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게임’: 팩맨은 게임과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았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게임’: 팩맨은 게임과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았나

Namco

올해로 마흔다섯 살이 된 노란색 먹보는 비디오 게임에 혁명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과학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다. 이 캐릭터와 그의 모험이 가진 중독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시대를 초월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컴퓨터 게임 ‘팩맨’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 게임 디자이너인 이와타니 토루가 1970년대 후반에 살라미 피자를 먹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즉, 이와타니가 피자에서 첫 조각을 잘라낸 후 남은 조각이 마치 자신을 보고 있는 원형 생명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 그는 2010년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피자에서 한 조각을 떼어낸 후 남은 모양을 보면 마치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하다”며 시중에 떠돌던 전설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아마 이와타니는 당시 피자 조각으로 기름진 접시를 내려다보다 뭔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캐릭터를 연상했을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팩맨은 올해로 아케이드 출시 45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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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맨은 플레이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칠흑 같은 미로를 돌아다니는 노란색 덩어리를 조종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이 덩어리가 최대한 많은 펠릿을 먹어치우게 해야 한다. 동시에 블링키(빨간색), 핑키(분홍색), 잉키(청록색), 클라이드(주황색) 등 유령들에게는 붙잡혀서는 안 된다.

이 게임의 퍼블리셔인 반다이 남코에서 캐릭터 라이선싱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쿠마가이 미치코는 BBC에 “팩맨 캐릭터는 게임의 핵심 목표인 ‘먹기’를 가장 단순한 디자인으로 표현해냈다”고 말했다. “맥도날드의 아치처럼 팩맨은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상징입니다. 누구나 한눈에 팩맨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팬층을 널리 확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팩맨은 폭넓은 팬층을 확보했다. 일본에서는 게걸스럽게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먹어치우는 ‘파쿠 파쿠 타베루’라는 의미의 ‘퍽맨’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 게임은 기네스북 기준으로 가장 성공한 동전 투입식 아케이드 게임이다. 아케이드 게임기와 가정용 콘솔로 여러 차례 재출시(닌텐도에서 엑스박스 360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출시)되며 약 14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팩맨 캐릭터는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팩맨은 최근 ‘주먹왕 랄프'(2012), ‘픽셀'(2015) 등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반다이 남코가 팩맨을 새롭게 재해석해 ‘쉐도우 라비린스’를 출시했다.

팩맨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

배스 스파 대학교 과학커뮤니케이션 학과의 피터 에첼스 교수는 BBC에 “팩맨은 주류 비디오 게임의 탄생을 이끈 주역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게임 플레이와 디자인에 우아함과 단순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많은 플레이어를 사로잡았다고 생각합니다.”

팩맨 게임은 놀랍도록 단순하지만 완전히 정복하기는 어려운 게임이다. 그러나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조심조심 펠릿을 먹어야 한다는 게임 캐릭터의 목표를 이해할 수 있다. 처음 이 게임 원작이 나왔을 때는, 사람들은 1980년대 많은 게임 플레이어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백 개의 복잡한 미로 패턴과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는 ‘팩맨 승리 가이드’를 종교 서적처럼 읽기도 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수천 번 개최되었던 팩맨 토너먼트 참가자들은 이런 식으로 대회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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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첼스 교수는 초기의 팩맨이 다른 경쟁 게임에 비해 덜 남성적이었는데, 이것이 이 게임이 크게 성공할 수 있게 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는 “팩맨 제작자인 이와타니 토루는 모든 사람, 특히 여성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팩맨과 1982년의 ‘미스 팩맨’ 같은 속편은 훨씬 더 다양한 집단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아스테로이즈’ 및 ‘스페이스 인베이더’ 등 당시의 남성 중심 슈팅 기반 게임들과 차별화되었습니다.”

이 게임의 제작자 이와타니는 2020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 게임이 일본 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저는 유령들을 단순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디자인했습니다. 단순함에서 일시적인 아름다움과 깊이를 발견하는 일본의 오랜 ‘와비사비'(불완전함과 세월의 흔적에 깃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미학)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전 세계가 이러한 일본의 미학을 점점 더 수용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팩맨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팩맨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게임 플레이어들의 사랑을 받은 것 외에도, ‘테트리스’처럼 과학계에서 인간이나 침팬지의 문제 해결 등을 연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2007년 캘리포니아 공대의 딘 몹스 연구팀은 팩맨 플레이어가 유령에게 잡힐 때마다 가벼운 전기 충격을 가했다. 셰필드 할람 대학에서 인터랙티브 테크놀로지를 가르치는 톰 가너 박사는 웃으며 “이 연구는 자기공명영상(MRI)을 사용하여 유령이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 뇌 활동이 달라지는지를 확인했는데, 실제로 그런 변화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도 팩맨이 사용되었다”고 말했다. “코넬 대학 한 연구팀은 원숭이의 눈 움직임에 나타나는 특정 패턴과 게임 중 원숭이가 내리는 결정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했으며,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은 팩맨을 사용해 마카크 원숭이가 인간 외 동물의 인지 능력을 넘어서는 것으로 여겨졌던 전략 기반의 계층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팩맨과 같은 비디오 게임은 과학 연구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팩맨은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수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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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너에 따르면, 팩맨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체화 이론’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비디오 게임에서 체화라는 개념은 게임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플레이어와 게임 캐릭터 사이의 연결감을 말한다”고 했다.

“팩맨은 플레이어를 게임 속 자동차 같은 무생물이 아닌 살아있는 캐릭터의 역할을 하게 한 최초의 비디오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팩맨 캐릭터는 블링키, 핑키, 잉키, 클라이드에 잡힐 때마다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게임 속 캐릭터와 플레이어가 특별한 유대감을 쌓게 해주었습니다.”

팩맨의 미래

출시 후 45년이 지난 지금, 반다이 남코는 신작 쉐도우 라비린스를 통해 젊은 세대 사이에서 팩맨의 인지도를 높이려 하고 있다. 새로 출시된 이 게임은 공상과학과 중세 시대를 결합한 거대한 미로를 배경으로 한다. 게임 속에서는 소드맨 8호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이 팩맨의 오리지널 디자인에 사이보그 느낌을 더한 퍽이라는 이름의 원형 캐릭터를 따라 모험을 펼친다. 게임 중 이 두 캐릭터는 트랜스포머 스타일의 로봇 전사 ‘가이아’로 잠시 변신할 수 있어, 게이머가 어려운 퍼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어린 시절 팩맨의 팬이었다는 ‘쉐도우 라비린스’의 프로듀서 아이자와 세이고는 신작이 팩맨의 특별한 매력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그는 “전 세계가 팩맨을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캐릭터에 진정한 개성을 부여한 최초의 게임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각각의 유령은 고유한 행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팩맨을 직접 쫓아다니는 끈질긴 빨간 고스트 블링키, 앞에서 매복하는 것을 선호하는 핑키가 대표적이죠. 이러한 특성은 단순히 아케이드에 노출된 설명서에서 글로 묘사된 것이 아니라 각 고스트의 고유한 인공지능과 이동 패턴을 통해 게임플레이에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게임에는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반전도 있다. 팩맨이 ‘파워 펠릿’을 먹으면, 기존의 사냥꾼은 사냥감이 된다. 즉 팩맨은 쫓아오던 유령들을 먹어치우고 보다 수월한 길을 열 수 있다. 다만 유령이 파란색으로 변한 짧은 시간 동안에만 유령을 쓰러뜨릴 수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이 제한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아이자와는 “고스트에게 쫓기다가 파워 펠릿을 획득하고 전세를 뒤집을 때가 가장 짜릿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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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자와에 따르면, 반다이 남코는 이미 쉐도우 라비린스의 속편을 고려 중이다. 하지만 반다이 남코의 사장 겸 CEO인 우다가와 나오에 따르면, 팩맨이 단순한 액션 기반 게임 플레이를 하는 말없는 비인간 캐릭터이기 때문에 세가의 ‘소닉’이나 닌텐도의 ‘마리오’처럼 개성이 강한 동종 게임보다 브랜드의 참신함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IP(지적 재산)로서의 팩맨은 소닉 같은 다른 비디오 게임 캐릭터에 비해 캐릭터와 스토리가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단순함 때문에 팩맨 게임을 해본 적이 없더라도 Z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팩맨이 널리 알려진 캐릭터가 된 것입니다.” 우다가와는 최근 크리스피 크림 도넛, 리틀 라이온 엔터테인먼트(맨체스터와 두바이 등 도시에서 팩맨 방 탈출 체험을 제공하는 체험형 기업) 등과의 브랜드 파트너십을 통해 팩맨 캐릭터가 앞으로 또 다른 45년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우다가와는 팩맨이 유명한 고슴도치(소닉)와 배관공(마리오)처럼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까지 출연하지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팩맨을 게임 외 다른 분야로 계속 진출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IP로서 팩맨이 게임을 넘어 문화 아이콘의 지위에 올랐다는 것을 계속 증명해 나갈 것입니다.”

게임 퍼블리셔가 팩맨의 인지도를 지속하고자 시도하는 다양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에첼스 교수는 팩맨의 오랜 인기 비결은 향수 자극이라고 말했다. 팩맨이 이제는 사라져가고 있는 게임의 풍경, 즉 아케이드 게임 문화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그는 “(팩맨은) 오락실의 시끌벅적함과 네온사인 속에서 친구, 라이벌과 함께 게임을 즐기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팩맨의 지속적인 매력의 이유가 무엇이든, 팩맨이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동시에 팩맨 캐릭터는 우리에게 두려운 대상(유령)에게서 그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용감하게 맞서야만 비로소 성공할 수 있음을 게임을 통해 분명하게 말해준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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