다”고 털어놨다. 자신과 비슷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에게는 “모두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위한 선택을 할 자유가 있다”면서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외부 조건이 아닌, 내면의 동기를 따라 선택한다면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명인의 아내’, ‘전 아나운서’ 등의 수식어에 대해서도 김 전 아나운서는 “나를 소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이지만 나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내게 주어진 다양한 역할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중요도나 우선순위는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며 “각자에게 주어진 여러 역할을 균형 있게 해내려는 매일의 노력이 그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남편 박지성 “내가 아는 민지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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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선수, 그리고 김 전 아나운서와 SBS 입사 동기인 최다은 PD가 추천사를 썼다. 특히 박지성 선수는 “가끔 누군가 민지를 전 아나운서라든지 두 아이의 엄마, 혹은 나의 아내라고만 생각하는 것을 보면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든다”며 “민지가 쓴 글은 내가 아는 민지의 본 모습에 가장 가깝다. 따듯하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아내를 향한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김 전 아나운서는 “남편이 나와 나의 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이를 정리된 글로 보니 무척 고마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는 제목처럼 유명인이든 아니든 모두가 각자 주어진 역할과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소중한 삶의 가치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 전 아나운서는 “지금처럼 아이들을 안전하고 무탈하게 키우며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 외에 특별한 목표는 없다”면서도 “작가로서 첫 책을 내는 예상치 못한 일도 맞이한 만큼 앞으로도 일상에서 느끼는 생각과 의미를 글로 정리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