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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곤지암’, ‘장화, 홍련’, ‘여고괴담’, ‘검은 사제들’….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공포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여름에 개봉했다는 점이다. 무서운 이야기로 더위를 식히려는 정서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풍속이었다. 오래전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도 여름이면 어김없이 납량특집을 방영했다. ‘납량’(納凉)은 시원함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더위를 식히는 피서 활동을 뜻했지만 여름 공포물과 결합하면서 여름철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공포는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감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이 스스로 공포를 찾는다. 왜 그럴까. 학자들은 공포를 느낄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사람에게 일시적인 쾌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실적 위험 없이 강한 쾌감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물은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해주는 일종의 자극적인 피서 수단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여름에 공포물을 즐기는 문화가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이러한 문화는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일본은 대표적인 공포영화 강국이지만 공포영화 대부분은 연초나 봄철에 개봉한다. 1998년 일본을 강타한 영화 ‘링’은 1월에 개봉했고 ‘주온’과 ‘착신아리’ 등도 대부분 연말 연초에 개봉했다. 서양도 상황은 비슷하다. ‘스크림’, ‘할로윈’, ‘사탄의 인형’ 등 대표적인 공포영화는 핼러윈 시즌인 10월과 11월에 집중됐다. 반면 한국은 여름방학과 휴가철이 극장가의 최대 성수기이고 여기에 ‘더위를 공포로 식힌다’는 문화적 정서가 결합하면서 여름 공포물이 흥행 전략으로 굳어졌다. 공포물이 특정 계절과 연결되는 배경에는 단순한 문화 차이뿐 아니라 각국의 영화 소비 패턴과 산업구조가 함께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 여름철 공포영화는 예전만큼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매년 여름마다 등장하던 납량특집도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가장 큰 변화 요인은 코로나19 팬데믹이다. 팬데믹은 극장 산업 전반을 위축시켰고 동시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의 급속한 확산은 콘텐츠 소비의 무게 중심을 가정으로 옮겨 놓았다. 실제로 2024년 기준 국내 연간 영화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절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공포물에도 영향을 미쳤다. 관람 공간이 극장에서 가정으로 옮겨가면서 더 이상 계절에 맞춘 극장 상영 전략이 통하지 않게 됐고 ‘여름=공포’라는 공식도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거기에다 예전보다 훨씬 더 극심해진 폭염도 한몫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더위를 무릅쓰고 극장을 찾기보다 집에서 배달 음식을 주문해 놓고 영화를 보는 쪽을 더 선호한다.
그런데 여름철 공포영화가 사라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스크린 속 이야기보다 더 오싹해 굳이 공포물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40도를 넘나드는 폭염, 수백년 만의 폭우, 일상을 뒤흔드는 산불과 태풍.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영화 속 재난 장면 같았던 것들이 이제는 뉴스 헤드라인으로 등장하고 일상 속의 당연한 풍경이 됐다. 우리는 이제 더위를 피하려 극장을 찾는 대신 시원한 집 안에서 뉴스 속 ‘현실의 공포’를 마주하고 있다. 공포는 더 이상 허구의 장르가 아니라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다.
이런 기후 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오싹함을 주는 공포 체험이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하는 오싹함에 대응하는 일이다.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끝나지만 기후 위기는 여전히 우리 일상 속에서 진행 중이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스크린 너머에서 재난을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그 재난영화의 한복판에 놓인 등장인물일지도 모른다. 더위를 피하려 스크린 속 공포를 찾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스크린을 벗어나 현실의 위험을 들여다보고 달라진 여름에 맞는 대응 방안을 차분히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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