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태양광 발전소 옆에 있지만, 어둠 속에 살아가는 마을

거대 태양광 발전소 옆에 있지만, 어둠 속에 살아가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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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남부 팜파 클레메시의 주민들은 램프를 이용해 밤을 버틴다

매일 아침, 로사 차마미는 마당에 임시로 마련된 화덕에서 불꽃이 골판지 조각을 삼키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한때 최첨단 기술의 산물이 태양광 패널 80만 개가 담겨 있던 이 골판지 상자들은 이제 로사네 집에서 장작처럼 쓰인다.

이 패널들은 2018~2024년 페루 수도 리마에서 남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모케구아 지역의 ‘루비’와 ‘클레메시’ 태양광 발전소 내 설치됐다. 두 발전소를 합치면 페루는 물론 라틴아메리카 최대 규모의 태양광 설비다.

그리고 로사가 사는 작은 마을인 팜파 클레메시에서는 흰색 조명 아래 일렬로 늘어선 이 패널들이 보인다. 특히 루비 태양광 발전소는 마을에서 불과 600m 떨어진 거리에 있다.

그러나 로사의 집을 포함해 이 마을의 모든 민가는 정작 발전소 전력망에 연결되어 있지 않아 밤이 되면 완전한 어둠 속에 잠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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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파 클레메시 마을 어디서든 루비 태양광 발전소를 볼 수 있다

태양이 생산하지만, 집까지 닿지 않는 전기

팜파 클레메시 마을 주민 150명 중 그 누구도 국가 전력망에 접근할 수 없다.

루비 발전소의 운영업체인 ‘오리젠’사가 일부 주민에게 태양광 패널을 기부하긴 했지만, 정작 이를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배터리와 변환기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밤이 되면 램프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그냥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코 앞에 태양광 시설을 두고 벌어지는 충격적인 역설이다. 루비 태양광 발전소는 연간 약 440기가와트시(GWh)의 전력을 생산하는데, 이는 35만1000개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해당 발전소가 위치한 모케구아 지역은 연간 일조 시간이 3200시간 이상으로, 웬만한 다른 국가보다 풍부해 태양광 발전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췄다.

게다가 페루가 현재 재생에너지에 집중하고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이 역설은 더욱 두드러진다.

페루에서는 2024년 한 해만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생산량이 96% 증가했다. 태양광과 풍력은 높은 전도율 때문에 구리에 크게 의존하는데, 마침 페루는 세계 2위의 구리 생산국이다.

페루 제2의 도시 아레키파 소재 산타 마리아 대학교의 에너지 전문가인 카를로스 고르디요는 “페루의 (전력) 시스템은 수익성을 중심으로 설계되었을 뿐,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도 연결하기 위한 노력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오리젠 측은 자신들은 모든 책임을 다했다고 말한다.

오리젠 페루 지사의 마르코 프라갈레 대표는 BBC 스페인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사는 팜파 클레메시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는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미 전용 송전선도 건설했다. 또한 송전탑 53개 가동 준비를 마치는 등 전기 공급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도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프라갈레 대표는 팜파 클레메시 마을에 전력을 공급하고자 지하에 길이 약 4000m의 케이블도 설치된 상태라면서 80만달러(약 11억원)가 투입된 이번 투자는 완료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개별 가정까지 연결하는 최종 단계는 결국 정부의 책임이다. 관련 계획에 따르면 페루 광업 및 에너지부는 배선 약 2km를 설치해야 한다. 원래 올해 3월 공사 착수가 예정되어 있으나,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BBC 스페인어 서비스는 광업 및 에너지부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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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저녁을 먹고자 모인 주민들의 모습.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램프가 작게 빛을 내고 있다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매일의 사투

로사가 사는 작은 집에는 콘센트가 하나도 없다.

이에 로사는 매일 휴대전화를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잠시 전기를 쓰게 해줄 사람이 있는지 묻고 다닌다.

로사는 볼리비아 국경 근처에 사는 가족들과 연락하려면 휴대전화가 있어야 한다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로사를 도와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루벤 폰고다. 마당과 방 여러 개를 갖춘, 마을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루벤의 집에는 점박이 닭들이 태양광 패널 사이 공간을 차지하고자 늘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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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 태양광 발전소의 노동자인 루벤 폰고는 팜파 클레메시의 주민이다

루벤은 “회사에서 마을 주민 대부분에게 태양광 패널을 기부했다”면서 “그러나 사비로 배터리, 변환기, 케이블을 사야 했다. 그리고 설치 비용도 내가 부담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마을에서 루벤은 다른 사람들이 그저 꿈만 꾸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 바로 냉장고이다. 하지만 하루 최대 10시간만 작동하며, 그마저도 구름이 많은 날에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그는 루비 발전소 공사 건설 현장에도 참여했으며, 이후에는 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맡아 패널을 청소하기도 했다. 현재는 발전소의 창고를 관리하며 회사 차로 출근한다. 비록 공장이 마을에서 바로 길 건너편에 있음에도 말이다.

페루 법상 판-아메리카 고속도로를 도보로 건너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집 지붕으로 올라간 루벤은 저 멀리 빛나는 건물들을 가리키며 “저게 공장 변전소다. 불빛으로 빛나는 작은 마을처럼 보이지 않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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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 태양광 발전소는 페루 내 약 35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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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기다림

팜파 클레메시에는 2000년대 초부터 주민들이 모여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인 페드로 차라는 현재 70세이다. 그는 자신의 집 바로 옆에 패널 50만 개 규모의 루비 발전소가 건설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마을은 대부분 해당 발전소에서 버린 재료로 지어졌다. 페드로는 심지어 자신이 쓰는 침대도 버려진 목재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이 마을엔 상하수도나 쓰레기 수거 시스템이 없다. 한때 500명 규모였던 마을은 부족한 인프라로 인해 대부분이 떠났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많은 이들이 마을을 떠났다.

페드로는 “때로는 물과 전기를 얻고자 오랫동안 기다리다 보면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냥 죽는 게 낫지 않냐는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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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공용 공간에는 전기 공급을 위한 가로등이 쌓여 있다

램프에 의존한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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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파 클레메시 지역에서는 목재나 벽돌로 지어진 가옥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로사는 마지막 햇빛이 땅에 드리울 시간 서둘러 이모 집으로 향했다. 오밤 이모는 함께 식사할 이웃들을 위한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부엌에서는 가스레인지 위에 주전자가 올려져 있었다. 식사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빛은 태양광 램프다. 저녁 식사 메뉴는 달콤한 차와 튀긴 밀가루 반죽이다.

로사는 “우리는 실온에서 보관할 수 있는 것만 먹는다”고 했다.

냉장고가 없어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은 보관조차 하기 어렵다.

신선한 농산물을 구하려면 모케구아까지 40분가량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그조차도 버스비를 낼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매일 그 버스를 탈 돈이 없습니다.”

전기가 없는 수많은 라틴아메리카 사람은 장작이나 등유로 요리하는데, 이로 인해 호흡기 질환의 위험에 노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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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파 클레메시의 주민들은 빛이 없어 밤에 요리를 하지 못한다. 촛불이나 장작을 사용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

팜파 클레메시의 주민들은 돈이 있으면 가스를 사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장작을사용한다.

이들은 램프 주변에 모여 더 나은 먹을 것과 잠잘 곳, 물 등을 바라며 기도를 마친 뒤 침묵 속에서 식사한다. 이 오후 7시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전화도, TV도 없다.

로사는 “우리의 유일한 빛은 램프”라면서 “밝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침대로 걸어갈 수는 있다”고 했다.

페드로는 “전기가 들어온다면 주민들도 돌아올 것”이라면서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마을에 머물렀다. 그러나 빛이 있다면 우리도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드러운 바람이 사막을 휘감으며 모래를 일으킨다. 마을의 중앙 광장에 쌓여 있는 가로등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언젠가 설치되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바람이 분다는 것은 해질녘이라는 뜻, 즉 곧 빛이 사라질 것이라는 신호다.

로사나 페드로처럼 태양광 패널이 없는 주민들에게 어둠은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이어진다. 정부가 언젠가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이들의 희망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밤들처럼, 그들은 또 한 번 빛 없는 저녁을 준비한다.

하지만 왜 이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갈까.

로사는 망설임 없이 “태양 때문”이라고 답했다.

“여기엔 늘 태양이 있으니까요.”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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