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식량 항공 투하는 ‘눈속임’, 경고하는 인권 단체들

가자지구 식량 항공 투하는 ‘눈속임’, 경고하는 인권 단체들

Reuters
이스라엘은 27일 오전 가자지구로 항공기를 통한 식량 원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가자 지구에 대한 식량 공중 투하에 집중하는 것은 가중되는 굶주림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기괴한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구호단체 지도자들이 경고했다.

이스라엘 군은 27일 새벽(현지시간), 가자 지구에 인도주의적 지원 물자를 공중 투하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유엔 구호 차량을 위한 인도주의적 통로도 개방했다고 발표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요르단도 며칠 안에 공중 투하를 실시할 것으로 예상되며,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는 영국 정부가 가자에 공중 투하 방식으로 구호 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구조위원회(IRC)의 키아란 도넬리 국장은 공중 투하 방식으로는 “필요한 양이나 질의 구호물자를 결코 전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Reuters
유엔 세계식량기구는 가자 지구 주민의 1/3 이상이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굶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마스 관할의 가자 지구 보건부는 지난 26일,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자가 5명 추가됐다고 발표하며, 전쟁 발발 이후 총 사망자는 127명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 중 85명은 어린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가자 주민 3명 중 1명은 며칠씩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으며, 여성과 아동 9만 명이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경고했다. WFP는 이를 “인위적으로 초래된 대규모 기아 사태”라고 표현했다.

공중 투하에 대한 논의는 주로 기존 육로를 통한 구호품 반입이 실패하면서 부각됐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의 필립 라자리니 사무총장은 26일 “공중 투하는 비용이 많이 들고 비효율적이며, 잘못되면 기아에 허덕이는 민간인을 죽게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요르단과 이집트에 “트럭 6,000대 분량에 해당하는 구호 물자”가 가자지구로 향하기 위한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봉쇄를 해제하고, 통로를 열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호품을 트럭으로 실어 나르는 것이 훨씬 쉽고, 효과적이며, 빠르고, 저렴하고, 안전하다. 가자 주민들에게도 훨씬 더 존엄한 방식이다”고 라자리니는 말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 이후 이스라엘은 “유엔 구호 차량이 식량과 의약품을 전달할 수 있도록 안전한 이동을 보장하는 지정 인도주의 통로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스라엘은 그 통로가 어디에 위치하며 어떻게 운영될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가자에 들어가는 구호품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은 과거 유엔이 하마스와 공모해 구호품 배분을 방해하고 있다고 시사한 바 있다.

하지만 유엔은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이스라엘이 가자 내에서 구호품을 수거하는 과정에 관료적 장벽을 세워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마스 역시 구호품을 수거 지점에서 훔친다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최근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보고서에서도 체계적인 약탈의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서방 및 아랍 국가들이 공중 투하 방식으로 가자에 구호품을 보내려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영국 왕립공군(RAF)은 요르단이 주도하는 국제 공중 연합의 일환으로 총 10차례에 걸쳐 110톤의 구호품을 가자에 투하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규모로는 가자 지구의 대규모 기아 위기를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구호단체들은 말한다.

BBC 분석에 따르면 가자 주민 200만 명 전원에게 단 한 끼 분량의 식량을 제공하려면 약 160대의 항공기가 필요하다.

미국 중앙군사령부(Centcom)에 따르면, 이들의 C-130 수송기 한 대는 한 번에 약 12,650끼의 식사를 실을 수 있다. 이 계산대로라면 가자 주민 210만 명 전체에게 단 한 끼를 제공하기 위해선 160회 이상의 비행이 필요하다.

요르단은 약 10대의 C-130을, 아랍에미리트는 추가로 8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Reuters
하마스 관할의 가자지구 보건부는 전쟁 발발 후 85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여러 구호단체들은 수천 톤의 식량을 인구 밀집 지역인 가자 지구에 공중 투하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르웨이 난민위원회의 샤이나 로우는, 지중해로 날아간 구호품을 주워 오려다 사람들이 “익사하고 있다”고 말하며, 하늘에서 떨어진 상자가 “사람들을 짓밟기도 했다”고 밝혔다.

투하가 성공했을 때조차도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고 로우는 말했다. “사람들이 구호품을 두고 싸우고, 다치는 일도 있었다.”

가자 지구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BBC는 26일 여러 가자 주민들을 인터뷰했는데, 이들은 공중 투하가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가자 북부에 사는 한 남성은 BBC 아랍어 서비스 프로그램인 ‘미들 이스트 데일리’에 출연해 “이 방식은 안전하지 않고, 이미 수많은 비극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공중에서 구호품이 떨어지면, 그게 텐트 위로 바로 떨어질 위험이 있고, 그러면 부상은 물론 사망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한편,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기아뿐만 아니라 탈수와도 싸우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BBC에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음식도, 빵도, 심지어 물도 없는 상태로 살고 있다”며 “우린 물 한 모금이라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주도한 남부 이스라엘 공격으로 약 1,200명이 숨지고 251명이 인질로 잡힌 사건에 대응해 가자 지구에 전면전을 시작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그 이후 가자에서 59,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3월 초 모든 구호물자 반입을 전면 봉쇄했고, 2주 뒤 하마스를 겨냥한 군사작전을 재개하면서 두 달간 유지됐던 휴전을 깨뜨렸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아직 억류 중인 인질을 석방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후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기아 사태가 임박했다고 경고하자, 이스라엘은 거의 두 달 만에 일부 봉쇄를 완화했지만, 식량과 의약품, 연료 부족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가자 주민 대부분은 여러 차례 거주지를 떠나야 했고, 전체 주택의 90% 이상이 파괴되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Author: NEWSPIC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