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은행 건너뛴 모바일뱅킹…케냐 ‘엠페사’의 힘

[우분투칼럼] 은행 건너뛴 모바일뱅킹…케냐 ‘엠페사’의 힘

김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김광수 소장

[김광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현지 조사는 아프리카학 연구에서 필수적이다. 문헌의 한계를 보완하고, 언어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구술 자료 확보를 통해 연구의 독창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서구 중심의 연구 방법론을 극복하고 한국의 아프리카 연구가 독자적인 기반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 현지 조사는 쉽지 않다. 사례비 지급조차도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예컨대 현지 보조원에게 사례비를 주려면 원칙적으로 은행 송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계좌가 없는 경우가 많아 현금 지급이 불가피하다. 답답함을 많이 느끼다가 동아프리카 케냐에서 모바일뱅킹의 힘을 실감한 적 있다.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와 케냐 나이로비 구간 항공권을 취소하면서 환불을 받기로 했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사이마라에서 사파리를 마친 뒤 운전기사가 주변 조그만 상점 여러 곳에 들렀다. 그는 상점에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고 서명한 뒤 환불금을 마련해줬다. 케냐항공이 환불금을 엠페사(M-Pesa)에 맡기고 운전기사는 엠페사의 의뢰로 필자에게 돈을 전달한 것이다. 정말 놀라운, 그리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케냐의 휴대전화 금융 서비스 엠페사(M-Pesa)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아프리카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은행 업무를 본다. 케냐에서 시작된 모바일 기반 금융 서비스인 엠페사는 은행 계좌 없이 휴대전화만 있으면 돈을 주고받거나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서비스는 2007년 케냐 통신사인 사파리콤(Safaricom)과 글로벌 통신사 보다폰(Vodafone)이 공동으로 개발했다. 엠페사는 은행 인프라가 부족한 농촌이나 저소득 지역에서 유용하게 사용한다. 사용자는 휴대전화 번호만으로 송금·현금 입출금·상점 결제·공공요금 납부까지 할 수 있다.

은행 계좌가 없어도 휴대전화를 이용해 저축, 송금, 결제, 대출 등을 할 수 있는 모바일 머니(Mobile Money)는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아프리카에서는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모바일 머니는 주요 통신사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보급률의 상승과 함께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케냐, 탄자니아, 모잠비크,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레소토, 가나, 이집트 등 7개국이 엠페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밖에 ▲ 엠티엠 모바일 머니(우간다, 가나, 카메룬 등 16개국) ▲ 오렌지 머니(보츠와나, 세네갈, 튀니지 등 18개국) ▲ 에어텔 머니(나이지리아, 가봉 등 14개국) ▲ 에코캐시(짐바브웨) ▲ 헬로캐시(에티오피아) 등이 있다.

그러나 국가 간 상호 운용성과 규제, 보완 장치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모바일 경제는 디지털 경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저축과 수입을 늘리는 데도 기여한다. 교육과 보건 분야 등 국가의 정책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고 엠지(MZ) 세대와 여성의 사회 참여 등을 유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치적 참여를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

모바일 머니 확산에는 휴대전화 보급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아프리카 대륙은 휴대전화 보급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2025년 기준 전체 대륙에서 약 8억5천500만개의 모바일 회선이 운영 중이다. 인구 상당수가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44%가 휴대전화 회선에 가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중 약 27%는 모바일 인터넷까지 이용하며, 인터넷 접근성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아프리카 시골 지역은 전기가 없다. 현지 조사를 떠나면 곧바로 실감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태양광을 이용해 송수신 탑을 가동하고 태양광 충전기로 휴대전화를 충전한다. 이렇게 해서 휴대전화를 통해 통신이 가능해진다. 아프리카의 휴대전화 보급은 금융 포용성, 고용 창출, 교육·보건 개선, 여성 권한 강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가 모든 계층에 고르게 미치려면 디지털 교육, 기기 보급, 보안 체계 강화가 병행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컴퓨터보다 휴대전화가 익숙하다. 모바일 데이터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터넷 이용자 수가 많은 일부 국가는 전자상거래와 MZ 세대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활발하다. 이들 국가는 아프리카의 주요 디지털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터넷 이용 현황을 보면 나이지리아 1억700만명, 이집트 9천630만명, 남아프리카공화국 5천80만명 순이다. 아프리카 전체 인터넷 이용자 5억5천만명 중 상당수가 상위 10개국에 집중돼 있다. 인터넷 사용자는 계속 증가해서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됐다. 현재 5억명이 넘는 아프리카인이 온라인에 접속하고 있고 그 수는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다.

아프리칸 엑스포넌트(THE AFRICAN EXPONENT)가 올해 2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자가 가장 많은 국가는 나이지리아, 이집트, 남아공, 알제리, 모로코, 민주콩고, 케냐, 가나, 탄자니아 순이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새로운 통계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인터넷 접속률은 2005년 이후 연평균 16.7% 증가했다. 세계 평균(8%)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아프리카 MZ세대의 디지털 열정이 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올해 5월 제14회 아프리카 인터넷 거버넌스 연례포럼(AfIGF)이 ‘아프리카의 디지털 미래의 강화’라는 주제로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열렸다. 탄자니아는 아프리카 AI 강대국을 목표로 AfIGF를 개최했다. 포럼 이후 이어진 다르에스살람 선언에서는 디지털 공공 인프라의 강화, 인공지능(AI) 도입, 국경 간 데이터 흐름 및 지역 디지털 정책 조율 등이 논의됐다. 아울러 청년, 여성, 시민 사회의 참여 확대 지원을 약속했다.

이어 9월에는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아프리카 인터넷 서밋(AIS)이 열릴 예정이다. ‘혁신적인 디지털 아프리카를 위한 회복력 있는 인터넷 생태계’를 주제로 한다. 이런 움직임은 아프리카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경제·사회 발전을 도모하고 국가 간 협력과 포용적 정책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특히 AI와 디지털 인프라 강화, 데이터 흐름의 자유화, 시민 참여 확대는 디지털 주권 확보와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집트 카이로 엑스포

[신화통신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아프리카의 모바일 산업은 전례 없는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 확대와 함께 모바일 금융, 디지털 교육,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 성장을 넘어 아프리카 대륙 전반의 경제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우리는 아프리카 모바일 산업의 급성장에 주목하고 선제적인 진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아프리카 시장의 문이 열리고 있는 ‘골든타임’이다. 적극적인 투자와 현지 진출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디지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디지털 인프라 투자, 혁신적인 기술 스타트업 육성, 디지털 기술 활용 기업의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광수 교수

현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남아프리카공화국 노스웨스트대 박사, 저서 ‘서아프리카 역사 이해’ 등 45권 집필, 한국연구재단·한국국제협력단(KOICA)·문체부·외교부 등 각종 기관의 강의·연구자로 활동.

afrikaans@hufs.ac.kr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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