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는 죽여도 될까?

빨갱이는 죽여도 될까?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계엄을 막았다’보단 ‘계엄이 선포될 수 있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기사 이후 2편이다. 이번 편에서는 대한민국 극우 세력에 대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신진욱 교수는 극우 세력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극우 단체의 협박에 노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교수는 굴하지 않는다.

 

우리가 넘아야 될 산은 위로부터의 국가 폭력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극우’가 암약하고 있다.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 가족이나 지인일 수 있다.

 

극우 세력이라는 것이 저 멀리 뉴스에나 나오는 ‘전광훈’, 이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대한민국의 간첩이 20만 명이나 있다’는 루머를 믿는다. 그런 사람들은 계엄을 해서라도 간첩들을 다 잡아들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웃긴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간첩이 20만 명이나 되는데 그 중 단 1명이라도 봤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실체가 없다. 신 교수는 이러한 점이 제노사이드 역사의 공통된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은 구체적 인간에 대한 증오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다. 추상적이다. 예를 들어 안티 페미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현실에서 페미니스트를 본 적이 없다.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 또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폐미니즘의 폐혜를 접한 후 혐오 감정이 생겼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보고 이야기한 적은 없다. 이슬람 혐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신 교수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세력이 준동한 배경에 주목했다.

 

신진욱 교수의 모습. <사진=윤동욱 기자>

 

여론조사기관들은 연말연시에 2주를 쉰다. 그래서 12월 셋째 주까지 탄핵 찬반 여론을 봤더니 박근혜 시기와 비슷했다. 다음 1월 달 여론조사결과를 보니 찬반 여론이 좁혀져 있었다. 나중에는 거의 6:4 비율까지 갔었다. 여기서 극우 세력들이 힘을 받았다. 윤석열은 법원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된 시점부터 경호처 빼고는 제도적 권력을 남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극우 세력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한남동에 와서 우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 나를 지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 내가 탄핵이 되고 정권 교체가 되면 대한민국은 공산화가 된다‘ 이런 마음으로 극우를 불러들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몰려든 극우 세력은 윤석열 정권의 컨트롤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이 보수 정치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다.

 

이 사태로 ‘아스팔트 극우’의 힘이 커졌다.

 

전광훈 씨의 모습.<사진=YTN>

 

전광훈 같은 사람들이 탄핵 반대 극우 집회를 열면 국민의힘 최고위원들이 연단위에 올라가 충성 맹세를 했다. 보수 제도 정치의 주도권이 아스팔트 극우에게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맥락으로 일어난 일이 ‘서부지법 폭동’이다. 제도 정치 세력 내의 반민주적 정치 세력과 사회 내의 극우 세력들이 위로 아래로 만나면 그게 바로 파시즘이 된다.

 

일례로 탄핵 정국 당시 신 교수는 잘 아는 헌법학자, 정치학자들과 문자 메시지로 ‘탄핵이 기각되면 우리가 먼저 죽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또한 신 교수는 빅브라더에 관한 이야기도 하며 독재 출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나는 독재 연구를 30년 했다. 초고도화된 현대 사회와 독재는 모순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고도의 행정 체계와 기술을 발달은 더 철저하게 국민들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다.

 

그리고 신 교수는 “사회 안에 위로부터의 국가 폭력을 지지하는 세력이 아직도 10명 중 4명이나 된다”면서 우려를 표했다.

 

이게 5대 5까지 가면 게임이 끝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65대 35 정도로 겨우 막았다. 지금 우리가 본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가? “빨갱이는 죽여도 돼”이런 극단적인 문장이 이들의 대표적인 슬로건이다. 성호 스님이라고 불리는 가짜 스님이 이 말을 하고 다닌다. 여러 종교에서 극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슬로건이 등장한 것은 2016년이다. 박근혜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 때 떠오른 극우 상품이다. 지난 문재인 정권 동안에도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 극우 집회가 열렸었다. 나는 이 광경을 맨날 봤다. 극우 집회의 과격성, 극렬성은 이번에 더 심해진 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랬다.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문구가 쓰여진 방패를 들고 행진하는 성호 스님의 모습.<사진=JTBC>

 

신 교수는 한 때 신변의 위협도 느꼈다.

 

내가 그러한 정치 집회에 대해 ‘반민주적인 극우 집회다’라고 글을 쓰면 댓글이 한 천 개 달린다. 나는 딱 한번 댓글을 네이버에 부탁해서 막은 적이 있다. 왜냐하면 댓글에 대댓글까지 달면서 나를 잡으러 오는 그룹이 형성되어 버린다. 나의 연구실 정보까지 공유해서 잡으러 온다. 이명박 정권 당시 실제로 나를 잡으러 온 적이 있다.

 

듣기만 해도 살이 떨린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연구실 까지 찾아오는 게 말이 되나 싶다. 극우 연구도 정말 아무나 못 한다.

 

이후 신 교수는 극우 집회인 ‘세이브코리아’에 대해 언급하며 이들이 왜 광주에서 집회를 열려고 하는지 설파했다.

 

왜 집회를 굳이 광주에서 열려고 하겠는가? 모욕을 주기 위해서다. 자신들의 기세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5.18 민주광장에서 5.18은 북한군의 소행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기록을 만들기 위해서다. 당연히 강기정 광주 시장은 그것을 불허하겠지만 그들은 그것까지 예상하며 ‘민주화 운동했다는 사람이 정당한 집회를 못 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비난할 것이다.

 

그리고 신 교수는 그들이 말하는 ‘자유’ 개념에 대해 이야기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극우 집회 현장. <사진=MBC>

 

윤석열도 늘 자유를 이야기한다. 신남성연대도 자유를 이야기한다. 전광훈, 독일 극우 세력들 트럼프 대통령도 자유 이야기를 한다. 그 사람들이 왜 자유를 이야기 하겠는가? 이 현대 시대에 진보건 보수건 함께 공유해 왔던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를 깨고 싶은 것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모든 사람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이게 지금 우리의 법률과 모든 것에 전제가 되어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누군가의 자유는 침해되어도 좋다’. ‘민주주의가 때로는 잠시 정지되어도 좋다’. 이런 내용도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얻어내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주장에 대해 비판하면 억압한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이 나라를 점령해서 억압한다. 이슬람이 점령해서 억압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이 나라를 점령해서 억압한다’ 등 그런 망상은 나라마다 다양하지만 그런 자유의 이름으로 극우 폭력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신 교수는 “‘극우’라는 단어가 너무 남발된다”면서 단어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 번 정의했다.

 

제일 핵심은 뭐냐면, 현대의 정치적인 원리와 사회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만큼 극우인 것이다. 민주주의, 헌법, 법치, 다원주의 이러한 것들을 부정하거나 경우에 따라서 정지시킬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 그 다음에 경제 위기가 왔다. 전쟁의 위험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판단이 굉장히 자의적이다. 애초의 윤석열 계엄 논리가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의 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이게 발전하면 ‘우리나라에서 좌파적인 이념을 펼치는 사람들은 위험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가둬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나의 기본권은 중요하지만 저쪽 기본권은 침해되어도 된다는 논리다. 자기가 싫어하는 대상의 기본권, 안전, 생명이 침해되도 상관없다는 논리다. 어떤 행위의 과격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념이 어떤 것인가가 중요하다. 극좌와 구분되는 극우의 핵심은 반평등과 배타성이다. 노조, 진보, 페미니즘, 성소수자, 이주자, 장애인 등 이러한 집단들은 불평등이나 차별을 겪고 있다. 이것을 극복하고 노력하기 위해 관련 단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극우들은 거기에 대해 격한 증오를 표출한다. 또한 성소수자, 난민 같이 자신들 기준으로 표준적이지 않은 인간 집단들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그들이 폭력을 쓰느냐, 격한 언어를 쓰느냐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국의 극우 세력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한국은 극우적인 지배 체제였다. 일본 제국주의가 극우 그 자체 아닌가?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주의자들을 모두 공산주의로 몰아서 체포하거나 죽였다. 1920년대부터 반공, 반노조가 지배의 속성이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군부 독재에 이르기까지 국가 폭력 기구가 극우 질서를 유지해 주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국가는 더 이상 그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없었다. 민주화 초기에 이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자신들이 증오하는 대상들의 천지가 될 것 같았다. 다양성을 강조하고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드글드글한 세상이 오는 게 싫었다. 그래서 김대중, 노무현 시기에 극우 조직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그렇게까지 좌파 정권도 아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수준의 민주주의와 인권, 다양성도 그들에게는 수용이 되지 않았다. 이후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 극우 온라인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인터넷에서 댓글 부대도 생겼고 안티 페미니즘, 반공, 반좌파 등등의 담론이 오고 갔다. 박근혜 탄핵 이후에는 고령층에게까지 이러한 것들이 확산되어 카카오톡이나 SNS 등을 통해 가짜 뉴스와 정치 유튜브, 음모론이 확산되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시기에 극우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대규모의 극우 대중 집회에 어떤 사람들은 최소 한 번쯤 참여해 본 경험이 생기게 된다. 전광훈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이 한 두명이 아니게 된다. 이러한 바탕 위에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극우 단체들의 목록을 보여 주었는데 정말 많았다. 반공, 반북 단체, 퇴역 군인 장성 단체들, 개신교 교회 단체들, 뉴라이트와 그 후신들, 안티 페니미즘 단체, 반동성애 단체, 각종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등등 정말 많았다. 신 교수는 ‘이들은 각자 독립적으로 활동하지만 공통의 위기 국면에 이르면 하나로 뭉친다’고 설파했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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