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안보 전략 대전환 필요”
美·中 대결 속 韓, 반도체 기술력 기반으로 전략적 기술 파트너 자임해야”
[포인트경제] 최종현학술원과 동아시아연구원,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24일 ‘글로벌 복합 위기,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전략 방향’을 주제로 공동 포럼을 개최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포럼은 북핵 문제, 한미동맹, 대중·대일 외교, 첨단기술 및 공급망 전략 등 주요 현안을 중심으로 국내 외교·안보·기술 전문가들이 모여 심도 있는 분석과 중장기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최종현학술원 (포인트경제)
김유석 최종현학술원 대표는 개회사에서 “외교 정책은 전략과 원칙, 가치와 현실, 국내 정치적 고려가 맞물리는 고도의 판단 영역”이라며 “단순한 ‘최악을 피하는 선택’이 아니라 ‘최선에 가까운 전략’을 주도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미동맹과 관련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한미동맹은 방위비 분담금 압박, 주한미군 역할 재설정, 전작권 전환이라는 세 갈래 도전에 직면했다”며 “한국 주도의 능동적 동맹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작권 전환을 “주권 회복 차원이 아닌 미국이 먼저 원할 때 수용하는 전략적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북핵 위협 대응과 확장억제는 한미 공동의 책무이며 일정 수준 이상의 주한미군 주둔은 계속되어야 한다”면서도 “기존 연합방위 체제에 안주하는 접근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대북정책과 관련해 “이재명 정부는 아직 구체적 대북정책을 내놓지 않았지만, 한미동맹 기반 억제 전략과 경제적 지렛대, 중국과의 조정 외교, 조건부 남북협력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합한 전략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대외전략을 “생존 유지, 핵억제력 완비, 국제적 위상 강화, 동북아 세력균형 변화라는 복합 목표 추구”로 진단했다.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물가·환율 급등, 식량난, 외환시장 불안정이 주민 생활고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북한 정부의 통제가 시장 왜곡과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고 평가했다.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은 실용외교의 한계와 과제를 지적하며 “이념과 국익, 대외 목적과 대내 정치가 충돌하는 한국 외교의 근본적 한계가 구조적 제약을 낳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실용외교는 이분법적 사고 탈피에서 출발해야 하며, 북한의 정체를 직시하고 현실적 안보 기반 위에서 대화와 협력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화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며, 국민 안보와 안전을 담보하는 현실 기반 협력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반도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중간 상태에 놓여 있어 정교한 전략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대화 유도에는 유인책과 압박 병행이 필요하며, 대화 명칭·형식·내용에 대한 전략적 준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은 신정부 대일 전략과 관련해 “미국 대외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일본은 미국에 대한 과잉 의존을 재조정하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한국도 탈이념적 관점에서 전략적 협력 기반을 일본과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전략을 플랜 A(미일동맹 기반 질서 유지)와 플랜 B(자율성 확대 및 과잉의존 축소)로 구분하며 “두 접근 모두 한국과의 실질적 협력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역사 문제에 집중하는 접근은 현실적 위협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최종현학술원 (포인트경제)
손인주 서울대 교수는 대중 전략과 관련해 중국의 이중적 성격을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민족주의와 역사 회복 담론으로 강경 태도를 취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체제 불안과 구조적 긴장을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응하는 한국 전략으로 법치와 자유에 기반한 ‘원칙적 다원주의’와 ‘동심원(Co-centric)’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아세안,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과 다자 협력망을 구축해 중국 리스크를 완화하고 인도·태평양 지역 공동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구상이다. 손 교수는 한·미·일 간 ‘2+2+2’ 협의체 신설을 제안하며 “한·일 양국이 미·중 전략경쟁의 파열음을 완충하고 지역 불안정성에 공동 대응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 약화와 함께 미국·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강대국 정치의 다극화, 즉 ‘얄타 2.0’ 시대로 진입했다”며 “한국은 자강, 연대, 포용의 세 축으로 외교안보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강 측면에서 그는 “트럼프와 MAGA 진영은 한국에 대해 본질적으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어 스스로를 방어할 역량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연대 전략에 대해선 “동맹에만 의존하지 않고 G7, EU, 일본, 호주, 싱가포르, 캐나다 등 규칙 기반 질서를 중시하는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포용 외교에 대해서는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호혜적 협력도 필수”라며 “세계 인구 3분의 2가 비민주주의 국가에 거주해 외교 지평을 넓히지 않으면 경제와 안보에서 외면받는다”고 경고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의 AI·반도체 생태계 고속 성장에 대해 “중국은 파운드리, GPU, 공정장비 등 반도체 전 영역을 아우르며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한국은 제조업 기반 AI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핵심 기업들이 반도체부터 AI 모델까지 풀스택 생태계를 빠르게 내재화하고 있으며, 3기 반도체 빅펀드를 계기로 에너지, 바이오, 통신 등 다양한 응용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미국산 장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삼중 보조금 체계를 가동하며 생태계를 통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미국·대만·중국이 얽힌 ‘실리콘 트라이앵글’ 구도에서 미국의 리쇼어링 전략을 주목하며, TSMC와 삼성전자가 미국 본토에 3나노 이하 공정을 유치해 2030년까지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비중 20~30% 확보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대만의 공백을 채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종현학술원 (포인트경제)
미국의 AI 패권 전략과 관련해 권 교수는 “5천억 달러 규모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백악관 ‘AI 액션 플랜’은 동맹국 참여를 요구하며 중국을 배제하는 노선을 분명히 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반도체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미국의 전략적 기술 파트너로서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 ‘거대 AI 모델 중심 패러다임’의 한계를 지적하며 “특정 목적에 특화된 AI 반도체와 제조업 접목 기술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AI 팹센터, 통신망, 전력망, 산업용수 등 인프라에 대한 장기 투자가 필요하며, 10년 이상 내다보는 국가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AI와 제조업 융합을 실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진국이 한국”이라고 평가했다.
박종희 서울대 교수는 한국형 AI 전략의 새로운 해법으로 “기술 그 자체보다 생태계 설계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식 시장 주도형 모델과 중국식 국가 개입형 모델을 넘어선 ‘제3의 길’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한국의 강점으로 세계적 반도체 생태계, 제조업 기반 디지털 수요, 정부 전략 기획 역량, 우수한 인재 풀을 꼽으며 ‘AI 생태계 중심 도약 전략’을 제안했다. 핵심은 정부가 산업 주도자가 아닌 인프라 설계자·인센티브 조정자로 역할을 전환하고, 대기업은 자산과 플랫폼을 공유하며 스타트업이 고위험 혁신을 주도하도록 설계하는 5자 분업 생태계 모델이다.
박 교수는 AI 생태계가 K-POP 세계화 전략처럼 대규모 투자, 인재 육성, 공정 보상, 창의 자율성이 조화를 이루는 모델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 제언으로 GPU·데이터 인프라 확보, 스타트업 종합상사 모델 도입, 보편적 보조금 체계, 계약 표준화와 지식재산 보호 등을 포함했다. 특히 한국어 특화 모델을 위한 ‘소버린 AI 컨소시엄’ 구축과 반도체·바이오·국방·지능형 제조 분야 전략적 집중 투자를 강조했다.
이번 포럼은 국내 최고 외교·안보·기술 전문가들이 복합 위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전략을 다층적으로 점검하고, 능동적 동맹 전환과 전략적 자율성 확보, 균형 외교, AI 생태계 기반 기술안보 등 다각적 대응 방안을 제시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