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민감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대한 논의를 억압하고자 동료 학생들을 감시하라고 영국 대학 내 자국 유학생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싱크탱크 ‘영국-중국 투명성 연구소(UKCT)’는 해당 보고서를 통해 중국학 전공 학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중국 당국이 교수진에게 수업 중 특정 주제를 다루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영국에서 ‘대학은 학문 및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새 법안이 시행된 지 며칠 만에 발표되었다.
한편 이번 보고서에 대해 주영국 중국 대사관은 “근거 없고 황당하다”고 반박하며, 중국은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고등교육 규제 담당 기관인 ‘OfS(학생지원국)’는 학문 및 표현의 자유야말로 고등 교육의 “근본적인” 가치라고 강조했다.
지난주 발효된 이 새 법안에 따르면 대학은 학문 및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하며, 외국과의 계약에도 이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OfS는 만약 대학들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수백만파운드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UKCT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일부 영국 대학들이 워낙 중국 유학생들의 등록금에 재정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중국 측 개입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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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해당 보고서는 민감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일부 중국인 학자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이들이 영국에서 수행한 연구로 인해 중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괴롭힘이나 협박을 당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민감한 주제란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내 인종청소, 코로나19 발생, 중국 기술 기업의 부상 등 과학, 기술부터 정치,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영국을 방문한 중국인 학자나 다른 중국 관료들, 공자학원 직원들로부터 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보고했다.
공자학원이란 영국 내 여러 대학에서 운영되고 있는, 영국과 중국의 다양한 기관을 연결하는 파트너십 조직으로, 중국 정부 기관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는다.
공자학원은 영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중국의 문화와 언어를 홍보하고 있으나, 중국 공산당과의 연계 의혹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앞서 OfS의 수잔 랩워스 최고책임자는 공자학원이 캠퍼스 내 표현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이번에 새롭게 시행된 표현의 자유 법에 따라 조사가 시작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OfS는 외국 정부나 기관의 영향력으로부터 대학들이 표현의 자유를 더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보장할 권한을 쥐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한은 대학 직원 등이 직접 OfS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새로운 민원 제도를 통해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또한 OfS는 대학들은 외국이 지원하는 장학금이나 연구 프로젝트 등 캠퍼스 내 표현의 자유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는 계약에 대해서는 이를 수정하거나 종료해야 한다고 밝혔다.
BBC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OfS는 잠재적인 수입 손실이 예상되더라도 대학들이 이러한 계약에 대해 “적절한 수준의 호기심”을 보일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 중국 대사관의 대변인은 중국은 언제나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UKCT가 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일부 중국인 유학생들은 중국 관료들로부터 동료 학생들을 감시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음을 강사들에게 털어놓았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국적의 학생들도 수업 중 중국 정부가 민감하다고 여기는 주제를 다루는 데 불편함을 느끼고 있으며, 이러한 주제에 대해 학문적으로 더 탐구하길 꺼린다고 한다.
한편 재키 스미스 영국 교육부 부장관은 영국 내 개인을 협박하거나, 괴롭히거나, 해하려는 외국 정부의 그 어떠한 시도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학생청(OfS)과 직접 협력하여 대학들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캠퍼스 내 모든 형태의 괴롭힘에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학문의 자유는 “세계적인 수준의 영국 교육 기관 내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사안”이라면서 이번에 새롭게 발효된 법을 통해 이 점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덧붙였다.
올해 초 OfS가 한 대학에 58만5000파운드에 달하는 기록적인 벌금을 부과한 선례는 “대학들에 (표현 및 학문의) 자유를 지킬 의무가 있음을 알리고” 이를 위반할 경우 “그에 따르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추가 보도: 브랜웬 제프리스 BBC 교육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