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퇴사 후 집에서 일상을 보내던 청년 백수 길구(안보현)는 어느 날 아랫집에 이사 온 선지(임윤아)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평소와는 다른 기괴한 비주얼의 선지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고, 그녀의 아버지 장수(성동일)로부터 이들 가족의 특별한 비밀을 듣게 된다. 바로 선지가 낮에는 유순하고 평범하지만, 새벽이 되면 악마가 깨어나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 장수는 길구에게 새벽에만 선지의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는 험난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안하는데, 과연 길구는 악마 선지의 저주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비포스크리닝
장편 상업 영화 데뷔작 ‘엑시트’부터 초대박을 터트린 이상근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당초 초기 제목은 ‘2시의 데이트’였으나, 이후 ‘악마가 이사왔다’로 변경됐다.
그의 전작 ‘엑시트’는 2019년 개봉 당시 청춘의 아픔과 용기를 재난이라는 틀 안에서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게 다뤄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이에 힘입어 국내에서만 9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을 뿐 아니라, 제40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감독상·기술상·인기스타상, 제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시나리오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 면에서도 인정을 받은 바 있다. 이에 차기작 ‘악마가 이사왔다’를 향한 관심도 큰 상황이다.
‘엑시트’에 이어 임윤아와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다는 점 역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전 작품에서 임윤아의 통통 튀는 매력을 완벽하게 담아내는 데 성공, 관객들을 쉴 새 없이 웃고 울게 만들었던 이상근 감독이 다시 한번 임윤아와 함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애프터스크리닝
‘악마가 이사왔다’를 한 마디로 소개하자면 틀은 같지만 안에 든 재료는 다른 또 다른 버전의 ‘엑시트’다. 앞서 청춘 드라마에 재난을 버무려 새로운 맛을 냈다면 이번엔 오컬트를 섞어 또 다른 맛을 냈다. 나쁘게 말하면 ‘재탕’이겠지만 긍정적으로 본다면 이상근 감독 특유의 색깔을 살렸다 볼 수 있겠다.
우선 주인공의 상황과 역할이 그렇다. ‘엑시트’에서 직업과 꿈 없이 방황하는 용남(조정석)의 모습을 통해 청춘의 공감대를 건드렸던 이 감독은 이번엔 안보현이라는 배우에게 같은 옷을 입혔다. 안보현이 연기한 길구 역시 여러 도전은 해왔지만 뭐하나 끝까지 진득하게 해내지 못한, 겨우겨우 취직한 회사마저도 ‘힘들다’는 이유로 스스로 때려치운, 우리 주변에서 흔하디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청년이다. 극 중 길구는 우연한 기회로 만난 선지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아픔도 함께 들여다보고 치유를 받게 되는데, 이는 ‘엑시트’에서 재난 상황을 벗어나며 새로운 희망을 얻었던 용남과 비슷한 모양새다. ‘엑시트’에서 용남을 통해 방황하는 청춘들에 용기를 건넸던 이 감독은 이번엔 길구를 통해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영화의 분위기와 서사의 흐름마저 ‘엑시트’와 흡사하다. 재난에서 오컬트로 넘어감에 따라 작품의 톤이 비교적 스산하고 어두워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만듦새가 ‘엑시트’와 판박이다. 특히 소극적인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 점차 각성해간다는 점에서 그러한데, 이미 ‘엑시트’가 짜임새 있는 구성을 선보였던 만큼 ‘악마가 이사왔다’의 전체적인 완성도 역시 나쁘게 느껴지진 않지만 조금 더 도전적인 시도를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앞서 이 감독의 지휘 아래 제대로 망가진 모습을 보여준 임윤아는 이번엔 그보다 더 임팩트 있는 변신에 나섰다. 데뷔 이래 가장 도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임윤아는 이 숙제를 꽤나 잘 마쳤다. 새벽마다 찾아오는 악마 버전의 선지는 성격이 왈가닥인데다 오버스러운 표정 연기가 주를 이뤄 자칫하면 오글거린다는 평을 받을 수도 있는 역할. 이런 ‘밤선지’를 임윤아는 선을 넘지 않는 적절한 톤과 표정으로 연기하며 특유의 러블리한 매력을 뿜어낸다. 영화 말미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작품 속 임윤아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 역시 훌륭하게 소화해 내며 스크린을 넘어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새로운 시도 없이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점이 아쉬운 ‘악마가 이사왔다’이지만, 일부 관객에겐 이 부분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엑시트’가 품고 있는 메시지와 색채에 취향이 저격당한 관객이라면 이번 ‘악마가 이사왔다’ 역시 도전해 보길 추천한다.
iMBC연예 김종은 | 사진출처 CJ ENM
※ 이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 복제,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