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 가족 드라마 ‘좀비딸’로 2025년 여름 극장가를 정조준한 필감성 감독을 만났다. 필 감독은 2021년 영화 ‘인질’로 데뷔한 이후, 동명의 네이버웹툰 원작의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운수 오진 날’을 통해 장르물 특화 연출력을 인정받았고, 이번에는 코미디 영화 ‘좀비딸’로 돌아왔다.
필감성 감독은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의욕이 넘치는 스태프들과 함께여서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스릴러를 할 때는 창의적으로 하려는 생각에 피폐해지기 쉬운데, 이번엔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즐겁게 할 생각밖에 안 들더라”며 ‘좀비딸’의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한 그는 “시나리오가 완성되자마자 조정석에게 줬다. 원작을 보면서부터 조정석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슬프지만 유쾌한 표현, 위트와 페이소스를 짧은 시간 안에 넘나드는 원작의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조정석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연애편지 쓰는 심정으로 시나리오를 전했는데, 조정석이 ‘이건 완전 나잖아’라고 반응해줘서 기뻤다”고 말했다.
감독은 “조정석의 오랜 팬이다. 2010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보고 반했다. 무대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이 인상 깊었고, 이후로도 팬심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다. 이 작품이 바로 그 기회였다”며 조정석을 염두에 두고 각색했던 이유를 밝혔다. “조정석은 잘 튜닝된 악기 같은 분이다. 리듬감이 충만하고, 몸이 특정한 리듬을 간직하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 초반 촬영 중 옆집 좀비 아줌마가 오는 장면에서 ‘101호 아줌마 뭐 하십니까?’라는 대사가 있는데, 본인의 리듬으로 ‘아니 지금~’이라며 두 손을 허리춤에 올리며 대사 치는 걸 보고 이 영화의 분위기가 잡혔다고 느꼈다. 짧은 시간 안에 위트와 매력을 표현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이 장면에서 정환의 모드가 한 번에 각인되면서 직후 집 밖에 나갔을 때 딸 수아에게 함께 좀비 흉내를 내자고 하는 말이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여지게 된다”고 평가했다.
조정석뿐 아니라 영화의 킥으로 활약한 윤경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너무 착한 사람이다. 본인이 잘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더라. 코미디란 장르에서 일부러 웃기려고 하면 신파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우리는 애초에 웃기려는 의도로 접근하지 않기로 했다. 배우들과 첫 단체 미팅 때 가장 먼저 했던 말이 ‘웃기려 하지 말자’였다. 한 장면 안에도 웃기면서 울리는 감정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코미디로 접근하지 말고 상황 자체에 충실하자는 약속을 나눴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며 “캐스팅 시점에 윤경호 배우가 먼저 면담을 요청해서 만났다. 제가 생각하는 코미디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본인도 일부러 웃기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애드리브도 하지 않고, 웃기는 표정도 안 하겠다고 말하며 하이파이브까지 했다”고 말했다.
“윤경호의 첫 촬영이 토르 복장이었는데, 성실한 배우라 1안부터 4안까지 모두 준비해왔더라. 의상과 분장까지 갖추고 나니 의욕이 넘쳐서 준비도 세게 해오셨더라. 약속과 달리 갑자기 애드리브를 많이 하셔서 ‘워워’ 하기도 했다. 회식 자리에서도 ‘안 하실게요’라는 얘기를 반복할 정도로 밈처럼 농담이 오갔다”며 윤경호에게 “안 하실게요”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게 되었던 배경을 웃으며 설명했다.
필감성 감독은 “이야기의 비극성이 자연스럽게 발화될 거라 생각했고, 그것이 감동으로 전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며 “코미디는 어려운 장르다. 자신감이 있던 건 아니지만 ‘인질’ 이전에 캐릭터 코미디, 마술 소재 코미디 등 여러 경험이 있었다. 이번엔 좀비, 가족 이야기, 코미디가 섞인 하이브리드 작품으로 접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가 가장 신경 쓴 건 배우들의 앙상블이다. 현장에서 ‘배우가 돋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 디렉션보다는 배우의 생각과 제 생각이 일치할 때 가장 만족스럽다. 그래서 사전에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리딩도 많이 했다. 대사를 쓴 이유, 해석 등을 서로 공유하고, 현장에서는 최대한 집중했다”며 모든 배우들과 사전에 작품에 대한 충분한 공감을 한 이후 촬영에 들어갔기에 현장에서의 분위기는 더욱 좋았다며 비결을 밝혔다.
영화에서 좀비로 등장하는 최유리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조정석, 이정은, 윤경호 같은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사랑스러운 좀비’로 K-좀비물의 새 역사를 쓴 최유리에 대해서는 “영화 ‘외계+인’에서 좋게 봤다. 웃을 때는 무장 해제되는 해사한 느낌이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묘한 슬픔이 있는 얼굴이다. 그 얼굴이 너무 매력적이라 수아 역에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밝혔다. “사춘기 딸일 때는 티키타카가 잘돼서 귀여우면서, 좀비가 되었을 때는 슬픔을 담아낼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고등학생의 배역에 아이돌 같은 친구도 고려했지만 최유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유리는 조정석보다 먼저 캐스팅됐다. 연습이 필요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합류해서 좀비 모션, 춤, 연기 등을 익혔다. 저와 가장 많이 만나서 함께 영상을 보며 발전 과정을 공유했는데, 스펀지 같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들끼리의 앙상블을 이루는 데는 이정은의 활약도 중요했다. 가장 만화 같은 외모를 하면서도 가장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인물로 캐스팅해야 했다. “밤순 역은 이정은 아니면 누가 할까 싶었다. 이정은이 아니면 접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중요했다”고 말했다. “수아가 좀비가 된 건 굉장한 비극인데, 그 직후 밤순이 등장해 코미디라는 에너지를 확 끌어올려야 했다. 배우의 카리스마가 중요했는데, 이정은이라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운수 오진 날’을 함께 하며 신뢰가 쌓였고, 제안을 했을 때 흔쾌히 응해줬다”고 말했다.
“이정은 선배님은 정말 놀라운 배우다. 매 순간 진실하게 연기하다가도 테크니컬한 지점을 자신만의 매력으로 채운다. 효자손으로 손녀를 때리는 장면도 있었는데, 장르적으로 계산한 건 아닌데 묘하게 코믹하게 표현하셨다. ‘선배님 마술사 같으세요’라고 말씀드렸고, 저는 이정은이 배트맨 같은 역할도 해낼 수 있는 분이라고 믿는다. 정말 천재적이다”라고 극찬했다.
조한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짧고 강렬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과거 장면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관객들이 바로 알아볼 수 있어야 했다. 우산을 쓰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조한선을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분량이 작았지만 흔쾌히 수락해줬고, 함께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눴다. 가장 리딩을 많이 한 배우 중 한 명이다”고 말했다.
조여정에 대해서는 “슬픈 상황도 유쾌하게, 사랑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누구일까 고민했다. ‘기생충’ 속 그의 장면이 떠올랐다. ‘잡아죽일 좀비 없나?’라는 대사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독특하고 예측 불가능한 연기를 하는 배우라 항상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에서의 또 다른 주연은 고양이 ‘애용이’다. “CG를 일부 사용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애용이가 탁월하게 해줬다. 덕분에 CG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정말 가만히 있었다. 당시 3살이었는데, 저도 집사여서 잘 기다려주는 원칙으로 접근했는데, 오히려 너무 빨리 끝나서 놀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우려가 많았다. ‘좀비딸’의 정체성에서 고양이가 중요한 부분이라 실사로 가겠다고 하자 제작진이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키우던 고양이가 ‘개냥이’여서 이런 성향의 고양이만 찾으면 될 거라 생각했고, 전국에서 4마리를 데려다 오디션을 봤다. 다른 고양이들은 현장에 풀어놓자마자 도망가거나 어딜 올라가거나 그 자리에 있질 않았는데 애용이는 배를 깔고 누워 ‘어쩔 건데?’라는 표정을 짓더라. 그 당돌함에 마음을 뺏겼고, 안아봤더니 품에 폭 안기더라. 달관한 듯한 텐션과 연기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NG를 가장 많이 낸 배우는 애용이인데, 실제 배우들은 항상 웃음을 참지 못해서 NG가 많았다”고 웃었다. “처음 윤경호가 토르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조정석이 너무 웃어서 촬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치료제가 나온다는 장면, 놀이공원에서 주식 얘기하는 장면도 윤경호가 너무 기가 막히게 연기해서 다들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결국 촬영을 잠시 쉬었다가 다시 했다”며 코미디인 만큼 웃음 때문에 힘들었던 장면들을 꼽았다.
‘좀비딸’은 이 세상 마지막 남은 좀비가 된 딸을 지키기 위해 극비 훈련에 돌입한 딸바보 아빠의 고군분투를 담은 코믹 드라마로, 현재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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