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변심은 일상, 권력 잃으면 보스에 칼끝 돌리기도
고려 무신정권 100년, 배신과 암살 얼룩진 비열한 세계
조선시대 신숙주 유자광 이완용, 변절 후 부귀영화 누려
박정희부터 배신 점철…전두환 복심 장세동 ‘의리파’ 각인
친윤 복심들 진술 번복…尹 ‘모든 책임은 내게’ 했더라면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우리 정치권이 “동네 건달들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조폭 세계에선 ‘큰 형님’에 대한 작은 의리라도 있지만, 정치판은 다르다. 대통령과 계파 보스에게 권력이 있을 땐 충신인 양 설치며 호가호위하다 주군이 힘을 잃으면 눈빛도 안 마주치고, 심지어 칼끝을 겨누기도 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 정치사에서 배신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공식화된 패턴이다. 특히 100년이나 지속된 고려 무신정권(1170~1270년)은 배신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흑역사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이의방은 동지인 정중부에게, 정중부는 휘하의 경대승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어 권력을 쥔 이의민은 믿었던 최충헌에게, 최씨 정권의 마지막 집권자 최의는 수하인 김준에게 피살됐다. 배신자 김준은 양자인 임연에게 목이 달아났고, 임연 일가는 근위대인 삼별초에 도륙당했다.
대의명분을 말하는 조선도 충신의 배신과 변절이 판을 쳤다. 집현전 동지들을 배신하고 세조 편에 붙어 단종을 사지로 몰아넣은 신숙주, 연산군의 폭정을 지탱하다 연산군 축출에 앞장선 유자광, 독립문 현판을 썼다는 반중, 친미파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매국노 이완용까지. 그들의 의리는 짧고 배신의 달콤함은 길었다.
일제가 무너지고 민주공화정이 들어섰지만, 권력의 속성은 바뀌지 않았다. 박정희는 고향 후배 김재규에게 암살당했고, 전두환은 정치적 아버지인 박정희를 독재자로 몰았다. 노태우는 권력을 물려준 죽마고우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냈고, 이명박은 자신을 키워준 정주영이 대선에 출마하자 김영삼 편에 섰다. 민주투사 김영삼은 내각제를 매개로 군부세력과 손잡더니 정권을 잡자 그들을 감옥에 보냈다.
박근혜는 아버지가 총애하던 신군부에 버림받는 걸 목도하고도 측근들에게 배신당하고 탄핵당했다. 박근혜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던 사람들 모두 윤석열 검찰에 불려가 진술을 번복한 탓이 컸는데, 심지어 몇몇은 자신을 감옥에 넣은 윤 전 대통령의 참모로 변신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충신’을 꼽으라 하면 십중팔구 전두환의 심복 장세동을 가리킨다. 5공의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지낸 장세동은 전두환이 몰락한 뒤에도 5공 청문회와 12·12, 5·18 내란 재판에서 보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 1999년 송파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다가 5공의 정치재개로 비치자 “어른에게 부담을 드릴 수 없다”며 물러난 일화는 유명하다. 웃픈(웃기지만 슬픈) 현실이다.
친윤으로 불리던 측근들이 검찰에 불려가자 하나같이 윤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있다.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을 배신자로 몰면서 ‘탄핵 기각’, 윤 어게인’을 외친 그들이라 황당한 느낌마저 든다.
하긴, 주군이 본을 보이지 않으면 충신이 나오기 어려운 법 아닌가.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출동한 비상계엄 병력이 ‘의원을 끌어내라’는 말을 ‘병력 인원을 끌어내라’로 잘못 들었다며 지휘관의 청력 탓을 했다. 측근들의 표변을 단순하게 배신과 변절로 재단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부하들은 선처해달라”고 한다면 앞으로 사정이 달라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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