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외교부 장관의 중국이 ‘문제’라는 발언을 놓고 외교적 파장이 일자 대통령실이 나서 이례적으로 해명에 나선 가운데, 정부 내에서 사전 조율을 거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 당국자는 5일 기자들과 만나 조 장관의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 내용이 대통령실과 사전 조율됐는지를 묻는 질문에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한 것은 거기에 있는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장관이 특정 현안에 대한 입장을 낼 때는 정부 내에서 조율이 된 입장을 내는 것인 만큼, 조 장관의 인터뷰 발언도 정부측 공식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워싱턴포스트가 3일(현지시간) 보도한 인터뷰에서 조 장관은 북러 협력 등 지정학적 어려움을 거론하면서 “우리는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이 주변국들과 어느 정도 마찰을 빚고 있다는 또 다른 문제를 갖고 있다”며 “남중국해와 황해에서 중국이 어떤 행보를 보여왔는지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중국의 부상과 그 도전에 대해 상당히 경각심을 갖게 됐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중국에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양자 관계뿐 아니라 지역 문제에서도 국제법을 준수하기를 바란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각에선 조 장관이 중국에 대한 상당한 경각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을 놓고 서해 불법 구조물 등 한중 간 갈등 사안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서해 구조물 등에 대해서 저희 입장을 여러 번 분명히 냈다. 중국에서의 구조물이 우리의 해양 권익을 침해하는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라는 취지의 입장을 항상 냈던 것 같다”며 “그 입장을 그대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조 장관이 WP 인터뷰에서 중국을 향해 ‘국제법 준수’를 촉구한 건 특정 사안에서 중국이 국제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법을 지켜야 한다는 차원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역내 안정을 위해 국제법을 준수하길 바란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입장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조 장관의 WP 인터뷰와 관련한 입장문을 내 “중국은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 체제, 국제법을 기반으로 한 국제질서,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을 기초로 한 국제 관계의 기본 규범을 일관되게 확고히 수호해왔다”며 “현재 중국은 주변국들과 모두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절대 다수 주변국들도 중국과의 우호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외교의 우선 방향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주한 공관이 주재국의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반박하는 건 이례적이다. 다만 중국 측은 외교채널을 통해 정식으로 조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거나 항의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중국 정부는 조 장관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부상에 대해 경계심을 나타낸 것과 관련, 관변 학자들을 동원해 한국 정부의 대외 인식이 미국 쪽에 치우쳐 있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랴오닝대 미국·동아시아연구원 뤼차오 원장은 조 장관의 인터뷰와 관련해 “한국 현 정부는 전임 정부의 일방적인 접근을 조정하려 하며, 동시에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하고 있다”며 “조 장관의 발언은 신중한 ‘줄타기 외교’를 반영한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조 장관의 발언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 일정 조율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