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서울특별시교육감은 학교 현장에서 폐지 목소리가 나오는 고교학점제와 관련해 “학교의 운영 여건을 고려해서 고교학점제 및 관련 제도를 보완하고 학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잘 안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정근식 교육감은 지난 4일 진행된 뉴시스와의 서면인터뷰에서 고교학점제의 폐지와 관련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진로 적성 조기 탐색을 위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도록 하는 제도로 올해 1학기 처음으로 도입됐다.
내신 절대평가 전환과 함께 추진될 예정이었으나 대입 변별력 하락 등의 우려로 상대평가가 유지됐다. 이 가운데 내신 등급제가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뀌며 현장 혼란이 발생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고교학점제 개선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자문위원회가 제시하는 권고안을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 중 학점제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장 반응은 부정적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 5일 발표한 고교학점제의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한 명이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다교과 지도 문제로 인해 수업의 질이 저하된다는 응답이 86.4%에 달했다. 교사 78.0%가 미이수제 폐지를 요구했으며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를 실시한 교사 중 무려 97%가 학생 성장에 긍정적 효과가 없다고 응답했다.
교총이 별도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교사는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교원들의 희생으로 겨우 유지되고 있다고 답했다. 32%는 폐지 검토가 필요할 정도로 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교사노조와 전교조는 한 발 더 나아가 고교학점제 전면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정근식 교육감은 “고교학점제와 관련해 학교 현장에 큰 부담이 발생하고 있고, 고교학점제와 연동되지 않은 대입제도 및 내신 평가 제도 등으로 고교학점제의 취지가 훼손되면서 폐지론까지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과거의 획일적 교육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학점을 취득하고 학교에서 주어진 교육과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진로와 학업을 설계한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올해부터 학점 이수 기준 적용으로 책임교육이 강화되면서,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성실성이 높아졌고 선생님들께서 성취 수준이 낮은 학생들을 고려해 수업과 평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긍정적 변화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과목 선택이 대입과 연계되면서 고1 학생들에게 조기 진로 결정의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 확대를 위한 선생님들의 다과목 지도에 따른 부담,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 등에 따른 업무 부담 증가 등은 해결돼야 할 부분”이라며 “이에 대한 지원 방안을 교육청에서도 모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고교학점제 보완을 위해 교사 정원 확대 등과 같이 고교학점제 운영을 위한 단위학교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 대상 과목 축소 등과 같이 학교 운영 여건을 고려한 세부 사항을 융통적으로 적용하는 방안, 고교학점제와 연계된 내신평가 및 대입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정 교육감은 고교학점제 시행이 외국어고와 국제고 등 자립형사립고(자사고) 수요를 줄이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 교육감은 “고교학점제에 따른 성취평가제 도입, 학교 내 교육과정 다양화 등과 관련해 자사고와 외고의 일반고 전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초 지정 당시 27개였던 자사고는 지난 2024년 일반고로 전환한 이대부고를 반영해 총 16개교로 줄었다. 11개교가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했으며 올해에도 1개교가 일반고 전환을 신청해 현재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정 교육감은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고 일반고에서도 다양한 진로 맞춤형 교육과정이 가능해진 현재의 교육 환경에서 외고와 국제고의 설립 당시의 목적과 교육적 실효성이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정근식 교육감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대학 구조 및 대입제도 개선이라는 교육개혁을 통해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함께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철학의 공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큰 틀에서 공감을 표하면서도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재원과 관련해서는 선을 그었다.
정 교육감은 “현장에 있다 보면, 지금의 초·중등교육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섬세한 재정이 필요하다는 걸 실감한다”며 “서울시교육청은 단순 노후 시설 보수만 해도 매년 8000억원에서 1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투입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교실, 문화예술·창의교육이 가능한 공간,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학습 환경으로 재구성하는 데는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며 “소프트웨어, 특수교육, 다문화 배경 학생, 경계선 지능 및 느린 학습자를 위한 세밀한 교육 지원, 세계시민 교육, 체험 중심 교육 등 모두 예산이 필요한 분야”라고 했다.
정 교육감은 “초·중등교육 예산의 일부를 고등교육으로 전용하는 방식으로 고등·평생교육특별회계, 이른바 ‘고특회계’가 만들어졌고, 3년 한시 운영을 전제로 시작됐는데 올해가 그 마지막 해”라며 “현재 교육감협의회에서는 고등교육 예산은 별도로 편성되어야 하고, 초·중등 예산은 원래 목적대로 환원해야 한다는 공통된 입장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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