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미국 소니픽처스 제작·넷플릭스 공개…OST는 한국계 미국인이 노래
국내 더블랙 작곡가 참여·한국어 가사 담아…”춤추며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 K팝 장르로 인식”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최주성 기자 =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리지널사운드트랙 ‘골든'(Golden)이 미국과 영국 팝 시장 양대 차트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골든’은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 이어 11일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를 기록했다.
두 차트 시각대로 ‘골든’을 K팝 범주에 둔다면, 한국 대중음악 사상 영·미 싱글 차트를 모두 석권한 최초의 기록이 된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 1위에 올랐지만, 빌보드 ‘핫 100’ 2위에 만족해야 했다. 반대로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멤버 정국·지민은 빌보드 ‘핫 100’ 1위에 각각 올랐지만,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 정상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다만, 이 곡을 K팝이라고 쉽게 단정하기에는 고민해 볼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등을 만든 미국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했고, 세계적인 미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또 작품 속 가상 걸그룹 헌트릭스의 곡인 ‘골든’은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 작곡가 이재, 가수 오드리 누나·레이 아미가 불렀는데, 이들은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다. ‘골든’이 담긴 OST 앨범은 유니버설뮤직 산하 미국 리퍼블릭 레코드에서 발매됐다.
흥미로운 점은 서구권 주류 음악 시장에서는 ‘골든’을 비롯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를 K팝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오피셜 차트 측은 지난 1일 ‘헌트릭스의 골든이 13년 만의 K팝 오피셜 차트 1위가 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헌트릭스의 ‘골든’이 13년 만의 K팝 1위가 되면서 하나의 ‘현상’이 된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이번 주 오피셜 차트를 장악했다”며 “K팝 아티스트가 오피셜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밟은 가장 최근 사례는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영국에서 K팝 최초 1위 역사를 기록한 20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했다.
빌보드도 K팝으로 ‘핫 100’ 1위를 한 방탄소년단과 멤버 지민을 언급하며 “‘골든’은 ‘핫 100’ 차트를 정복한 K팝과 관련된(associated with Korean pop) 여성 가수의 첫 번째 노래”라고 소개했다.
발매사인 미국 리퍼블릭 레코드 역시 공식 홈페이지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앨범을 K팝 장르로 분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수나 ‘투입 자본’의 국적을 따지기보다는 콘텐츠에 깃든 요소와 작곡가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골든’ 등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를 K팝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마치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의 자본과 플랫폼을 활용했지만, 황동혁 감독이 연출한 ‘K-드라마’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제작·유통 관점에서는 한국 콘텐츠라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내용이 되는 스토리·음악과 전체적인 스타일이 K팝에 의존하기 때문에 ‘K-콘텐츠’로 볼 수 있다는 양가적 성격이 있다”며 “현재 K팝 같은 콘텐츠의 제작·투자·유통이 글로벌하게 다국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서 ‘K-콘텐츠냐 아니냐’를 묻는 것은 구시대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K-콘텐츠’를 제작 측면에서 한국인 혹은 한국 자본이 들어갔느냐로 따져볼 수 있지만, 1980년대 배우의 출신을 넘어 ‘홍콩스러운 것’을 홍콩 영화라고 한 것처럼, ‘K’를 하나의 경향이나 스타일로도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화 속에도 서울N타워와 한양도성, 지하철역 등 익숙한 서울 풍경을 비롯해 전통 문양과 한의원, 김밥 등 한국적 요소가 다수 등장했다.
K팝 기획사 더블랙레이블의 유명 음악 프로듀서 테디·24가 이재와 함께 ‘골든’을 작곡했다는 점도 이러한 견해에 힘을 싣는다. 더블랙레이블의 24, 쿠시, 빈스 등은 또 다른 OST ‘소다 팝'(Soda Pop)과 ‘유어 아이돌'(Your Idol)도 작곡했다.
‘골든’의 노랫말에는 ‘어두워진 앞길 속에’, ‘영원히 깨질 수 없는’, ‘밝게 빛나는 우린’과 같은 한국어 구절이 일부 포함돼 있다.
한 유명 레이블 관계자는 “송라이터(작곡가)가 K팝 인력이고, 노래 스타일 자체가 K팝 카테고리에 있어서 K팝으로 보는 것 같다”며 “지금은 ‘아이돌 그룹이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노래하는 것’을 K팝 장르로 보는 시각이 주류 음악 시장에서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논의는 결국 한국 대중음악, 즉 K팝은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물음과 맞닿아 있다.
K팝이 세계 시장에서 사랑받으면서 전원 외국인으로 구성된 그룹을 선보이거나 100% 영어 가사로 이뤄진 노래를 발표하는 등 K팝을 단순히 한국의 대중음악과 동일선상에 놓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 출신으로 과거 보아의 미국 시장 진출에 참여한 한세민 타이탄 콘텐츠 의장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K팝은 한국의 크리에이터들이 체계적으로 구축한 총체적인 시스템의 산물”이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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