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야 할 ‘늘공의 세계'[안종범의 나라살림]

바꿔야 할 ‘늘공의 세계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어공’과 ‘늘공’이라는 말이 있다.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로 정권 교체 시 정치권·학계·언론계 등 민간 분야에서 공직에 진입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대개 정권이 끝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복귀한다. 반면 ‘늘공’은 직업공무원으로 행정고시 등 시험을 통해 선발돼 한 부처에서 수십 년간 경력을 쌓아가는 인물들이다.

두 집단은 긴장과 협업을 반복하며 새로 출범한 정부와 운명을 함께한다. 어공은 늘공의 관료적 관성이나 정책 대응의 보수성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전문성과 행정 경험 부족으로 조직 효율성을 저해하기도 한다.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이 반복되는 이유다. 하지만 어공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늘공 중심 공무원 조직의 구조적 병폐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공무원들은 분명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폐허 속에서 시작된 국가에 법과 제도를 세우고 정책을 집행하며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공직사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들이 오히려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기도 하다.

공무원 사회는 행정고시 기수 중심의 승진체계로 운영된다. 사법고시·외무고시 출신들도 마찬가지다. 민간에서는 성과 중심의 인사로 전환했지만 공무원 사회는 여전히 기수 위계가 강력하다. 이는 부처 간 협업보다 경쟁과 배타성을 조장하면서 부처 이기주의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공무원들은 자기 부처가 예산을 많이 확보하고 인력을 늘리고 산하기관을 확대하는 것을 성과로 여긴다. 해당 부처의 사업에 필요한 예산과 부처 산하기관들의 예산을 많이 확보하는 것은 부처의 힘을 키우는 것으로 인식한다. 예산 못지않게 중요시하는 것은 부처 내 공무원 수의 증가다. 이 때문에 인원 증대의 여러 사유를 개발해 자기 부처의 공무원 정원을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새로운 부처 내 조직을 만들거나 산하기관을 신설하는 것이다. 조그만 대외적 명분이라도 발생하면 이를 재빨리 조직과 예산 확대에 활용한다. 코로나19 이후 질병관리청 승격 논의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고용노동부 산하 감독기구 확대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공무원 조직의 또 다른 특징은 순환보직제다. 실·국·과를 돌아가며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게 해 조직 운영 능력을 키운다는 취지지만 이는 전문성 축적을 방해하고 행정의 연속성을 훼손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본은 한 부서에서 장기간 근무하는 제도를 통해 전문성을 쌓는다. 외국과의 협상이나 다자회의에서 일본 공무원은 한 분야의 ‘베테랑’으로 활동하는 반면 한국은 순환보직으로 인해 한 업무를 막 익힐 즈음 자리를 바꾸게 돼 협상력이나 정책 영향력에서 밀리는 사례가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처 간, 혹은 부처 내 부서 간 정보 칸막이도 문제다. 부처별 정책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거나 내부에서도 다른 부서와 공유하지 않는 문화는 비효율을 낳는다. 이는 ‘정보=권력’이라는 관념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에도 실질적인 정보 공유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러한 정보 독점과 정보 공유 기피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정부 3.0’에 이어 ‘디지털플랫폼 정부’를 추진해왔지만 대부분 부처는 소극적 협조에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새 정부가 공무원 조직에 바라는 것은 단순한 충성이나 관료적 절차 이행이 아니라 책임 있는 전문성과 유연한 협업이다. 우수한 공무원의 역량을 조직 구조와 관행이 억누르지 않도록 기수 중심 인사에서 탈피한 성과 중심 체계, 전문성 강화와 선택적 순환보직의 병행, 부처 간 공동사업과 성과연동 예산제 도입 확대, 정보 공유 시스템 구축 및 칸막이 해소 등 그동안 논의하고 시도했던 개혁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나아가 새 정부가 시도해볼 만한 두 가지 과제를 제시해 본다. 첫째, 부처 이기주의와 부처 간 칸막이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정보의 ‘공개-공유-활용’이라는 ‘디지털플랫폼 정부’의 정책 기조를 지금까지보다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더 이상 부처별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앱) 개발 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활용도 저조한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최근 2024년 공공 앱 운영 성과 평가(행정안전부 2025년 1월 24일 발표)를 보면 전국 284개 행정기관의 649개 공공 앱 중에서 83개 앱이 저조한 사용 등으로 폐기 권고를 받았다. ‘만들기만 하고 쓰지 않는’ 공공 앱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개별적으로 공공정보를 관리·운영하는 노력을 중단하고 범정부 차원의 정보 공개와 공유 그리고 활용 노력이 꼭 필요하다.

둘째 과제는 부처 이기주의와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고 협업을 유도할 수 있는 실질적 인사 교류 체계다. 특히 경제부처와 사회부처 간 인사 교류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합 위기를 풀기 위한 정책적 해법이기도 하다. 1995년 이영탁 예산실장 출신이 교육부 차관으로, 2015년 방문규 기획재정부 차관을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임명했던 주요 사례의 성과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사 교류는 경제부처와 사회부처 간 예산 배분과 정책추진 방향 등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갈등을 해소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특히 효율적 재정 운용을 위한 기획재정부와 교육부 혹은 보건복지부 간 인사 교류 그리고 산업정책과 노동정책 간의 유기적 결합을 위한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의 인사 교류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교류의 성공을 위해서는 성과를 공동으로 측정하는 협업지표를 관리하고 나아가 교류가 일회성 파견이 아닌 제도화한 인력 운영 시스템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러한 변화 없이는 어공이든 늘공이든 모두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어공의 신선함과 늘공의 노련함은 국가 역량의 양날개다. 새 정부가 ‘관료조직 업그레이드’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국민과 국익은 한 부처의 위상보다 크다’는 당연한 명제가 실천으로 이어질 때 행정은 다시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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