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다.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졌고, 끊임없는 이민자 유입으로 성장했다. 마치 각종 채소를 샐러드 그릇에 옮겨 놓은 듯한 미국 특유의 문화는 전 세계 이민자가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생겨나고 발전했다.
해당 발언은 미국 축구계에도 통용될 만하다. 미국 축구 리그는 미국인들이 설립했지만, 그 발전을 이끈 건 언제나 외부에서 들어온 선수들이었다. 1970년대 북미사커리그(NASL)의 흥망성쇠는 1970년 중반 ‘축구 황제’ 펠레의 뉴욕코스모스 입단과 퇴단에 좌우됐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가 본격적으로 마케팅에 눈을 뜬 건 2007년 영국 축구의 아이콘 데이비드 베컴이 LA갤럭시로 이적하면서부터다. MLS는 당시 베컴을 모시기 위해 각 구단 연봉 상한선에 예외를 두는 ‘지정선수 제도(Designated player)’를 마련했고, 향후 MLS 신규 프랜차이즈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도 베컴에게 줬다.
2023년 리오넬 메시의 이적도 그에 비견할 만하다. 메시는 인터마이애미로 이적하면서 구단은 물론 MLS 전체에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안겼다. 미국 ‘포브스’에 따르면 메시를 보유한 인터마이애미는 구단 수익이 2022년 6,000만 달러(약 830억 원)에서 2024년 2억 달러(약 2,767억 원)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입장권, 스폰서십, 유니폼 판매, 미디어 초상권 등 모든 분야에서 굉장한 성장을 이룩한 결과다. 또한 메시와 맞붙는 구단은 평균적으로 645만 달러(약 89억 원) 수입을 올렸다. 일례로 몬트리올은 메시의 인터마이애미와 1경기만 치르고도 800만 달러(약 111억 원) 이문을 봤다. 애플TV가 MLS 중계권을 사들인 이래 가장 많은 구독자를 끌어모은 때는 메시의 입단 직후였다.
남쪽의 메시, 서쪽의 손흥민, 북쪽의 뮐러
메시가 인터마이애미에 입단한 건 분명 구단주 베컴의 야망이 크게 작용했다. 베컴은 메시가 인터마이애미에서 편안한 축구를 할 수 있도록 세르히오 부스케츠, 조르디 알바 등 바르셀로나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을 영입했다. 작년에는 메시와 끈끈한 호흡을 자랑했던 루이스 수아레스를 불러들이고, 감독으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까지 앉혔다.
메시의 인터마이애미 입성에 큰 영향을 끼친 다른 요소는 마이애미의 지역적 특성이다. 마이애미가 속한 플로리다주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아르헨티나계 미국인이 거주하는 곳이다. 2021년 미국 싱크탱크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아르헨티나계 미국인 중 23%인 약 66,700명이 플로리다주에 살고 있다. 또한 플로리다주는 대항해시대 스페인의 이주를 시작으로 쿠바를 비롯한 카리브해 및 남미에서 건너온 이민자가 많아 스페인어가 영어처럼 쓰이는 곳이기도 하다.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메시가 집처럼 여길 만한 환경이다.
손흥민과 함께 MLS로 이적한 토마스 뮐러는 밴쿠버화이트캡스를 택했다. 최근 MLS를 떠난 로렌초 인시녜가 토론토FC에 있었음을 감안하면 흥미로운 대목이다. 밴쿠버와 토론토는 각각 캐나다 서부와 동부를 대표하는 대도시다. 그런데 독일계 캐나다인은 주로 서부와 중부에,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은 주로 동부에 살고 있다. 역사적 갈래가 달라 두 혈통의 거주 지역이 갈렸는데, 이것이 축구계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손흥민이 LAFC로 이적한 것 역시 연고지 로스앤젤레스(LA)의 지역적 특성이 작용했다. LA는 전 세계를 통틀어 이주 한인이 가장 많은 동네다. LA에는 32만 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데, 이는 미국 내 2위인 뉴욕의 21만 명보다 11만 명 이상 많은 수치다. LAFC도 손흥민이 한인 사회에 끼칠 영향력을 잘 알았고, 존 토링턴 LAFC 단장이 적극적으로 설득한 끝에 한국인 최고 스타 손흥민을 모셔왔다.
“손흥민 합류, 한국계 미국인 커뮤니티에도 큰 의미” LA 시장의 단언
손흥민의 LAFC 합류는 구단의 경사를 넘어 LA 전역의 축제가 됐다. 손흥민은 지난 6일(한국시간) LA에 입국해 가장 먼저 LAFC 홈구장을 방문했다. 베넷 로젠탈 LAFC 공동 구단주와 함께 VIP 박스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손흥민의 모습이 전광판에 비치자 LAFC 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전광판에는 아예 ‘손흥민 환영, LAFC 공격수’라는 자막도 달렸다.
7일에는 LAFC 입단 공식 발표가 있었고, 이어 입단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는 토링턴 단장은 물론 캐런 배스 LA 시장, 데이브 민 연방 하원의원, 헤더 헛 LA 시의회 의원 등이 배석했다. 손흥민 이적이 구단을 넘어 LA 전체의 관심사라는 방증이었다.
배스 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손흥민의 이적이 도시에 끼칠 영향을 분석했다. “손흥민의 합류는 단순한 선수 영입을 넘어 도시의 역사에 남을 순간”이라며 “한국계 미국인 커뮤니티에도 큰 의미”라고 확언했다.
손흥민이 구단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미 토트넘홋스퍼에서 증명된 바 있다. 2024년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손흥민 유니폼은 매 경기 1.000장 가까이 팔렸다. 이는 2022-2023시즌까지 팀에 남아있던 해리 케인의 유니폼이 매 경기 700장가량 판매된 걸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또한 손흥민을 보기 위해 경기날 런던과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을 찾는 한국인들의 행렬은 현지에서 여러 차례 화제를 모았다. LAFC가 이적 공식 발표 전부터 손흥민과 등번호 7이 마킹된 유니폼을 공식 스토어에 진열해놓고, LA 소속 스포츠 구단들이 일제히 손흥민에 대한 환영 인사를 남긴 건 그가 도시에 끼치는 파급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
LA 한인 커뮤니티와 손흥민의 시너지는 이미 많은 매체와 축구인이 예견하고 있다. 관련해 미국 대표팀 전설이자 미국 ‘폭스스포츠’ 해설자 알렉시 랄라스는 “손흥민은 경기장 안에서뿐 아니라 마케팅 측면에서 도움이 될 거다. 그가 토트넘에서 얻은 이름값과 국제적인 인지도에 LA 한인 커뮤니티까지 더해지면, LAFC에 대한 관심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손흥민이 메시의 그것에 준하진 못하더라도 LA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거라 내다봤다.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 또한 “손흥민은 단순히 MLS로 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수많은 동포가 거주하는 곳으로 오는 것”이라며 손흥민이 LAFC로 가는 건 MLS 진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사진= LAFC, 밴쿠버화이트캡스 X 캡처,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