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너무 앞서갔다…지금 봐도 디자인 멋진 ‘추억의 국산차’ 정체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지금 봐도 디자인 멋진 ‘추억의 국산차’ 정체

대우자동차 ‘에스페로’ 모습을 AI를 활용해 그려봤습니다. 실제 모습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이미지입니다.

대우자동차 에스페로는 1990년대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뽐내며 ‘추억의 명차’로 기억되는 국산 중형 세단이다. 국산차 애호가 사이에서 지금 봐도 디자인만큼은 멋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 9월 출시된 에스페로는 대우자동차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첫 고유 모델이다. 차명은 스페인어와 에스페란토어로 ‘희망하다’, ‘기대하다’를 뜻하는 ‘Espero’에서 유래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쏘나타가 중형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 대우는 1986년부터 4년간 약 1400억 원을 투자해 에스페로를 개발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야심을 드러냈다. 에스페로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당시의 자동차 디자인과 기술력을 상징하는 모델로, 오늘날에도 올드카 마니아들 사이에서 재출시를 바라는 대표적인 국산차로 꼽힌다.

에스페로의 가장 큰 매력은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인 스튜디오 베르토네가 빚어낸 혁신적인 외관이다. 당시 국산차에서는 보기 드문 쐐기형 디자인과 라디에이터 그릴을 과감히 생략한 전면부는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특히 C필러를 유리로 감싼 독특한 구조는 시트로엥 XM과 잔티아를 연상케 하며 차체의 매끈한 라인과 함께 공기저항계수 0.29Cd를 달성해 당시 BMW 850i와 동급의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 차의 공기저항계수는 한동안 국산차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에스페로의 설계가 얼마나 앞서갔는지를 보여준다.

대우자동차 ‘에스페로’ 모습을 AI를 활용해 그려봤습니다. 실제 모습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이미지입니다.

에스페로의 사다리꼴 헤드램프와 길게 뻗은 측면부는 군더더기 없는 날렵함을 더했으며 초기형 테일램프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후 1991년 11월에는 콤비네이션 타입 테일램프로 변경되며 대중적 취향을 반영했다.

에스페로의 실내 디자인 역시 시대를 앞섰다.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을 연결한 랩 어라운드 스타일은 공간의 통일감을 주었고 도어에 위치한 송풍구와 구즈넥 스타일 핸들, 위로 올려 여는 도어 래치 등은 신선한 시도였다.

에스페로의 초기 모델은 디지털 속도계를 적용해 당대 유행을 따랐으며 전륜구동 플랫폼을 활용해 후륜구동 차량보다 넉넉한 뒷좌석 공간을 확보했다. 그러나 파워윈도우 스위치가 초기형에서는 플로어 콘솔 중앙에 배치돼 다소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후기형에서는 운전석 도어트림으로 옮겨졌다. 1993년에는 알루미늄 휠과 도어트림 디자인이 변경되고 센터페시아에 컵홀더가 추가되면서 편의성이 한층 개선됐다.

에스페로의 엔진은 초기 2.0L CFI(100마력)로 출발했으나, 현대 엘란트라와의 경쟁을 위해 1991년 2월 대우가 영국 로터스의 자문을 받아 독자 개발한 1.5L DOHC(100마력) 엔진을 추가했다. 이 엔진은 저속 토크가 강해 도심 주행에 적합했으며 이후 1.8L MPFI, 1.6L LPG 택시 트림 등이 추가됐다. 에스페로의 연비는 2.0L 모델 기준으로 수동 13.5km/L, 자동 12.2km/L를 기록했다.

하지만 에스페로는 부품 정밀도 부족으로 엔진 오일 누출, 노킹, 급가속 시 소음과 진동 문제가 발생하며 품질 논란에 휩싸였다. 이런 문제는 에스페로의 후기형에서 대부분 개선됐다.

에스페로는 중형차로 출시되었으나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무난한 디자인과 달리 공격적인 스타일로 인해 국내 시장에서 초기 판매가 부진했다. 특히 현대 엘란트라와 기아 세피아의 등장으로 준중형차 시장이 형성되자 대우는 에스페로를 준중형으로 재포지셔닝하며 1.5L 엔진을 주력으로 내세웠다. 이는 로얄 프린스와의 판매 간섭을 줄이고 젊은 층을 공략하는 전략이었다.

에스페로는 해외에서도 가격 대비 세련된 디자인과 편의장비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유럽 시장에서 오펠 벡트라, 포드 시에라와 경쟁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마케팅에서도 에스페로는 독창적이었다. 영화 ‘탑건’을 오마주한 광고는 F-14 톰캣 전투기와 함께 도로를 질주하는 에스페로를 보여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93년 미스코리아 대회 후원, 100명에게 차를 1년간 무료 제공하는 품질 평가단 캠페인 등의 전략은 당시로서는 파격 그 자체였다.

그러나 에스페로는 국내 소비자의 보수적 취향과 품질 문제로 인해 중형차로서의 입지를 다지지 못했고 결국 1997년 대우자동차 누비라와 레간자 출시로 단종됐다. 1998년까지 수출용으로만 생산되며 총 54만 6000여 대가 판매됐다.

이런 가운데 에스페로는 올드카 마니아들 사이에서 독특한 디자인과 시대를 앞선 시도로 재평가받고 있다. 뉴트로 열풍 속에서 전기차로 재출시되길 바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에스페로는 대우자동차의 기술력과 디자인 도전을 상징하는 모델로, 지금 봐도 세련된 외관과 혁신적 시도로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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