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정부가 6월 27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의 후폭풍이 확산되고 있다. 하반기 대출 공급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강경책 이후, 주택담보대출을 넘어 전세자금대출까지 취급 제한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대출 난민’ 현상이다.
◇대출 증가 둔화, 효과는 분명…공급량 축소가 핵심
정책 시행 후 가계대출 증가 속도는 뚜렷하게 둔화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58조9734억원으로, 전월 말(754조8348억원)보다 4조1386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7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58조9734억원으로, 한 달 새 4조1386억원 증가에 그쳤다. 올해 3월 이후 가장 낮은 증가폭이다.
핵심은 단순한 한도 축소가 아닌, 대출 공급량 자체를 조기에 차단하는 총량 규제에 있다. 공급량 한도를 초과하면 대출 자체가 중단되기 때문에, 수요 억제보다 즉각적이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차주 대부분이 한도를 다 채우는 구조는 아니기 때문에, 공급량 자체를 줄이는 조치가 실질적 제어 수단”이라고 말했다.
◇‘조건부 전세대출’ 전국 확산…창구 닫히는 실수요자
총량 규제의 효과가 확인되자, 은행권은 전세자금대출에도 같은 방식의 제약을 걸기 시작했다. 특히 6·27 대책에서 언급된 수도권·규제지역에 대한 조건부 전세대출 제한 조항이 전국으로 확장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신한은행은 조건부 전세대출 제한 지역을 10월까지 전국으로 확대하고, KB국민은행은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지역에 상관없이 제한한다. 우리은행은 소유권 이전 및 근저당 말소 조건을 모두 제한하고, IBK기업은행·하나은행·NH농협은행은 모집인 통한 대출 접수를 중단하는 동시에 조기 한도를 소진시키고 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주담대 규제로 전세대출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총량 관리를 위해 선제적 차단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출 난민’ 확산, 실수요자는 더 깊은 고립
문제는 실수요자다. 금리와 한도가 유리한 은행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주택 자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서민 실수요자들은 ‘대출 난민’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출 가능 은행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대출 헌팅’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일부 은행은 자체 기준에 따라 조건부 대출 심사를 더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전세대출 시장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통제’에만 집중된 총량 규제의 한계
총량 규제는 단기적 효과는 크지만, 장기화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은행은 수익성 저하로 가산금리를 높이고, 소비자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공급량 조정과 가산금리 인상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현실화되고 있다.
총량 규제는 근본적 대책이 아니다. 특히 주택 자금 실수요자를 위한 선별적 완화 조치와 함께, 집값 안정을 위한 정교한 부동산 정책이 병행되지 않으면, 대출 통제가 시장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누구를 위해, 어디까지 막을 것인가’라는 정책 설계의 기준이 필요하다. 실수요자 보호와 거시건전성 사이의 균형점을 설계하지 못하면, 규제는 목적을 잃고 수단만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