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지, 트위드, 영국 시골, 밀 코코 샤넬이 사랑한 모든 것. 2025 FW 오트 쿠튀르

베이지, 트위드, 영국 시골, 밀 코코 샤넬이 사랑한 모든 것. 2025 FW 오트 쿠튀르


PASTORAL RESTRAINT


베이지 팔레트, 트위드, 밀 이삭 그리고 영국 시골과 스코틀랜드의 황야,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했던 것들. 언제나 그랬듯 창립자를 기리며 샤넬의 근간으로 돌아간 2025/26 가을-겨울 오트 쿠튀르 쇼가 펼쳐졌다.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를 재현한 쇼장.

파리 캉봉가 31번지. 이곳의 문턱을 넘어서자 전설적인 아르데코 거울 계단이 펼쳐진다.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보자.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는 ‘샤넬 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없는 모습이다. 연인이었던 보이 카펠이 선물한 코로만델 병풍부터 베이지 톤의 카펫, 그녀의 별자리인 사자자리를 상징하는 황금 조각, 그리고 카멜리아와 리본 오브제, 밀 이삭과 숫자 5 같은 행운의 심벌까지. 그야말로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했던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이는 샤넬의 하우스 코드를 논할 때 캉봉가 31번지가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층 아래엔 또 다른 전설이 시작된 오트 쿠튀르 살롱이 자리하고 있다. 110년 전, 바로 이곳에서 샤넬은 첫 쿠튀르 쇼를 열었다.(1954년, ‘단순함으로의 회귀’를 외치며 15년간의 은퇴를 깨고 패션계에 복귀한 컴백 쇼도 열렸다.) “오트 쿠튀르는 나의 기쁨이자 이상이며 존재의 이유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의 말처럼, 그녀에게도 오트 쿠튀르는 혁신의 무대이자 변화의 원동력이었으며 이를 통해 단순한 의복을 넘어 여성성을 재정의하고 여성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과 사회적 역할까지 재정의할 수 있었다.

밀 이삭 부케를 든 신부.

페이크 퍼 재킷을 덧입은 듯 연출된 퍼 장식 트위드 재킷.

깃털 장식을 더한 트위드.

한없이 가벼운 소재로 제작된 블라우스.

바람에 일렁이는 그러데이션 스커트.

쇼는 화이트 트위드 군단으로 시작되었다.

오트 쿠튀르는 샤넬의 시작이자 하나의 이념, 가장 순수한 창의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고객들 역시 자신의 페르소나, 삶을 담아 제작하는 맞춤 옷이란 측면에서 개성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궁극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창조는 샤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와 아틀리에의 긴밀한 협업 속에서 태어난다. 오랜 전통을 전승함과 동시에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장인들의 손끝에서 원단은 마법처럼 가벼워지고, 자수와 수작업은 새로운 촉감을 부여한다. 단순한 아름다움 뒤에는 치열한 계산이, 즉흥성 속에는 치밀한 계획이 숨어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이끄는 이는 바로 ‘프리미에르 아틀리에(Premiere d’atelier)’다. 그는 뛰어난 솜씨의 장인들을 이끌며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작품을 완성해낸다. “샤넬 오트 쿠튀르는 상상 그 이상의 세계입니다. 꿈꾸는 만큼, 원하는 만큼 끝없이 나아갈 수 있죠.” 샤넬 오트 쿠튀르 쇼에 숱하게 섰던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의 말이다.

지난 7월 8일, 파리 그랑 팔레의 살롱 도뇌르에서 샤넬 2025/26 가을-겨울 오트 쿠튀르 쇼가 펼쳐졌다. 이번 쇼는 마티유 블라지의 공식 합류 전, 크리에이션 스튜디오가 선보인 마지막 컬렉션이다. 다시 한 번 오트 쿠튀르의 시작점으로 돌아가겠다는 듯 온통 베이지 컬러로 꾸며진 쇼장이 게스트를 맞이했다. 아티스트 윌로 페론(Willo Perron)의 연출 아래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가 재현된 것이다. 쇼의 시작점 역시 가브리엘 샤넬이다. 그녀가 사랑한 영국 시골과 스코틀랜드의 황야에서 영감받았다. 샤넬의 대표적인 겨울 아이템들이 새롭게 재해석되었고, 그 중심에는 트위드가 있다. 1920년대 중반,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열애 중이던 가브리엘 샤넬은 스코틀랜드 여행을 즐겼다. 그곳에서 트위드를 접했고, 주로 남성 재킷에 사용되던 이 소재를 여성복 카테고리로 옮겨왔다. 남녀의 스타일적 편견을 개의치 않았던 그녀에게 트위드는 완벽한 소재로 다가왔다. 화이트 컬러의 트위드 드레스로 오프닝을 연 쇼는 에크루, 아이보리, 브라운, 그린, 블랙 등 자연을 닮은 컬러 팔레트로 이어지며 목가적이면서도 절제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기에 남성복의 비율을 빌려 움직임의 자유를 부여했다. 니트처럼 구현된 트위드는 자수 브레이드 장식이 더해진 화이트 코트 드레스, 점퍼 재킷 수트, 그린과 플럼 컬러로 완성한 모헤어 수트 두 벌에 적용되었다. 양가죽을 연상케 하는 부클레 트위드, 깃털 장식을 더한 트위드는 마치 페이크 퍼 같은 느낌을 가미해 재미를 주었다. 풍요의 상징이자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했던 밀 이삭도 곳곳에서 발견 가능하다. 시폰 드레스의 깃털 장식, 네크라인의 섬세한 자수, 주얼 버튼, 셰브론(Chevron) 모티프 패턴까지. 피코트와 새틴 크레이프 드레스에는 멀티 컬러 플로럴 자수가 더해져 목가적인 분위기를, 골드 주얼 버튼과 오렌지톤 라메(lame, 금속 섬유) 소재, 자수와 레이스 장식은 태양의 따스함을 컬렉션에 불어넣었다. 피날레는 역시나 웨딩드레스가 차지했다. 꽃잎이 흩날리듯 수놓인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밀 이삭 부케를 들고 쇼를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한 땀 한 땀 수놓인 반짝이는 스팽글.

니트처럼 구현된 트위드.

뒤태마저 아름다운.

차분한 블랙 컬러의 행렬.

로맨틱한 멀티 컬러 플로럴 자수.

쇼에 드라마를 더한 케이프 드레스.

오트 쿠튀르란 단지 옷을 입는 행위를 넘어선 독창적이고 내밀한 대화다. 가브리엘 샤넬은 알고 있었을까. 100년 뒤에도 그 시절과 똑같은 방식으로 옷이 만들어지고 쇼가 열린다는 것을, 여전히 캉봉가 31번지에서 트위드를 직조하고 자수와 스팽글을 수놓는 장인들이 함께하는 미래를. 가브리엘 샤넬이 만들고, 칼 라거펠트와 버지니 비아르가 발전시킨 하우스 코드. 이 공식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크리에이션 스튜디오와 수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장인들의 기술력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여기에 마티유 블라지의 신선한 감각이 더해진다면? 이들이 만들어낼 시너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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