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테슬라와 약 23조원 규모의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계약을 체결하면서, 부진했던 파운드리 사업이 반등의 전환점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 계약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수주이며, 향후 테슬라와의 협력 관계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3년 말까지 총 165억 달러(약 23조원) 규모의 반도체를 테슬라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생산 제품은 테슬라의 6세대 자율주행용 인공지능 반도체 ‘AI6’로, 2나노미터(㎚) 초미세 공정이 적용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는 27일(현지시간) 자신의 X(구 트위터)를 통해 “삼성의 거대한 텍사스 테일러 신규 팹이 테슬라 AI6 칩 생산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히며 이를 공식화했다. 머스크는 “165억 달러는 최소 금액이며, 실제 공급 규모는 이보다 몇 배 더 커질 수 있다”며 추가 수주 가능성도 시사했다.
AI6 칩은 테슬라가 완전자율주행 로보택시, 사이버캡,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슈퍼컴퓨터 ‘도조(Dojo)’에 적용할 핵심 칩셋으로, 고성능 저전력·저발열·고효율을 동시에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테슬라가 대만 TSMC에 맡긴 전 세대 AI5(3nm)보다 한 세대 진화한 제품으로, 삼성전자의 최첨단 2㎚ 공정 기술력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신뢰를 입증했다.
그간 낮은 수율로 기술력 논란이 일었던 삼성 파운드리는 이번 테슬라 계약을 통해 선단 공정의 품질 안정성 확보와 수율 개선을 시장에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삼성의 2㎚ 수율이 TSMC의 60% 수준까지 근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대형 계약 성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머스크 CEO 간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두 사람은 지난 2023년 5월 머스크가 실리콘밸리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를 방문하면서 공식적으로 만나 기술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또한 비공식적으로도 꾸준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미국 파운드리 신공장인 텍사스 테일러는 테슬라 본사(오스틴)와 자동차로 30~40분 거리로, 양측의 현장 접촉이 수월한 지리적 이점도 작용했다.
이 회장은 지난 7월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머스크를 포함해 구글·애플·MS·아마존·오픈AI 등 빅테크 수장들과 회동하며 글로벌 협력 기반을 다졌고, 이달 말에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구글 캠프’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테슬라가 AI6 칩을 삼성전자에 맡긴 데는 미국 내 생산 능력을 확보한 점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머스크는 AI5는 TSMC가 대만과 애리조나 공장에서 생산하지만, AI6는 텍사스에서만 생산할 것이라고 밝히며 ‘미국 내 제조’ 방침을 강조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반도체 관세 부과 가능성 등을 감안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삼성의 테일러 공장은 약 370억달러(54조원) 규모로 건설 중이며,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현재 2㎚ 설비 반입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계약은 삼성전자의 전체 매출(2024년 기준 300조8709억원)의 7.6%, 반도체 부문 매출(111조원)의 약 20%에 해당하는 초대형 물량이다. 조 단위 적자에 빠졌던 파운드리 사업부에는 단비가 될 전망이다. 현재 중단 상태였던 테일러 공장도 공사가 재개되며, 내년 2분기 양산 준비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테슬라와의 신뢰 기반을 바탕으로 삼성전자가 퀄컴, 구글, 엔비디아 등 다른 빅테크들과도 2㎚ 공정 관련 협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퀄컴과는 차세대 스냅드래곤8 일부 물량을 삼성이 수주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며, 삼성 자체 엑시노스 2600 칩도 갤럭시 S26에 적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테슬라 수주는 단순한 수익 확보를 넘어, 삼성 파운드리가 기술력과 신뢰를 회복하고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에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이번 계약은 이재용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삼성의 기술력, 미국 생산능력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평가가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