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트럼프 라운드’는 이제 시작일 뿐

[이코노워치] ‘트럼프 라운드’는 이제 시작일 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현재의 세계무역기구(WTO)는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고 166개 회원국의 무역정책을 규제하도록 만들어졌지만,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국은 이 시스템을 위해 제조업 일자리와 경제 안보를 희생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필요한 개혁을 이루지 못했고 최대 승자는 국영기업과 5개년 계획을 동원한 중국이었다. 이제 개혁이 가까이에 왔다. 미국은 관세와 해외시장개방·투자 계약을 동원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무역 질서의 기반을 마련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주 뉴욕타임스(NYT)에 실은 기고문은 마치 ‘트럼프 라운드(Trump Round)’의 출범을 알리는 선언문을 보는 듯했다. 미국에 적자만 안겨준 기존 세계무역 질서는 실패했으니 폐기해야 하고, 미국의 이익을 위한 새로운 무역 질서인 ‘트럼프 라운드’를 미국 주도로 만든다는 선언이다. 그는 지난 30년간 세계무역 질서를 주도해온 WTO 체제가 ‘미국만 희생했기 때문에’ 실패했으며, 트럼프 대통령 주도의 새로운 무역 질서가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무역협정을 타결한 스코틀랜드 리조트 이름을 따 ‘턴베리 체제’라고 불렀다. 기고문 제목은 ‘우리가 세계질서를 재편(Remade)한 이유’였다. 세계질서가 자신들의 필요와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표현이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면담

(서울=연합뉴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7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미국무역대표부 회의실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 대표와 한미 관세 협상 진전 방안 등에 대한 논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7.26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역사상 미국이 자신들에 불리한 국제질서의 판을 뒤집고 새 판을 짜는 것은 생소한 일이 아니었다. 미국은 ‘글로벌 패권국(Super Power)’이라는 위상과 각국 화폐의 교환기준이 되는 달러 가치에 기반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다. 2차대전 후 탄생한 브레턴우즈 체제로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고 1985년 플라자 합의도 미국의 무역·재정적자를 줄이려고 독일, 일본 등의 화폐와 달러의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한 것이었다. 근래 들어 미국이 중국 견제에 열을 올리는 것도 중국이 미국의 패권국 지위에 도전하는 것을 막는 데 목적이 있다.

지난달 말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의 농산물 개방 등 모호한 세부 사항뿐 아니라 주한미군의 역할변화와 방위비 분담금·국방비 인상 등 안보 문제가 앞으로 미국과 논의해야 할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국내 언론 간담회에서 주한미군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정부가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과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전했다. 오는 25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이 이런 것들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졌고 정상회담이 아니더라도 향후 미국 측 압력은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래픽] 주요국 대미국 무역 합의 비교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한국에 대해 발표한 15%의 상호관세는 이보다 앞서 무역 협상을 타결한 일본·유럽연합(EU)과 같은 수준이다.
미국은 일본의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기로 지난 22일 합의했고, EU와는 지난 27일 30%에서 15%로 상호관세를 인하하는 협상을 타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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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교역상대국과 상호관세 협상이 마무리된다고 냉혹한 약육강식의 논리로 무장한 트럼프 라운드가 끝날 리 없다. 불리하면 언제라도 판을 흔들거나 폐기한 뒤 유리한 새 판을 만들고 관세와 환율, 안보까지 동원해 동맹국에 대가를 치르라고 압박하는 트럼프 라운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오히려 트럼프 라운드는 관세 부과와 무역 질서 재편을 넘어 경제 안보, 환율, 첨단 기술 등의 다양한 분야로 진화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새 무역 질서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기업들처럼 트럼프 라운드에 적응하고 견뎌 나갈 중장기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어 USTR 대표는 NYT 기고의 마지막 부분에서 “트럼프 라운드 출범이 채 130일도 안 됐으므로 턴베리 체제는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며 그 구축작업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hoonkim@yna.co.kr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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