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한국 금융사들이 ‘미국 시장’이라는 거대한 금융 격전지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과거 단순한 지점 설치나 브랜드 홍보에 머물렀던 행보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투자은행(IB), 사모대출(Private Debt), 세컨더리 투자, 대체자산 운용 등 수익 중심의 고부가 금융영역에서 실적을 내는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뉴욕을 중심으로 증권사, 은행, 보험사, 자산운용사들이 현지 법인 설립, 글로벌 딜 주관, 미국 ETF 시장 진출, 중견기업 대상 PD시장 선점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존재감’이 아닌 ‘지배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사모대출 사업이 미국 현지에서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한국계 ETF 상품이 미국 리테일 시장에서 직접 판매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 한국 금융의 다음 좌표는 ‘글로벌 본진’ 미국 시장이다.
이에
<뉴스락>은 제2의 성장축을 향해 전진하는 국내 금융사들의 ‘미국 전략’을 기획 조명한다.
은행, ‘네트워크+경영효율’로 보수적 성장
은행권은 오랜 기간 다져온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행장 이환주)은 1999년 뉴욕지점 개설 이후 IB 및 자본시장 중심의 영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3X3 전략(선진국+동남아+미진출 고성장국가 / 직접투자+제휴+FI)으로 글로벌 확대를 추진 중이다.
현지법인의 경영 효율성 제고를 위해 캄보디아 프라삭은행, 인도네시아 KB Bukopin 등 인수 자회사의 수익성 회복에도 집중하고 있다.
신한은행(은행장 정상혁)은 미국 내 15개 지점을 운영하며 리테일과 기업금융을 병행 중이다.
신한은행의 최근 글로벌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미주법인의 기능 확대를 고려 중이며, 미국 외 남미까지도 커버할 수 있는 거점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행장 이호성)은 뉴욕, LA, 달라스, 애틀랜타, 시카고 등에서 주로 외환·수출입 금융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 중이다.
현지 비즈니스는 중소기업 중심의 기업금융 위주로 구성돼 있으며, 2024년부터 디지털 뱅킹과 글로벌 리스크관리 강화를 병행 추진 중이다.
하나금융그룹 관계자는 “미국에서 48년으로 한국계 금융기관 중 가장 오랫동안 영업을 영위해왔고, 해외 부문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증권사, IB 딜 전면 배치…뉴욕이 주 무대
가장 역동적인 변화는 증권 시장에서 나타난다.
한국투자증권(대표 김성환)은 2000년 뉴욕에 ‘KIS America’를 설립한 이후 2021년 IB 전담법인 ‘KIS US’를 추가로 설립하며 미국 내 딜 소싱과 실사를 담당하는 중심 거점으로 삼았다.
이후 글로벌 자산운용사 브룩필드의 뉴욕 부동산 매입 자금 5천만 달러를 주관하는 인수금융 딜, 골드만삭스 등이 참여한 사모펀드 Clearlake Capital의 ‘BetaNXT’ 인수금융 공동주간사 등 굵직한 거래를 성사시켰다.
또한 세컨더리 투자 딜 중개, 사모대출 전담법인 ‘SF 크레딧 파트너스’ 설립 등으로 미국 IB시장에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
NH투자증권(대표 윤병운)도 뉴욕 현지법인을 중심으로 채권 세일즈와 IB 전략을 강화 중이며, 현지 IB딜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뉴욕 금융당국으로부터 사업 라이선스를 획득해 직접 대체투자 영업과 북미 고객 커버리지를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대표 김미섭,허선호)은 ETF 브랜드 ‘Global X’를 통해 미국 리테일·기관 시장 양쪽을 동시에 공략하고 있다.
특히, 미국 ETF 시장에 직접 상장된 상품 수는 100여 개에 달하며, 미국 내 ETF 점유율 확대와 더불어 글로벌 자산운용사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보험·자산운용, 실물 자산 중심으로 美 수익 거점화
보험 및 자산운용사들은 안정적인 장기 수익원 확보를 위해 미국 대체투자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삼성생명(대표 홍원학)은 미국 뉴욕사무소를 거점으로 대체투자 사업을 강화 중이다.
부동산, 인프라 등 실물 자산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안정적 수익 창출을 꾀하며,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한화생명(대표 여승주)은 작년 11월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지분 75%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해 국내 보험사 최초로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직접 금융상품을 소싱·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확보했다.
미국 지역을 금융의 중심지로서, 첨단 금융기술과 신기술을 확보하는 허브로 설정했다.
이를 통해 선진 금융 기술과 우수한 투자 기회를 발굴하고 확보된 역량과 상품을 한국 및 동남아 시장과 연계해 사업 성장을 가속화 하고 있다.
특히, 한화자산운용(대표 김종호)은 본사 대상 유가증권 일임, 대체투자 자문 및 용역 및 자체 펀드 운용하고 있으며, 미국 부동산 리츠(Real Estate Investment Trust)와 물류센터, 데이터센터 등에 투자하며 비은행 기반 자산운용 모델을 강화하고 있다.
카드사, 직접 진출은 ‘신중 모드’
반면 카드사들은 미국 시장 직접 진출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글로벌 제휴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삼성카드, 롯데카드 등 국내 카드사는 미국 시장에 직접 법인을 두지 않고, 글로벌 카드사와의 연동을 통해 결제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다.
롯데카드는 과거 미국 진출을 검토했으나 수익성 우려로 철회하고 동남아 중심의 확장 전략으로 선회했다.
K-금융 미국 공략의 향후 과제와 전략
K-금융이 미국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한국 금융사들의 미국 진출이 ‘존재감’에서 ‘실적’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전략 축에 대한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마련을 해야하는데, 단순한 물리적 지점 확충에 머물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금융 인프라 고도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 리테일 금융 소비자들의 모바일 채널 중심 이용 행태에 맞춘 디지털 UX 개선과 핀테크 제휴 전략이 장기적으로 수익성 제고에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규제 리스크에 대한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미국 금융당국은 최근 EB-5 비자 투자 요건, 자금세탁방지(AML), 외국계 은행 리스크 평가 기준 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 금융사 입장에서는 현지 규제 환경에 대한 이해도 제고, 준법감시 기능 내재화, 법률 전문 인력 확보 등이 필수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 자산운용사와의 연계 전략 강화다.
미국은 ETF·리츠(REITs) 등 대체투자 상품과 자산배분형 포트폴리오의 수요가 높은 시장이다.
이에 따라 일부 금융사는 ETF 전문 브랜드를 통한 미국 시장 직접 상장, 리츠 투자 확대 등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으며, 글로벌 기관투자자와의 파트너십 확보도 필수 전략으로 꼽힌다.
IB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진출 국가 수를 늘리는 확장 전략에서 벗어나, ‘선택과 집중’ 기반의 내실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디지털 기반 역량과 규제 대응 능력, 그리고 차별화된 투자상품 기획이 미국 시장 성공의 3대 핵심 요인”이라고 말했다.
미국 글로벌 투자 리서치기업 ‘모닝스타’ 소속 관계자는 “한국 금융사들이 IB나 대체투자를 통해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지만, 금리차와 국내 경기 둔화가 역내 대출 리스크로 이어지고 있어 미국 내 안정적 수익 구조 정착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