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윤석열 정부에서 2년 9개월간 교육부를 이끈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퇴임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2022년 윤석열 정부 등 12년의 시차를 두고 두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 고등교육 개혁과 의대 증원, 디지털 교육 혁신 등 굵직한 과제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일부 정책들은 입법 단계에서 막히거나 현장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등 한계도 뚜렷했다.
‘자율’과 ‘경쟁’ ‘디지털’로 요약할 수 있는 이주호 부총리는 이명박·윤석열 정부 재임 기간 동안 교육 현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시도했다는 점에선 환영받지만, 과도한 시장주의적 접근으로 서열화를 부추겼다는 비판 역시 그의 이름 뒤에 남겨진 뚜렷한 족적이다. 그는 퇴임사에서 “과감한 교육 개혁을 시도했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은 나의 리더십 부족 때문”이라고 자성했다.
30일 교육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인 29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사임을 재가했다. 이 부총리는 “5년 단임제 정부에서 많은 일을 해내기 어려운데, 하물며 3년 동안의 변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이제 대학으로 돌아가 연구와 인재 양성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시도… 현장 안착 ‘실패’ = 이 부총리가 가장 역점에 둔 정책은 ‘인공지능(AI)’과 ‘디지털’에 기반을 둔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다. 그는 임기 중 수학·영어 등 과목을 총 76종의 AI 교과서로 개발하고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그는 “교사들이 에듀테크를 활용해 모든 학생에게 적합한 학습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졸속 추진’이라는 현장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지역 간 인프라 격차, 교사 연수 부족, 학부모 대상 홍보 미흡 등 꼬인 매듭을 풀지 못한 것. 결국 국회에서의 입법 단계에서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지난 10일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전통적인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의대 증원’ 블랙홀에 갇혀버린 교육 개혁 = 이 부총리의 임기 중 ‘의대 증원’은 가장 논란이 많았던 정책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과대학 정원을 대폭 늘리겠다는 정부 방침을 정하고,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즉각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했고, 대학 내에서도 의대생들이 집단 휴학으로 강경하게 맞서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 부총리는 ‘의대 증원’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대입 개편’ ‘사교육비 경감’ ‘고교 다양화’ ‘학생 정서 건강’ 등 정책 추진에 역점을 뒀다.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나 글로컬대학30 등 고등교육과 관련한 굵직한 중장기 사업도 추진했지만, 실행력과 예산 측면에서 우려가 한동안 지속되면서 현장과 간극을 좁히는 데 상당한 행정력을 쏟아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 증원’이 모든 교육 정책 이슈를 빨아들이는 이른바 ‘이슈의 블랙홀’이 되는 악재까지 맞게 되면서 결국 이들 정책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임기를 마치게 됐다.
■ 사상 초유 ‘대행의 대행의 대행’까지… 정치적 부담도 컸을 듯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해 지난 4월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선고함에 따라 우리나라는 또 한 번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맞게 됐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사퇴하고, 이를 대행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마저 자리에서 물러남에 따라 이 부총리는 지난 5월 약 한 달간의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이 부총리는 “비상 상황 속에서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무거운 책임을 감당했다”고 회고했다. 이 부총리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한 교육계 관계자는 “부총리가 교육 정책 외에도 대통령·총리급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정치적 부담을 크게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 MB정부 시절, ‘대학 구조조정·고교 다양화’ 치적도 = 이 부총리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이에 앞서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대통령실 교육사회문화수석을 지냈고,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도 역임했었다. 교육계에선 “MB정부 교육은 이주호가 책임진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이 부총리는 이명박 정부 당시 자율형사립고(자사고)·마이스터고를 확대하고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공개, 교원평가제 도입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했다. 그의 교육 철학을 대표하는 ‘자율’과 ‘경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정책들이 ‘교육 구조개혁’이라는 방향에 맞게 실현됐다는 평가다.
이 부총리의 ‘자율’과 ‘경쟁’은 고등교육에서도 작동됐다. 그는 대학 구조조정을 강하게 밀어붙여 ‘대학 구조개혁위원회’를 만들고 ‘재정지원 제한대학’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는 강제적인 구조조정이라는 현장의 강한 비판에 직면했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부실해진 고등교육 생태계에 대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이 부총리는 지난 2022년 장관 취임 전 본지 인터뷰를 통해 “제가 당시 10년 후면 인구가 격감한다고,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했었다”며 “이에 대비한 제도적 기반이 있지 않으면 대학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봤다”고 했다.
■ ‘자율과 경쟁’ 그가 남긴 유산은 = 이 부총리는 퇴임사에서 “남은 과제들은 교육부 동료들이 현장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잘 마무리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후임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앞서 이 부총리의 후임 장관 후보자로 지목된 이진숙 전 충남대 총장은 논문 표절 의혹과 자녀의 불법 미국 유학 의혹, 전문성 결여 등이 논란이 되면서 지명 철회됐다.
교육계 관계자는 “이주호는 교육계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사람”이라며 “그는 장관으로 있으면서 그저 조용히 있다 갈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찬반이 팽팽할 것을 알면서도 필요한 정책이라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그래서 그가 장관일 때 교육계는 활기가 넘쳤었다. 교육부의 몇 안 되는 장관다운 장관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물론 그도 과(過)는 있다”며 “굵직한 교육 개혁 과제들을 추진했지만 실행력이나 안착을 위해 현장과 간극을 좁히기 위한 실무 조율에선 미흡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의 퇴임 이후 남겨진 이들과 후임 장관에게 교훈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