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박찬욱과 베네치아의 경쟁자들

[클로즈업 필름]박찬욱과 베네치아의 경쟁자들

사진 = 뉴시스

 

프랑스 칸엔 박찬욱과 봉준호가 있었고, 독일 베를린엔 홍상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한국영화 불모지가 됐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한국영화는 전무했다. 십여년 간 끊어진 베네치아 커넥션을 되살리기 위해 이번에도 박찬욱(62) 감독이 나선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또 박찬욱

베네치아국제영화제는 지난달 22일 82회 경쟁 부문 진출작 중 하나로 박 감독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선택했다. 박 감독 영화가 베네치아 경쟁 부문에 간 건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20년만이고, 한국영화가 초청된 건 ‘피에타’ 이후 13년만이다. 이제 ‘어쩔수가없다’는 경쟁 부문에 오른 다른 영화 20편과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놓고 심사위원과 관객을 만난다.

 

 

경쟁 부문 진출작 21편이 어떤 작품인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정도로 정리할 순 있다. 그간 내놓은 영화의 완성도와 쌓아올린 명성으로만 본다면 박 감독 영화와 박 감독은 같은 부문에 오른 어떤 영화, 어떤 감독에도 뒤질 게 없다는 것. 단순 수상 경력만 비교해도 박 감독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성과를 냈다. 다만 이번에 베네치아에서 만나게 될 감독 면면과 그들의 영화를 보면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쩔수가없다

일단 ‘어쩔수가없다’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영화는 다 이뤘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가 갑작스럽게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을 하기 위해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 이병헌이 만수를, 손예진이 만수 아내 미리를 연기했다. 이와 함께 박희순·이성민·염혜란·차승원 등이 출연한다.

 

 

 

원작은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트(Donald E. Westlake)가 1997년에 내놓은 소설 ‘액스'(The Ax)다. 박 감독은 십여년 전부터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수 차례 말해왔다. 이야기 얼개는 소설과 유사하다. 중산층 남성이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한 뒤 다시 취업하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살해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하지만 박 감독이 앞서 원작을 각색해 만든 작품들은 사실상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뚜껑을 열어봐야 어떤 영화인지 알 수 있을 거로 보인다.

◇베네치아의 승리자들

박 감독 강력한 경쟁자로는 일단 황금사자상 수상 경력이 있는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한 명은 기예르모 델 토로, 다른 한 명은 지안프란코 로시다. 델 토로 감독은 2017년 ‘쉐이프 오브 워터’로, 로시 감독은 2013년 ‘성스러운 도로’로 최고상을 받았다. ‘성스러운 도로’는 다큐멘터리 영화 최초 수상이기도 했다.

 

 

 

델 토로 감독은 영화팬에게 더 익숙하고 로시 감독은 다소 생소하나 두 사람 모두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이상하지 않은 영화예술가다. 델 토로 감독은 오스카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은 물론 장편애니메이션상까지 받았다. 로시 감독은 2016년엔 ‘파이어 앳 시'(Fire at Sea)로 베를린에서 황금곰상도 받았다.

이들은 그들의 작품 세계와 딱 맞아 떨어지는 새 영화를 들고 베네치아에 왔다. 판타지 장인 델 토로 감독은 메리 셀리의 SF 고전 ‘프랑켄슈타인’을 영화로 만들었다. 크리스토프 발츠, 오스카 아이삭, 찰스 댄스 등 최고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함께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성스러운 도로’와 ‘파이어 앳 시’로 도시와 공동체를 탐구했던 로시 감독은 ‘벨로우 더 클라우드'(Below the Clouds)로 다시 한 번 도시와 사람을 들여다본다. 이번에도 그는 나폴리를 어떤 내러티브도, 어떤 내레이션도 없이 파고 들어간다. 화산, 바다, 시간, 역사, 과거, 현재를 아우르는 연출은 로시 감독 미학 정점이 될 거라고 보고 있다.

◇기다렸다, 당신의 신작

캐스린 비글로우, 요르고스 란티모스, 라즐로 네메스. 영화를 좋아한다면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들 세 감독도 박 감독의 경쟁자다. 비글로우 감독은 ‘허트 로커'(2009)로 여성 감독 최초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아낸 입지전적 인물. 란티모스 감독은 한 마디로 전 세계 영화계 대세다. 네메스 감독은 ‘사울의 아들'(2015)로 아우슈비츠 영화의 새로운 윤리적 시각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글로우 감독의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허트 로커’ ‘제로 다크 서티'(2012)로부터 뻗어 나와 정치·군사 3부작을 완성한다. 이 영화는 미국이 정체불명의 미사일 공격에 노출되자 백악관 인사들이 대응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레베카 퍼거슨, 이드리스 엘바, 앤서니 라모스, 자레드 해리스, 그레타 리 등이 출연했다.

란티모스 감독의 ‘부고니아’는 올해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어쩔수가없다’ 다음으로 한국 영화팬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 장준환 감독이 2003년 내놓은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다. 한 남성이 대기업 여성 CEO를 외계의 존재로 믿고 그를 납치해 세상을 구한다는 망상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원작에서 신하균이 맡은 병구를 제시 플레먼스가, 백윤식이 맡은 만식을 엠마 스톤이 연기했다. 란티모스 감독이 ‘지구를 지켜라!’를 어떻게 각색했을지 궁금해진다.

 

 

 

네메스 감독은 신작 ‘오펀’을 통해 1956년 헝가리 혁명 이후 소련의 무자비한 정치적 탄압을 소년의 눈으로 바라 본다. 이번 작품도 ‘사울의 아들’처럼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에 얽힌 사람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며 윤리적·도덕적 감각으 방향 전환을 유도할 거로 추측된다.

◇푸틴과 이방인

현재 미국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게 션 베이커라면 션 베이커 이전 미국 독립영화의 상징은 짐 자머시였다. 어느새 70대가 된 노장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 애덤 드라이버와 함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라는 작품을 들고 베네치아를 찾는다. 미국·아일랜드·프랑스를 각각 배경으로 에피소드 3개(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로 구성한 작품. 특유의 미니멀리즘이 가족 이야기에서 어떤 힘을 발휘할지 관심이 모인다.

 

 

 

2012년 베네치아영화제에서 각본상, 2016년 칸에서 각본상을 받은 적 있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위저드 오브 크렘린’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블라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영화화해 주목 받고 있다. 푸틴이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젊은 영화 감독과 푸틴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드 로가 푸틴을, 폴 다노는 푸틴의 홍보담당자 바라노프를 연기했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스트레인저’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영화로 만든 작품, 올해 개막작인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의 ‘라 그라치아’도 기대해봐야 한다.

 

 

 

‘굿타임'(2017) ‘언컷 젬스'(2019)로 빼어난 재능을 인정 받은 베니 사프디 감독의 ‘스매싱 머신’도 있다. 프로레슬러 출신 배우 드웨인 존슨을 UFC 선수 ‘마크 커’로 변신시켰고, 여기에 에밀리 블런트가 힘을 보탰다. 평범한 연출과는 거리가 먼 감독이기에 사프디식(式) 스포츠 영화가 어떻게 탄생할지 관심이 높다. 이밖에 배우 서기가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걸’, 노아 바움백 감독의 ‘제이 켈리’도 있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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