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파악된 해외 묘소 215기 남아…안중근·최재형 등 유해 아직 못 찾아
파묘부터 유골 반·출입까지 지난한 법적·행정 절차 필요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광복 이듬해인 1946년부터 해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도 안장 위치가 확인된 독립유공자 유해 중 절반 이상이 아직 해외에 있다.
소재 확인부터 유해 봉환에 필요한 현지의 행정 및 법적 절차, 유족의 입장 등이 맞물리면서 200여위의 독립유공자들 유해가 아직도 고국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중국 뤼순(旅順) 감옥 일대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묘소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정부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숫자까지 더하면 국외에 안장된 독립 유공자 유해는 이보다 더 많은 상태다.
◇ 독립유공자 유해 155위 봉환…215위 아직 남아
국외 안장된 독립유공자의 유해 봉환 사업은 1946년 시작됐다. 당시 백범 김구 선생이 일제에 의해 암매장됐던 윤봉길·이봉창·백정기 등 삼의사(三義士)의 유해를 모셔 와 효창공원에 안장한 것을 시작으로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다가 1975년부터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이뤄지고 있다.
13일 보훈부에 따르면 1946년 이후 현재까지 국내에 봉환된 독립유공자 유해는 모두 155위다.
이는 이날 각각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과 국립대전현충원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이 열리는 문양목·임창모·김재은·김덕윤·김기주·한응규 지사 등 유해 6위를 포함한 숫자다.
올해 봉환 규모는 2009년(6위) 이래 가장 많은 것으로, 2020년 이후로는 연간 1~2위 수준이었다.
지난해에는 이의경 지사의 유해가 유일하게 봉환됐다. ‘이미륵’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이 지사는 전혜린이 번역해 국내에 소개된 책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2023년에는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유진 초이 역의 모델로 알려진 황기환 지사와 미국 하와이에서 독립운동한 정두옥 지사의 유해가 각각 국내로 옮겨졌다.
보훈부가 현재까지 파악한 해외 안장된 독립유공자 묘소는 17개국, 총 370기다. 이 중 155위가 봉환되면서 남은 묘소는 215기 수준이다.
◇ 소재 추가 파악에 전체 숫자 증가…실제 봉환까지 ‘산 넘어 산’
보훈부가 파악한 해외 안장된 독립유공자 묘소는 1년여 전인 지난해 3월에만 해도 346기(이 중 148위 봉환)였다.
그러나 사료 수집과 발굴 등을 거쳐 독립유공자가 늘어나면서 파악된 묘소 수 또한 증가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묘소 위치가 확인됐다고 해도 실제 봉환 과정은 순탄치 않다.
우선 국내 봉환에 대해 유족의 희망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유족의 승인이 순조롭게 이뤄져도 각국 상황에 따라 파묘와 화장, 유골 반·출입 등과 관련한 행정적 절차를 밟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봉환돼 이날 현충원에 안장된 문양목 지사의 경우 유해 봉환을 위해 보훈부가 미국 법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끝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미 캘리포니아 파크뷰 묘지에 안장됐던 문 지사는 형제와 자녀가 모두 작고하면서 현지법상 손자 세대의 신청만으로는 이장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보훈부는 교민 1천여명의 서명을 받고, 미 법원을 상대로 파묘 및 이장 청원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노력 끝에 1년여만에 이장 승인 결정을 받아냈다.
유족이 없는 경우 이 과정이 더욱 복잡해진다.
2023년 고국으로 유해가 돌아온 황기환 지사의 경우 후손 없이 서거해 유해 봉환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황 지사가 안장된 뉴욕 소재 공동묘지측은 유족이 없는 황 지사의 유해 파묘와 봉환은 법원의 결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국가보훈처는 미 법원에 두 차례에 걸쳐 유해 봉환 소송을 제기했지만, 족보나 유족을 확인할 수 있는 공적 자료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황 지사는 일제강점기 조선민사령(당시 조선인에 적용한 민사 법률) 제정 이전에 독립운동을 위해 해외로 이주하는 바람에 국내 공적 서류에 적(籍)이 없던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보훈부는 서대문형무소 옆에 있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79-24)을 등록 기준지로 삼아 황 지사의 가족관계 등록을 창설하기도 했다.
보훈부는 이런 과정을 거쳐 뉴욕 총영사관과 묘지 측을 상대로 유해 봉환 당위성 등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끝에 합의를 끌어냈다.
보훈부 관계자는 “유족이 없으면 결국 국가 대 국가의 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 안중근 의사 등은 묘소 위치 확인 안 돼…정부 통계에도 불포함
국외에 있는 묘소 위치조차 확인되지 않는 독립운동가도 적지 않다. 안중근 의사와 최재형 선생이 대표적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한 노력은 진행 중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안중근 의사의 경우 마지막으로 남은 매장 추정지가 있어 중국 정부에 지속해서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훈부가 올해 초 발표한 주요 정책 추진 계획에도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민관 실무협의체 운영 계획이 포함돼 있다.
막대한 재산을 들여 상해임시정부를 후원해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가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은 배우자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1952년 별세)와 함께 2023년 국내 안장됐다.
그러나 최 선생의 유해는 찾지 못해 순국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최 선생 기념관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으로 대신했다.
보훈부는 각종 자료조사와 현지 확인 등을 통해 미확인 독립유공자 묘소를 계속 찾는 한편 묘소 정보시스템 개발과 미확인 독립유공자 유족 DNA 채취 등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서남부지역 묘소 실태조사를 통해 그간 소재가 불분명했던 독립유공자 묘소 29기를 새롭게 확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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