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극단적 기상 현상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살인적 폭염, 통제 불능의 폭우와 폭설, 예측 불가능한 기상 변화는 농업 생산량 감소와 에너지 수급 불안정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에 막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지난 봄 한국을 뒤흔든 대규모 산불과 농산물 가격 폭등은 기후위기가 더 이상 먼 환경 문제가 아닌 우리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침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지난 23일 국제사법재판소(ICJ)는 현재의 기후 위기는 모든 생명권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기후 대응은 국가의 선택이 아닌 법적 의무라고 판단하며 모든 국가가 국제법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을 담은 권고적 의견(Advisory Opinion)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는 유엔총회가 2023년 3월 채택한 결의안에 이어 기후위기 방치가 국제법 위반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밝힌 첫 국제 사법 판단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ICJ는 기후위기 방치가 국제법상 불법행위로 간주될 수 있고 배상책임까지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제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적 과제가 아니라 국가와 개인 모두의 법적·윤리적 의무가 분명하다.
기후위기 시대 관광업계의 상황은 어떨까. 2024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관광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8%를 차지한다고 한다. ‘더 자주, 더 멀리, 더 오래, 더 폼나게’를 추구하는 여행자들의 소비문화와 비용 절감을 우선시하는 업계 관행이 맞물리며 관광업계의 탄소배출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공정여행가 임영신은 그의 저서 ‘기후여행자’에서 이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탄소배출을 많이 유발하는 항공여행을 즐길 수 있는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단 5%에 불과한데 이들이 북극 오로라나 멸종위기 생태계를 체험하기 위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여행을 즐기는 모순과 불평등을 지적하며 ‘덜 자주, 더 깊이, 더 오래 머무는 여행’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어떻게 하면 현명한 여행자가 될 수 있을까. 먼저 개인의 작은 실천이 출발점이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기후변화 대응 정책들은 개개인의 실천과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50인실 이상의 숙박업소의 일회용품 사용 금지와 같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추진되는 정책들은 종종 여행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문화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조금 귀찮을 수는 있지만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에 철저하게 개인물품을 챙기는 것.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는 단기여행보다는 한 달 살기 등의 체류여행으로 전환하는 것. 탄소를 조금 덜 배출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느리게 여행하는 것 등.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기후위기 시대의 현명한 여행법을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대부분의 여행업계가 ESG 관련 홍보문구를 사용하지만 실제적인 온실가스 감축 실천과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는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여행자들의 문제일 수도 있다.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 모여 정책 변화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산업 전반의 전환을 이끌 것이다. 이제 진짜 여행을 바꿔야 할 때다. 그래야 우리와 다음 세대도 여행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