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OSE YOU WEAR
바르지도, 먹지도 않는다. 비타민과 미네랄을 피부로 섭취하는 패치형 영양제.
패치를 통해 영양 성분이 피부를 통과하고 혈관으로 흡수되어 우리 몸의 기능을 활성화한다. SF영화 속 이야기 같지만, 지금 내 팔목에 붙어 있는 패치 얘기다. 2021년, 미국에서 더 굿 패치(The Good Patch)가 론칭한 이후 더 패치 브랜드(The Patch Brand), 바리에르(Barriere) 등 패치형 영양제 브랜드가 잇따라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말부터 햅 패치, 하우투키, 링탭 등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KBV 리서치가 올 3월 발표한 ‘글로벌 비타민 패치 시장 규모·점유율 및 추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비타민 패치 시장은 2031년까지 7억 1천496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며, 연평균 성장률은 15.4%에 이른다. 각종 트렌드 리포트 역시 패치형 영양제의 미래를 밝게 내다보고 있다. 패치형 영양제가 주목받고 있다.
(위부터) The Patch Brand 에너지 패치 15ea 3만3천원대. The Friendly Patch 라스트 콜 패치 8ea 2만6천원대. Patch Aid 비타민C 플러스 패치 30ea 3만4천원대. PatchAid 멀티비타민 패치 30ea 3만4천원대. The Good Patch 릴렉스 4ea 1만6천원대. Hautuki 키 성장 패치 30ea 10만원.
패치형 영양제의 현재
패치형 영양제는 피부를 통해 약물을 전달하는 경피 약물전달 시스템(TDDS)을 활용한 것으로, 기존 의약 분야에서 쓰이던 기술이 건강 카테고리로 확장된 형태다. 의약품과 달리 공산품으로 분류된다.(참고로 패치형 의약품이 최초로 효과를 입증받은 건 1979년 미국에서 출시된 멀미 치료제 ‘스콜파인 패치’다.) 비타민이나 미네랄 같은 영양 성분을 피부로 흡수시키는 연구는 200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영양제로 사용되는 성분은 분자 크기가 커서 과거의 기술로는 피부 투과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후 피부 투과율을 높이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패치형 영양제도 활발히 연구되기 시작했다. 2020년대에는 패치형 영양제에 대한 다수의 효능 연구가 발표되면서 이를 기반으로 제품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패치형 영양제는 소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혈관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생체이용률(약물이 체내로 흡수되어 전신 순환에 도달하는 비율)이 높다. 또한 마그네슘처럼 위에 자극을 주거나 소화 장애를 일으키는 성분도 부작용 걱정 없이 섭취할 수 있다. “약 먹고 바로 눕지 마” 같은 잔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 알약을 삼키기 어려운 어린이나 고령층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렇다면 패치형 영양제는 어떤 원리로 우리 몸에 흡수되는 걸까? 패치 속 유효 성분은 각질층, 표피, 진피를 차례로 통과해 미세혈관으로 이동한다. 가장 먼저, 외부 물질의 침투를 막는 강력한 장벽인 각질층을 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분자 크기가 500돌턴 이하일 때만 이 장벽을 통과할 수 있다.(설탕 알갱이를 사람의 키라고 가정하면 500돌턴은 모래 한 알 정도로 매우 작은 크기다.) 각질층은 기름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용성일수록 쉽게 스며든다. 물방울이 기름칠 된 벽돌 틈에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더불어 유효 성분을 흡수시키기 위해 침투를 돕는 투과 촉진제를 사용한다. 에탄올, 올레산 같은 성분이 대표적이며 대부분의 패치에 포함된다. 또한 성분이 유실되지 않도록 캡슐화하거나 리포솜화 기술로 흡수율을 높이는 방식도 활용되고 있다. 어렵게 각질층을 통과한 성분은 스펀지처럼 엮여 있는 표피를 지나 진피에 도달한다. 그리고 세포액 사이를 따라 이동하다가 혈관으로 흡수된다. 이 과정에서 피부층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효소에 의해 분해되기도 한다. 따라서 패치형 영양제의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투과 촉진제와 전달 기술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것이다.
패치형 영양제가 모세혈관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결정적 이유는 패치의 특별한 구성에 있다. 패치는 성분을 일정 시간 동안 서서히 방출하도록 설계된다. 젤리 같은 고분자 물질에 녹아 있는 유효 성분은 피부에 닿으면 조금씩 방출된다. 이때 피부 표면은 지속적으로 높은 농도가 유지되며 내부와의 농도 차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성분이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시중에는 비타민 C, D, B12, 멀티비타민, 멜라토닌 등 다양한 성분의 패치형 영양제가 출시되고 있다. 이 가운데 비타민D는 가장 활발한 연구를 바탕으로 많은 제품이 출시된다. 분자 크기가 작고 지용성이라는 조건을 갖춰 패치형 영양제로 만들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뼈 건강과 면역력을 동시에 케어하는 성분이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필요로 한다는 점도 맞아떨어졌다.
패치형 영양제의 미래
패치형 영양제가 체내로 흡수된다는 사실은 입증되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먼저 현재 기술로는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양을 보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패치의 크기를 키우거나 여러 장 붙이면 더 많은 성분을 흡수시킬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러 장을 동시에 붙였을 때 흡수량과 안정성을 검증한 연구가 없기 때문에 아직은 그 효과를 판가름할 수 없다. 하지만 투과량은 투과율, 면적, 시간의 곱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이 키 성장 패치 ‘하우투키’를 출시한 커스틱스 윤성식의 설명. 다만 패치에는 유효 성분뿐 아니라 흡수율을 높이는 부가 성분과 접착제도 포함돼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또 다른 과제는 임상시험이다. 현재 패치형 영양제 관련 임상은 대부분 소규모로 진행돼 효과를 입증하는 속도가 더디다. 미국 FDA 기준으로 건강기능식품은 사전 임상시험 의무가 없다. 그러니 굳이 고비용을 들여서 임상을 진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패치형 영양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브랜드와 연구소 차원에서 자체 임상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실제로 이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 중인 킹스 칼리지 런던 약학과 스튜어트 존스(Stuart Jones)는 올해 2월, 새로운 비타민D3 유도체를 통해 기존보다 35배 흡수율을 높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 안에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패치형 영양제가 우리의 건강 관리 방식을 바꿔 놓을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