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박재형 기자] 한미 상호 관세 협상이 15% 수준에서 타결되자 이를 두고 농축산업과 식품산업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관세율 자체는 당초 예상보다 낮아졌지만, 미국이 비관세를 골자로 장벽 완화를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시장 개방에 대한 우려가 재점화되는 등 긴장 상태가 최고조로 치닫는 중이다.
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상호 관세 협상 과정에서 한미 양국이 쌀과 고기 추가 개방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에 우리 농가가 민감하게 여겨온 품목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되자 표면적으로는 시장 방어에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 백악관 측의 협상 결과 브리핑 당시 농축산물에 대한 전면 개방이 언급되는 등 공식 발표에 있어 해석의 차이가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 정부는 이를 정치적 수사로 판단했지만 쌀과 소고기 외 과채류, 구황작물 등의 검역 조치 완화가 가시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며 우려를 완벽하게 씻어내지 못했다.
실제 협상 당시 미국 측은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를 비롯해 일부 품목에 대한 검역 절차 완화도 함께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농산물 수입은 과채류를 중심으로 검역 절차를 거쳐 일정 수준 통제되고 있지만, 기준이 완화될 경우 농업계는 해당 품목의 수입 문턱이 낮아지면서 국내 농산물 보호 장치가 허물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사과는 수입이 가능한 품목이지만 8단계로 구성된 검역 절차 중 2단계에서 멈춰 있어 33년간 진행되지 않고 있다. 감자는 미국 22개 주 제품에 한해 수입이 이뤄지고 있으며 남은 11개 주 생산 감자는 허용 절차 중 6단계를 진행 중이다.
이 같은 8단계 검역 절차는 ‘식물방역법’에 근거해 이뤄진다. 그로 인해 정부가 법 개정 없이 일부 단계를 임의로 생략하거나 축소할 수는 없지만, 검역 진행 속도를 높이는 방식의 우회적 대응은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핵심은 위생 조치 등 비관세 장벽이 완화될 경우 우리 농가가 직격탄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의 일부 교역국 역시 차후에 조치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어 전문가들은 검역 완화가 단순한 시장 확대를 넘어 외교적 부담과 무역 갈등으로 번질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추가 품목 개방이 아니더라도 저율관세할당(TRQ·Tarrif Rate Quota) 비중이 증가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제기된다.
TRQ는 일정 물량까지는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이를 초과할 시 추가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이 비율이 확대되면 사실상 수입 물량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 농가로서는 또 다른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 간 TRQ 품목은 감자, 대두 등 총 11개 품목이다.
한편 식품산업도 관세 협상 여파를 예의주시하며 수출 전략과 현지 생산 체계 재정비에 나서는 모양새다. 미국 내 생산 시설 보유 여부에 따라 기업별 대응 전략이 갈리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현지 생산 비율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지 생산 기반이 전무한 기업들은 관세 부담 증가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 전반에서는 신속한 대응책 마련과 함께 장기적 사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K라면 돌풍을 이어가는 삼양과 오뚜기는 상위 기업 중 현지 생산 시설이 없어 깊은 고민에 빠진 상황이다. 삼양식품 측은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불닭 시리즈의 미국 내 공급가격 인상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으며 오뚜기 역시 가격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현지 생산과 수출을 병행하는 대상은 현지 생산 비율 확대와 수출 다변화 등 사업 운영 방식 개선을 다방면으로 논의 중이다.
이 외 미국 매출이 적은 오리온과 hy 측도 시장 규모를 고려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김태황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쌀, 소고기 등 민감한 품목 개방을 막아낸 것은 긍정적이지만, 타 산업 분야의 상황도 감안할 수밖에 없어 전체적인 이익을 살리지 못한 측면도 있다”며 “일부분 개방하더라도 또 다른 교역국에 수출함으로써 수급 조절이 가능했을 것으로 예상했기에 이번 협상 결과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