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중부 최대 도시 다낭이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을 앞세운 ‘첨단기술 테스트베드’로서의 위상을 다지기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지난 7월 30일, 다낭시 인민위원회 산하 과학통신국 주최로 열린 ‘Da Nang Innovation Startup Festival – SURF 2025’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자리였다.
SURF 2025는 다낭의 연례 기술혁신 행사로, 도시가 지향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미래를 구체화하고 글로벌 투자자 및 기술 전문가들과의 연결 고리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매년 개최된다. 올해는 ‘유니콘 육성을 위한 정책 지원 방안’을 주제로, 국내외 정부 관계자, 창업자, 투자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됐다.
행사는 단순한 전시성 이벤트를 넘어 실질적인 기술 적용과 정책적 실행을 염두에 둔 자리로 꾸며졌다. 7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다낭 현지에서 가상현실(VR) 기반의 100개 라이브 부스, 200개 온라인 부스를 포함한 스타트업 전시회, 경진대회, 기술 포럼, MOU 체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렸다.
행사 개막식에서는 다낭시 인민위원회가 디지털 전환 정책의 일환으로 탄소 크레딧 거래 시장의 시범 운영, 공공 부문의 기술 혁신, 생명공학 협업 등과 관련된 협약에 서명했다. 이와 함께, 다낭 내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구성된 ‘혁신 네트워크’를 공식 출범시키며, 학계와 스타트업 간의 유기적 협력 기반을 다졌다.
다낭시는 최근 4년 연속 ‘가장 매력적인 스타트업 도시’로 선정될 만큼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2024년 기준 베트남 내 지역 혁신 지수는 5위, ICT 지수는 16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분석기관인 StartupBlink에 따르면, 다낭은 2025년에 전 세계 1000개 도시 중 766위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배경에는 정부의 체계적인 정책 지원이 있다. 다낭시는 지난해 국회 결의안 제136/2024/QH15호를 통해 총 20개 이상의 창업·기술 혁신 관련 세부 정책을 발표하며, 인큐베이터, 벤처펀드, 엔젤 투자자 네트워크 형성 등을 적극 추진해 왔다. 특히 반도체, 신기술 테스트, 기술 인프라 조성 등에 실질적 예산과 행정 자원을 투입하고 있어, 형식적인 지원에 머물렀던 과거와의 차별성이 뚜렷하다.
다낭의 기술 인재 육성 인프라도 주목할 만하다. 한-베 친선IT대학교, FPT대학교 등 주요 대학 40여 곳에서 매년 6,000여 명의 IT 인재가 배출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는 글로벌 IT 기업들에게 매력적 요소로 작용하며, 실제 다수 외국계 기업들이 다낭 진출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URF 2025 포럼의 핵심 주제는 다낭의 디지털 전환 전략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도시 혁신이었다. 주요 발표자 및 패널 토론 내용은 다음 네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① “기술 수용 도시를 넘어 기술 창출 도시로”
베트남 블록체인협회 핀테크 응용 위원회 짠 후엔 진 위원장은 다낭이 디지털 산업법(2026년 시행 예정), 국제 금융센터 개발계획, 자유무역지대(FTZ) 설립 등을 통해 블록체인 중심의 정책 기반을 갖춰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히 해외 기술을 도입하는 수준이 아닌, 자체 기술 실험과 산업 확장을 목적으로 한 전략이다.
② “비기술적 리스크, 지방정부의 적극적 개입 필요”
메티스 재단 CEO 톰 응오는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기술과 자본을 확보하고도 실패하는 주요 원인으로 ‘비기술적 요인’을 지적했다. 특히 법적 불확실성과 행정 절차의 복잡성은 스타트업 성장에 중대한 장애물로 작용한다며, 다낭시의 비교적 유연하고 개방적인 정책 접근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③ “사람과 유통 전략이 스타트업 성공 좌우”
애니모카 브랜드의 인큐베이션 책임자 조나 라우는 다낭의 스타트업 환경이 기술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AI가 많은 것을 자동화할 수 있어도, 결국 기술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인재 육성과 명확한 유통 전략 없이는 유망한 기술도 시장에서 실패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지적이다.
④ “행정 혁신의 실험지로서 블록체인 기술”
SURF 2025 패널들은 블록체인과 AI가 공공 행정의 효율화, 투명성 강화,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에 적용될 수 있는 도구라고 강조했다. 수이 재단, 스타트업블링크 등 해외 연사들은 다낭이 그러한 기술 적용의 시험무대로 적합한 도시라고 평가했다.
SURF 2025는 다낭이 아세안 지역 내 디지털 전환 허브로 부상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행사였다. 국내외 연사들 다수는 다낭의 디지털 정책이 비교적 신속하게 추진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행정 지원과 법적 인프라 간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KOTRA 다낭무역관과 인터뷰를 진행한 SUCI 블록체인 허브 설립자 퀸 지앙(Quinn Giang)은 “AI, 블록체인을 물류, 에너지, 금융에 접목하면 기술의 실증을 넘어서 도시 전체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결국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환경과 규제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SURF 2025를 통해 다낭은 자신들이 단순히 스타트업을 유치하는 도시가 아니라, 기술의 ‘실증과 확산’이 이루어지는 도시임을 강조했다. 블록체인, AI, 토큰화 기술 등은 이제 더 이상 먼 미래의 개념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인재, 유통 전략, 제도적 뒷받침이 동반되지 않으면, 기술력은 공허한 수사에 그칠 수 있다.
다낭은 현재까지의 지표와 성과로 볼 때 성공적인 출발선을 확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과제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외부 투자자와 글로벌 파트너들이 주목하는 이 시점에서, ‘정책 실행력’과 ‘시장 경쟁력’의 교차점에서 어떤 결과를 도출하느냐가 다낭의 진짜 경쟁력을 입증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